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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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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Aug 13. 2023

불혹  1. 유혹

<부동산소재 소설 1부>

       1     


         돈과 권력에 자유롭지 않은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다. 돈과 권력의 힘에서 그림자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2     


         20분 뒤에 도착, 술집에서 보자’ 

         신사역을 출발한 전철이 땅 밖으로 나온다. 창밖의 어둠이 빛으로 변하면서 고래가 생각났다. 고래가 살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한다. 사람은 그런 고래를 보고 박수를 치지만, 고래는 생존하기 위해 물을 뿜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 바다 깊이 들어간다.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의 쇠기둥 사이에 물은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꿀렁꿀렁 거리는 차량의 진동으로 인해 출렁이는 물결이 어지럽다. 창유리에 내 얼굴이 반사되어 희미하게 보인다. 돈 한 푼 없어 자존심이 무너진 내면의 상처가 웃음으로 나타난다. 

         은행 돈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카드 5개를 돌려막기 시작하면서 한 달짜리 할부 인생이 되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열심히 사는 것과 성공은 관련이 없다. 몇 개월 못 버틸 것이다. 못 버티면 개인 파산을 신청할 생각이다. 이렇게 삶이 전개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6년 전이다. IMF로 실직하고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였을 때, 중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는 은옥에게 약속했다.

         “사업을 하고 싶으면 해, 생활비 달라고 하지 않을 터이니, 나에게 돈을 달라거나, 돈을 구해오라 하지 마”

         “약속하지, 내가 사업을 하다 망해도 나 혼자 망할 것이다. 돈 달라고 하지 않을 거야. 생활비는 당신 버는 것으로 살고, 큰돈은 내가 벌게, 고맙다”

         옥수역에 도착하자 등지고 있던 사람들이 내리고, 피곤에 찌든 듯 무표정한 사람들이 탄다. 문이 닫히고 금호역을 향해 땅속으로 들어간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면서 덜컥하고 움직인다. 반사적으로 몸이 뒤로 갔다가 앞으로 온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창밖으로 보인다. 땅속 개미가 생각난다. 땅속에서 죽을 때가지 일하는 개미, 일하지 않는 개미는 땅 속에 흔적도 없이 묻힌다.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삶이다. ‘왜’라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인류가 살아온 이래로 사람들이 추구한 모습은 돈과 권력의 크기였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망해도 혼자 망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추락은 한 사람이면 된다. 하얀 얼굴에 이쁘장한 미희라는 친구가 궁금해진다. 지난번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처음 보았다. 오늘 낮에 ‘저녁에 시간 되면 술 먹을 수 있니?’라고 문자가 뜬금없이 왔다. 문자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은옥에게 문자 보냈다. ‘선배가 만나자고 하네, 저녁 먹고 집에 갈 거야’ 단조로운 회신이 왔다. ‘먼저 잘게, 술 많이 먹지 말고’

         조금 전 퇴근하고 집에 왔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문자가 왔다. 그러려니 했다. 화도 안 난다. 일주일 동안에 술 안 먹는 날이 거의 없다. 사업 아이템이 무엇인지, 사업자금은 어디서 났는지 모른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알고자 하는 순간에 걱정할 것이다. 결혼 전 노래방 하다 망한 남동생 빚을 갚아주느라 월급을 받으면 은행에서 다 가져갔다. 지금도 아버지는 남동생 빚을 갚아주고 있다. 그런 친정집에서 자연스럽게 탈출하기 위해 결혼이란 선택을 했다. 

         사업을 한다고 한 다음부터 생활비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결혼 전처럼 돈이 없어 애가 탈 정도는 아니었다. 관심 끊고 살았다. 생활비는 선생 월급으로 충분했다. 저축할 돈이 없이 빠듯한 게 아쉽지만, 저축할 필요를 못 느꼈다. 결혼할 때 전셋집에서 시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어머니 살던 집은 뉴타운으로 재개발되어 공사 중이었다. 시어머니는 장사 그만두시고 상가에서 임대료를 받는다. 돈 걱정 없이 사는 분이다. 3년 뒤에 새 아파트에 입주하였다. 전세금을 빼서 잔금 지불하고 명의를 어머니 이름으로 하였지만, 우리 집으로 생각했다. 

