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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05. 2024

부부 07. 내 남자, 네 남편

단편소설, 장편소설, 부부




  내 남자라고 생각했던 사람, 나하고 결혼하고서도, 결혼 전에 만났던 여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4촌 오빠는 현대 자동차에 자동차 실내등과 같은 제품을 납품하는 중견 기업체 직원이었다. 남편은 현대 자동차 연구소 직원이었다. 4촌 오빠가 소개해주어서 연애가 시작되었고, 결혼하였다. 중매 반, 연애 반이 맞을 것이다.

  남편은 자주는 아니지만 3, 4개월에 한 번씩 여자를 만난 듯했다. 자기 말로는 만날 생각이 없었는데, 잊을 만하면 전화가 오고, 그랬다는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짓을 7년 동안 유지했다는 것이다. 

  결혼한 여자였다. 목동에 사는 여자였다. 남편은 나하고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알지만, 없던 일로 해주면, 한 눈 안 팔고 열심히 살겠다고 한다.

  이혼할 거면 여자 만날 필요가 없지만, 남편과 이혼할 생각이 아니라면 여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남자에게 이야기했다. 여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여자를 만났다. 

  뭔가 미안한 마음, 죄송한 모습으로 내 앞에 고개 숙이고 나타날 줄 알았다. 

  아니다. 

  긴장하는 것 하나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친구 만나듯 카페에 왔다.

  긴 머리에 하얀 얼굴, 평범해 보이는 여자였다. 소라 색 니트 원피스에 검정과 하얀색의 가는 체크무늬가 있는 겉옷을 걸쳤다. 패션 감각 있어 보인다. 화장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단정하였다. 기가 세 보이지도 않고, 남자를 밝힐 것 같지도 않고, 허투루 막살 여자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내 남편을 왜 만났냐고 물었다.

  내 물음에 대답 없이, 하얀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을 들어 천천히 마신다. 커피를 내려놓고 나를 본다.

  그걸 당신 남편에게 물어야지, 자기에게 왜 묻냐고 말한다.

  자기가 내 남편을 만난 것은 자기의 사적인 공간이라고 한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내가 이혼하든 안 하든 그것은 당신들 부부의 문제이지, 자기 문제가 아니란다.

  당신이 내 남편을 꼬드긴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런 적 없다고 한다.

  가정이 있는 남자를 만나고 다니면 되냐고 물었다. 

  여자가 나를 쳐다보더니, 한심하다는 듯이 웃는다.

  가정이 있는 여자를 만나고 다닌 것은, 당신 남편이 아니냐고 말한다. 

  가정이 있는 남자를 만나든, 가정이 없는 남자를 만나든 그것은 내 문제이고···, 당신은 당신 남편이 가정이 없는 여자를 만나면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

  내 남자를 보더니, 웃는다. 그리고 남편에게 묻는다.

  당신은 나 왜 만났어, 남편을 보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이거는 내가 예상했던 모습이 아니다.

  남편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내 눈치를 본다. 

  이 여자의 눈치를 또 본다.

  당신이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고, 남편이 작은 소리로 말한다. 

  자기는 이혼할 생각도 없고, 가정을 깰 생각도 없다고···, 바로 추가로 덧붙여 말한다.

  여자가 더 이상 김이 보이지 않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나와 남편을 한 번씩 번갈아 보면서 말한다. 남편을 보는 눈빛과 나를 보는 눈빛이 다르다.

  내가 만나자고 한 것보다, 당신이 나 만나자고 한 것이 많은데, 당신이 만나자고 연락한 것이 많지 않나,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이혼해 달라고 한 적 없지···, 

  내가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한 적 없지···, 

  남편 모습이 점점 작아지는 듯이 보였다.

  난 당신을 만나서 놀았고, 당신도 나 만나서 놀았고···, 

  내가 전화한 적도 있고, 당신이 나에게 전화한 적도 있고···, 시간 맞으면 만나고, 시간 안 맞으면 안 만나고···, 그게 다 아니냐고···, 

  고개 숙여 찻잔만 보고 있는 남편을 다정하게 쳐다보고는···, 고개 돌려 나를 본다. 더 할 말이 있냐는 눈빛이다.

  할 말이 없었다. 이거는 뭐 싸우자고 덤빌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생각이 복잡해서 뭐라고 해야 하나, 궁리하고 있는데 여자가 나에게 말한다.

  내 남편 전화번호 줄까요, 

  잘 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놀랬다.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제 남편하고 이야기하실래요, 여자가 또 한 번 확인하듯이 나에게 말한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 못 했단 얼굴로 나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차분한 표정의 얼굴을 보여주며 안정된 목소리로 말한다.

  제 남편은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데···, 

  당신이 내가 바람났다고 내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싶으면 하셔도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 것은 제 남편은 3자이고, 당사자는 접니다. 

  내가 이혼하든 안 하든, 그것은 내 문제이니···, 당신에게 뭐라 하지 않을 거고···, 

  내 눈 보고 말하는데 기죽는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니라고 하기에도 좀 이상하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화번호 달라고 하였는데, 망설임 없이 가방에서 자기 남편 명함이라고 하면서 건네준다. 한국토지주택공사 명함을 준다. 공기업에 다니는 남자였다.

  명함 받았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혼란스러웠다.

  이 여자 남편에게 전화해서 뭐라고 하지, 생각해 본다.

  당신 마누라가 내 남편하고 바람났는데, 

  당신이 꼭 이혼했으면 좋겠습니다. 할 것도 아니고···, 

  손해 배상해 달라고 할 것도 아니고···,

  여자의 당당함에 비하면 내 남자라는···, 내 남편의 모습은 구질구질했다. 

  알아서 하라면서, 할 이야기는 더 이상 없을 것 같다고···, 냉소적인 웃음을 보이며 말한다. 그 미소를 본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카페 문을 열고 나가는 여자의 뒤 모습을 보면서 여자의 당당함이 좋았다.

  난 남편하고 이혼했다. 

  여자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이혼하지 않으려고 여자를 만난 본 건데···, 만나고 나서 이혼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남자를 지킬 자신이 없었다.      



  내가 남자에게 전화번호 달라고 했고, 전화하였다. 

  나, 당신의 남편을 만나는 사람인데, 한번 만나고 싶다, 라고 말했다. 

  저쪽에서는 말이 없다. 그러더니 끊어졌다. 

  며칠이 지났다. 여자에게 전화했다. 

  지금 당신 집 앞에 있으니, 문 좀 열어달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거실과 주방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꽃무늬가 들어간 하얀 커튼이 거실 창에 드리워져 있다. 소파 위로는 결혼 기념 촬영한 사진과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살림살이에 어지러움이 없다. 이렇게 사는구나, 이혼 전에 내가 살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남자의 마누라를 보았다. 굳게 입 다문 입술이 보였다. 나이에 비하여 젊게 보인다. 동글동글한 앳된 얼굴에 화가 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경직된 목소리로 말한다. 

  네 남편이 나하고 바람난 것을 몰랐냐고 물었다. 

  여자는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언제부터 알았냐고 물었더니, 1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네 남편이 나에게 가져간 돈이 1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것도 알고 있다고 여자가 말한다. 

  이혼하라고 했더니, 

  이혼 못 한다고 한다. 

  네 남편이 내 남자가 되었는데, 헛것 안고 살 거냐 했더니, 

  그렇겠다고 한다. 

  몸이 떨리는 듯 보였지만 여자는 난감한 상황에서 차분하게 말하였다.

  착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혼 전에는 이 여자처럼 착한 여자였다. 지금은 돌싱녀가 되어 세상 보는 눈이 바뀌었다.

내가 나쁜 여자 맞다. 하지만 나쁜 놈은 나도 아니고, 이 여자도 아니고, 남자이다. 내가 먼저 남자를 유혹한 것 아니다. 남자가 먼저 나에게 접근하였다. 

  남편과 이혼하고서는 남자에게 관심도 없었다.      



  ‘스쿠버다이빙’이라는 인터넷 동아리에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스킨스쿠버 매니아로, 강습 자격증도 갖고 있었다. 가르쳐 달라고 여자가 남자에게 전화하고 만나고, 둘이 어울려 다닌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남자는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영업사원 10명 정도를 관리하는 매니저였다. 흔히들 SM이라고 부른다. 보험 영업할 사람을 발굴하고, 그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보험 계약을 해 오도록 다그치는 사람들이다. 양의 탈을 쓰고 사람을 꼬드기는 것이 일이다. 보험 설계사들이 계약해 오면,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어떻게 보면 보험 영업조직은 앵벌이 조직과 거의 유사하다. 

  SM에서 타고난 실적을 보이고 수완이 좋으면 지점장이 되는 것이다. 수수료는 보험회사 근무자들끼리 서로가 나누어 가졌으니,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는 SM, 또는 신규 계약 건수가 기준치에 미달하는 SM은 자리보전이 어려운 것이다. 