         전형적인 홀어머니 아들이었다. 하지만 마마보이는 아니었다. 그냥 어머니 생각을 좀 많이 하는 착한 사람이다. 결혼하고 4년 정도 월급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IMF 실직하면서 끝이었다. 사업이 잘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자기 쓸 돈은 버는 것 같다. 정말 성공해서 돈 벌기를 바라지만, 성공 안 해도 상관은 없다. 사고만 치지 않으면 무난하다. 주말이면 볼링을 하고, 가까운 북한산에 등산 다니고, 대학로로 연극 보러 다닌다. 일요일에는 가족들이 전부 교회에서 가서 예배를 본다.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다. 

         공식적인 생활비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외식비용, 경조사 비용, 차량 비용, 여행 경비 등은 모두 내 몫이다. 그래도 이렇게 이해해주는 집사람이 고마울 뿐이다. 생활비를 맡아서 해주니, 사업을 한답시고 그나마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카드 할부와 마이너스 대출로 돌려막으면서 용돈을 만들어 쓰고 있다. 사업한다고 지인들에게 빌려온 돈이 1억 원 정도가 있다. 

         설명할 수 없는 틈이 부부 사이에 있는 것을 둘 다 알고 있다. 그 틈을 가정이란 시스템으로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은 무언의 약속이다. 부부 침대에는 가시를 숨긴 장미가 가운데를 갈랐다. 주위 사람을 속이는 거짓이다. 몸과 정신이 거짓 울타리에 따로 있으면 부부는 남이 되어 외로움을 갖는다. 한번 시작된 외로움은 더 큰 외로움을 가져온다. 일상이 되면 거짓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같은 세상에 있지만 다른 세상이다. 부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부로 버티는 것이다. 남과 여, 이방인이 되었다. 연기에 몰입이 된 배우는 진짜와 가짜를 혼동한다. 일상이 연극이다. 더군다나 28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안방의 권력을 차지하고 버티는 어머니는 젊은 아들 내외를 이러한 연극에 더욱 더 몰입하도록 한다. 삶의 모순이 있는 것이다.     


         3     


         역에서 내린다. 중문동은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대산동에 6살 때부터 살고 있으니, 늘 친구들과 술 먹던 이웃 동네이다. 고대, 성대, 성신여대, 한성대, 국민대가 인근에 있어 먹고 마시고 놀 거리가 많다. 젊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역이다. 약속한 술집은 소주 선술집이다. 역에서 나와 구청 쪽으로 걷다가 독도 참치 지나서 성당 사거리 전에 있는 ‘아무거나’라는 술집이다. 흔들거리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4인용 테이블이 각종 낙서가 가득한 우측 벽에 붙어서 일렬종대로 길게 늘어져 있고, 밖이 보이는 창문이 1m 간격으로 있는 좌측 벽 쪽으로는 사람이 다니는 통로이다. 맨 안쪽에는 주방이 있어 주문을 받는다.

         “자, 한잔 먹자”

         “응, 그래”

         “술 먹기 전에 한마디 하자.”

         “뭔데?”

         “너 한 달에 얼마 버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너보다는 돈 많이 버는 것 같은데, 내가 술 한 잔 살게.” 남자의 얼굴을 한번 본다. “너 요즘 힘들 거라고 친구들이 이야기하더라. 여자한테 술 얻어먹는다고 기분 나빠하지 말고”

         “나쁘기는 나야 고맙지, 넌 무슨 돈을 그렇게 잘 벌어, 더군다나 여자가 쉽지 않을 터인데”

         “어려운 일은 아니야, 안정된 것이 아니지만, 어설프게 직장 다니는 것 보다 수입이 좋아, 내 시간도 자유롭고, 일하고 싶으면 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처음 갔다. 여자와 남자들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대충 스물 댓 명이 모여있다. 어릴 적 모습이 많이들 남아있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도 있지만 다들 동창이라고 반갑게 맞아준다. 부드러운 인상에 따뜻한 느낌이다. 곱슬머리가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금테안경을 한 남자애가 바람이 불어오듯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안녕’ 하는데 성우 목소리인가 착각할 정도로 ‘어! 좋은데’ 하는 그런 남자 음성이었다. 여자의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개별적인 느낌이다. 대산동 래미안에 산다고 한다. 중문동과 대산동은 한 정거장이다.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뭐 하는 애인가?’궁금은 했지만 직접 묻지는 않았다. 다른 동창들하고 대화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IT 관련 사업을 했다가 사업이 망했다고 한다. 오늘 낮에 문자를 하고, 지금 술집에 마주 앉았다.