  나는 이혼하고서 오피스텔 분양하는 사무실에서 상담원으로 일하였다. 우리 둘은 돈이 얽히고 섞였다. 남자가 돈이 부족하면 내가 챙겨주었고, 내가 미등기 전매로 돈 벌고자 했을 때, 남자의 돈을 융통해서 계약금 걸었다. 

  결과적으로는 남자의 돈이 내 주머니로 흘러 들어왔다. 

  남자의 마누라에게 이야기 한 돈 1억 원은 거짓이다.      



  남자와 나는 연인처럼, 부부처럼 놀았다. 

  동아리 다른 회원들하고 매주 목요일에 만난다. 수심이 깊은 실내 풀장에서 한 시간 정도 연습하고는 두세 시간 술 먹고 놀았다. 스킨스쿠버는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물에 들어갈 때는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고, 날씨도 체크하고, 인원도 맞아야 하고, 장소도 섭외가 되어야 한다. 

  주말에는 체력을 기른다면서 산을 가거나, 자전거 타고 놀았다. 모임이 있는 날에는 남자는 거의 만취되어 집에 들어갔다.

  우리가 불륜관계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는 분위기였다. 모임에는 상당수의 커플이 있었다. 기혼자들이 대부분이고, 일부 이혼한 남녀가 있다. 이혼하고 나서 알았다. 정상적인 부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삐딱하게 볼일이 아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황당한 일에, 특별한 일에, 놀랄만한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인생이 그런 것이다. 특히 남녀 관계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 

  이혼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참고, 인내하고, 희생하고, 상대에게 맞추어 사는 것이 부부라고 세뇌받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나에게 밥 먹자고 전화하였다. 

  정장 스타일로 단정하게 옷 차려입고 나는 남자를 만나러 갔다. 식당에는 남자의 어머니가 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굳은 표정의 어머니는 아들을 흘끗 본다. 

  엄마도 아시잖아요, 제가 애들 엄마하고 억지로 사는 것··· 이러쿵저러쿵 말한다. 

  나이 든 여자는 한심하다는 듯이 아들을 쳐다본다. 

  나는 어머니에게 선물이라면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낸다. 현대백화점에서 산 진주목걸이이다. 나는 상냥스럽고 예의 바르게 나이 든 여자의 비위를 맞춘다. 분양 사무실에서 상담하면서 터득한 싹싹함으로 나이 든 여자의 맘을 열어 놓았다. 

  40대에 남편이 죽어서 혼자서 아들을 키웠다. 자기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곰보다는 여우가 좋겠다고 나인 든 여자가 생각한다. 그리고는···

  이혼하라고 아들에게 말한다. 

  이혼하고 둘이 결혼하라고 말한다. 

  나는 고맙습니다. 어머니···, 하고 말한다. 

  아들은 자기 엄마를 보고는, 애 엄마가 이혼 안 해줘, 라고 말한다. 

  자기 엄마와 말하는 남자의 태도에는 진지함이 없다. 맘속에 다른 생각 하고 있을 것이다. 이 남자는 천성이 독한 소리 못하는 사람이다. 보험영업이 딱 체질이다. 마음이 여리고, 싫은 소리 못하는 남자였다. 그냥 놀기 좋아하는 철없는 남자였다. 

  나는 그런 심성을 갖고 사는 남자들을 안다.

  내 전남편이 그랬다. 

  특히 바람피우는 남자는 한술 더 뜨는 것 같다.

  마누라가 결론내려 주기를 바라는···, 

  무조건 용서를 빌면 마누라가 받아 줄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남자들이 한다. 

  남자가 바람피워도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그래서 생기었나 보다. 

  이 남자도 자기 마누라에게 이혼해 달라는 말, 못 할 것이다. 

  내가 남자에게 선수를 쳤다.

  마누라하고 이혼해라. 

  나하고 같이 살자 했다.

  이 남자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돈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당신이 죽는다면···, 하고 접근하는 것이 생명보험회사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던지는 화법이다. 목숨을 가지고 돈으로 흥정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런 까닭으로 지점장은 직원들끼리 서로 가족이라는 말을 많이 쓰도록 유도한다. 지점장은 회식을 핑계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SM들과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한다. 우리는 한 가족이니, 서로 힘든 것은 도와가면서 일하자고 한다. 

  남자는 다른 SM들과 마찬가지로 늘 자기 마누라를 데리고 모임에 나왔다. 

  사실 남자의 마음에는 이혼하고 안 하고에 관심이 없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다. 여자가 이혼하고 자기하고 살자고 해서 자기도 마누라에게 이혼하자고 말한 거다. 

  마누라는 살림만 했다. 수줍음이 많아서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애 키우는 재미로 산 가정적인 여자였다. 내가 이혼하자고 해도 선뜻 승낙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마누라가 이혼해 주면 이 여자하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누라가 이혼 안 해주면, 지금처럼 살면 되는 것이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다.

   마누라는 지점장 식사 모임에 가자고 하면 귀찮다고 불편해했었던 사람이다. 자기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안 그 시점부터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여자에 대한 질투심에 자기에게 잘하는 거라, 생각했다. 

  1년 전쯤부터는 모임에 가는 날이 되면, 미장원을 다녀오고, 남자들의 시선을 끌 만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차려입는다. 

  내 팔짱을 끼고는···, 

  당당한 걸음으로 예약된 식당에 들어간다. 지점장과 다른 SM들하고는 누구의 마누라가 그날 옷을 잘 입고 나왔는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인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마누라에게 집중된다. 마누라가 적극적으로 참석해 주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남편의 여자가 찾아왔다. 

  남편이 이혼하자고 할 때, 딴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전에 눈치는 채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가 이렇게 집에까지 찾아와서 당당하게 이혼해달라고 할지는 몰랐다. 

  남편의 성격을 안다. 

  겉치레에 은근히 신경 쓰는 남자이다. 

  남을 의식하는 사람이다. 

  내가 버티면 유야무야로 시간을 보낼 사람이다. 남편이 과감한 행동은 뒤에 여자가 있는 것이다. 

  남편에 대해서는 내가 저 여자보다 더 잘 안다. 

  곰곰이 생각을 정리한다.      



  남편은 내가 자기를 포기하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는 의지할 끈이 하나도 없다. 늪지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가여운 짐승이었다. 삶에 의미가 있다면, 희망이나 절망이 아니었다. 생각은 공상으로, 공상은 복수의 그림을 그린다. 그물을 짜지 않고는 지금 나에게 닥친 암흑의 골짜기를 건너갈 방편이 없는 것이다.     



  전화가 왔다. 

  무더운 여름 오후였다. 

  남편이 스쿠버 다이빙하다가 사고가 나서 과다출혈로 죽었다는 것이다. 파도가 심해서 스쿠버 다이빙하기는 어려운 날이었는데, 무리해서 했다는 것이다. 

  평소보다 회원들은 모이지 않았다. 남편하고 여자, 그리고 다른 몇 명의 신입 회원이 있었다고 한다. 신입 회원에게 시범을 보여준다고 남편이 들어갔는데 파도가 심해서 배가 출렁거렸고, 배가 순간적으로 돌면서 줄이 엉키어, 사고가 났다고 한다.

  시간은 늘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남편이 죽고 나서, 생명보험 사기인지 아닌지를 조사한다면서 기관에서 몇 차례 왔다 갔다. 여자 앞으로 나온 보험수령액이 24억 원이었다. 여자는 시어머니와의 연을 끊었다. 

  전화가 오면 당신 아들하고 바람난 여자가 당신 며느리 아니냐고 차갑게 말한다.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지나치자 오히려 감정이 차분해진다. 

  이혼하라고···, 당신이 당신 아들 사주한 것을 잊었냐고 단호하지만, 약 올리듯이 말했다. 

  저쪽에서 소리를 빽빽 질러도, 

  이혼하지 않고 죽었으니 잘 죽은 거예요, 라고 재미있다는 말투로 말하고 끊었다.      



  레스토랑에 앉아있는 여자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윤기가 흐르는 짧은 단말 머리에 화사한 분위기의 초록색 톤 옷을 입은 날씬한 여자다. 웃는 모습이 멋스럽고 우아하게 보인다. 앞에 앉아있는 남자가 앉아서 여자를 쳐다보면서 뭐라고 말을 한다. 남자는 보험회사 SM이었다. 최근에 스킨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려 하다가 사고가 나서 그만두었다. 

  세상은 틈새가 많다. 

  틈새를 메꾸고 인생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부부라는 것은 틈새투성이다. 

  여자는 틈새를 찾았고, 식사 모임 갈 때마다 자기에게 시선을 고정했던 남자를 끈으로 하여 그물을 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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