         “너 무슨 일하는 거야, 부동산 쪽인 것 같은데, 중개업자야”

         “아니, 분양하는 일을 해, 들어보았니?”

         “아니, 처음 들어봐, 분양이 뭐야?”

         “분양이라고” 

         미희가 웃는다. 미희가 왜 웃는지 모른다. 태현은 당황하였다. 잠시 생각한다. ‘분양이라는 것을 한다. 분양, 강아지 분양은 들어보았다.’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다. ‘분양’이라는 단어에서 추리를 시작한다. ‘영업 같은 거구나’ 조용히 혼잣말처럼 한다. 

         “야! 모르니깐 물어보지 뭘 웃냐?”

         “아니, 너같이 배운 놈이 분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잖아, 너”

         “영업 같은 거지?

         “음, 비슷하지, 영업이라 할 수 있지”

         “그럼 어디서 하는 건데? 나도 할 수 있을까?”

         “지금 용인 동백지구에서 일해, 쥬네브라고 들어 보았어?”

         “아니, 나야 잘 모르지, 용인에서 일한다고, 여기서 용인까지 출근하는 거야? 쥬네브는 또 뭐야?”

         “요즘 부동산 투자로 가장 뜨거운 지역이다. 너도나도 다들 돈 된다고 해서, 나도 여기에서 일한다. 분양 좀 한다는 사람들 다 여기 모여있다고 보면 된다.”

         “아 그래, 뭔 말인지 모르겠다. 난 부동산 집 보러 다닌 적도 없다. 부동산은 관심 없이 살았지, 등기권리증이 집문서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너 같이 배운 놈은 이런 거 하면 안 돼, 먹물 들어간 놈이 할 일이 아니야.”

         “뭐 어려운 일이야?” 

         “쉽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야, 근데 너는 하지 마라. 너 같이 고급인력이 할 일이 아니다.”

         소주병이 쌓였다. 늘 그렇듯이 태현이는 이미 주량을 넘었다. 하지만 미희가 보는 태현은 멀쩡하였다. 말투가 공손하고, 말이 꼬이지 않았다. 생각에 분명함이 있는 친구처럼 보인다. 태현이는 자기가 술 취한 것을 주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늘 신기하였다. 술 취한 눈으로 보는 미희는 이쁘고 말도 잘하였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공부는 담을 쌓고 살았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중학교 때 돌아가시었다. 남동생하고 둘이 남았다. 고등학교는 졸업장만 따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돈 버는 일을 고등학교 때부터 했다. 또래의 친구들과 놀 시간도 이야기할 친구도 없었다. 중문동에 지하 방을 하나 얻어 남매가 살았다. 졸업하면서 동대문 평화시장 원단 도매를 하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을 했다. 밤 10시쯤 출근해서 아침에 퇴근하였다. 여자치고 유별나게 하얀 피부에 숏컷트 머리가 잘 어울리는 얼굴이라 이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통장에 쌓여가는 돈을 보고 거울 보면서 혼자 웃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가 동생이 자석요를 파는 다단계에 빠졌다.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빈 통장이 되었다. 동생이 미안해하면서 집을 나갔고, 연락이 끊어졌다. 돈 벌어서 누나 돈 갚겠다는 종이 한 장 써놓았다. 불 꺼진 방에 누워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미희는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동대문 ‘밀레오레’가 개발되는 것을 보았다. 분양 영업사원인 어떤 여자가 분양전단지 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갔다. 분양전단지를 한쪽에 치워 놓았는데, 늦게 출근한 여사장이 그것을 보고 전화하였다. 여사장은 점포 4개를 분양 계약하였다. 그 뒤로 그 여자와 말을 트게 되었다. 하루에 한 번 정도 가게 앞으로 지나간다. 가끔 커피 한잔 나누면서 수다를 떨었고, 분양하는 사람들이 수수료로 얼마 버는지를 알았다. 분양전단지를 자기가 쓰레기통에 버렸으면 그 여자는 돈을 못 벌었을 것이다. 아무 의미 없이 지나칠 작은 그 경험으로 새로운 인생이 운명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술기운이 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면서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소주잔을 입술로 가져가, 술이 입술 사이로 사라지게 하는 여자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본다. 여자의 외로움이 술잔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아니다. 삶 그 자체에 대한 외로움이다. 자기 인생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불안한 외로움이다. 자기와 같은 외로움이다. 할부로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외로움이다.

         “자, 마셔, 너 술 취했냐?”

         “아니, 너는, 너 술 취했냐? 술 안 취해 보이는데, 주량 어떻게 돼?”

         “보통 소주 5~6병은 먹지, 그리고 2차 가고, 좀 먹는다.”

         “자, 그럼 마셔, 너 오늘 잘못 걸렸어, 나 오늘 술 먹고 싶거든, 밤은 길다.”

         “OK, 노 플라블럼”     


         


         술에 취해가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교회를 다니면서 중1 때 세례를 받고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장손이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집안의 반대로 신학교를 가지 못했다. 신과의 약속을 깬 마음이 괴로웠다. 사업해서 돈을 벌면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타협을 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들과 달리, 선배와 기계 설비를 취급하는 오파상을 차렸다. 3년 뒤에 번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다툼으로 헤어졌다. 반도체 회사에 입사하였지만 4년 뒤에 IMF로 명퇴하였다. 1999년도 벤처 창업 바람이 불면서 의료기 전문 쇼핑몰인 medishop.co.kr하고 웹진인 ifstory.com을 만들었다. 가정 의료기 쇼핑과 가정간호, 화상 원격 진료로 시작한 Business Model은 수익 창출에 실패하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풍자하는 웹진 사업은 딴지일보에 밀려 존재감이 없었다. 사업하면서 인맥을 만들고자 MBA 대학원을 다녔다. 사업은 망했다. 그리고 벤처 기업의 영업 대표로 이직하였지만, 그 회사도 망했다. 가는 회사마다 망했다. 이래저래 소개받아서 가면 사기꾼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지금 2년째 백수이다. 아침에 갈 곳이 없다. 경복궁 옆 효자동에서 출판업을 하는 친구 사무실에 간다. 점심 얻어먹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수원에서 자바라 제조업을 하는 친구가 일손이 부족하면 가끔 전화가 온다. 그러면 부산까지 따라가서 물건을 까대기하고 용돈을 번다. 저녁에는 대산 시장에서 돼지 허파와 막걸리 먹고 술에 취해 들어간다. 망했다는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집에서는 사업을 하는 줄 안다. 

         남자에게서 절박한 고독을 보았다. 제대로 밥벌이 하는 놈이 아니었다. 열심히 산 것처럼 보이는데,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나마 마누라 잘 얻어서 그 덕에 사는 놈처럼 보였다. 실패만 계속한 남자였다. 대기업 다니고, 전문직에 있고, 사업을 하는 동창들 속에서 혼자 실패자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야, 힘내”

         “응, 고맙다. 너도 힘내고”

         “자, 마셔”

         “그래 마시자. 인생 그냥 사는 거야, 신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거야, 사람은 제 팔자대로 사는 거야, 신이 내 인생을 그렇게 설계한 것이야, 그러니깐 난 그렇게 사는 것이고, 너도 그렇게 사는 것이고”

         “뭐라고? 너 술 취했냐?”

         “너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지? 하나님은 말이야,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방관자 하나님, 그리고 침묵의 하나님이야, 사랑의 하나님은 말장난이다. 내가 30년을 교회 다녔는데, 단 한 번도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남자가 갑자기 하나님 타령하자, 술에 취해서 저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태를 파악하고자 남자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래, 내가 교회 가본 적은 어릴 때 크리스마스 때 가본 게 다다.”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란 말은 들어보았지?“

         "당연히 들어보았지, 교회 안 다니는 사람도 그런 것은 안다."

         “하나님이 인간 사랑한다고 하잖아.”

         “그래, 교회는 사랑이잖아” 

         “아니야 성경책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자기한테 잘하는 인간만 사랑하지, 자기 말 듣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거든, 그래서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헌금 많이 하고, 목사 말 잘 듣고, 그러면 집사 되고, 권사 되고, 장로 되는 거야,”

         여자는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가만히 듣는다. 그리고 술 취했다고 판단을 내리고는 술을 한 모금 마신다.

         “일요일에 툭하면 빠지고, 헌금도 안 하고, 목사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나는 내가 아무리 ‘하나님 사랑합니다.’ 해도 사람들이 안 믿어, 신은 나에게 복종을 요구하는데, 난 그 복종이 싫거든, 복종하고 성경책에 쓰인 글대로 살라고?’ 

         신을 사랑하지만, 복종하고 싶지는 않아. 나라는 존재가 내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거야, 난 그게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데, 교회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안 하지,’ 

         하나님을 빙자해서 성경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말장난처럼 설교하는 놈들 보면, 구역질이 난다. 그런 사람을 보면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의 절규가 이해된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지, 구속을 준 것이 아니야.”

         남자가 떠드는 말이 뭔 말 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 듣는 척 하면서 술을 마시고, 그렇게 대화를 이어간다.

         "너, 교회 다니는 사람 맞지"

         “교회 나가지, 그런데 잠만 자다 온다. 설교 시간 되면 바로 자, 그래서 인생이 안 풀리는 거다. 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맨날 이렇게 딴지 걸고 이상한 소리 하는데, 뭐 잘 되겠니?”

         “그래도 교회 다니는 거네”

         “교회 다니고, 안 다니고는 중요한 게 아니야, 신앙인으로 사는가?, 안 사는가? 그게 중요한 거지, 교회 다니면서 이웃사랑 외치고, 일요일에 교회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반가워요.’ 하지만 사랑이 뭔지 몰라.’ 

         모르는 사람들한테 ‘사랑합니다.’라고 떠들면서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챙겨준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가족들에게는 무관심하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전혀 몰라.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한다.” 

         앞에 앉은 여자가 자기 말을 잘 듣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듯 노려본다. 그리고 술 한 잔을 마시고 빈 술잔에 술을 따라달라고 손을 내민다.

         “웃기는 것 같아. 말 나온 김에, 남자와 여자들의 사랑도 마찬가지야, 사랑한다고 말해, 그런데 사랑이 뭐야, 사랑의 감정이 있으면 만나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만지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섹스하고 싶고, 뭐 그런 게 사랑이란 감정이잖아. 결국 남녀 간의 사랑도 되게 웃겨, 그냥 감정의 유희야.’ 

         그리고 헤어지면 사랑이란 것을 하기는 했을까 싶을 정도로 남이 되어버려, 사랑해서 결혼은 한 것일까? 같이 살다가 한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은 오매불망 그리워할까? 아니면 다른 사랑 찾아갈까? 그 시간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사랑을 내가 가진 모든 것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 너밖에 없다. 내 삶의 전부는 너라고 하지, 너만 행복하다면 내 한 몸뚱어리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 뭐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사랑하네, 아니네 하는데, 맞나?” 

         남자는 한숨을 쉰다. 술잔을 들고 술잔에 담긴 술을 그윽하게 쳐다본다. 오른 손 검지를 소주잔에 살짝 담갔다 꺼낸다. 그리고 맛을 본다. 여자가 웃긴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난 그런 것 없는 것 같은데, 다 조건부야.” 말이 끝나자마자 소주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마신다. 그리고 소주병을 잡고 잔에 술을 따른다.

         “신이든 가족이든 친구이든 애인이든, 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천성이 이기적이 동물이다. 선보다는 악에 가까워, 사랑이 있으면 욕심이 없어질까?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랑하기 때문에 탐욕이 더 많이 생기고, 악랄해지는 것이 아닐까?’ 

         결국 다 말장난이지, 자기 말 잘 들으면 그게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신이나 인간이나. 참, 교회는 돈 갖다 주면 좋아는 하더라. 우리 엄마가 교회에 준 돈이 꽤 될 거야, 그래서 하나님 사랑 듬뿍 받잖아. 며느리 말 잘 들어, 아들 말 잘 들어, 딸도 말 잘 들어, 사위도 그렇고, 사고치는 자식이 하나도 없어.”

         “야 뭐가 그리 복잡해, 그래서 사랑하면 사랑이고, 사랑 안 하면 사랑 아닌 거지”

         “그러니깐 사랑이 뭐냐고? 미희야, 난 모르겠다고” 고개를 숙이고 자기 앞에 놓인 술잔을 본다.     


         5     


         술에 취한 것 같은데, 말의 앞뒤가 살아있다. 가슴 속에 늘 품었던 것이다.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미희의 첫사랑은 유부남이었다. 평화시장에서 일하다가 알게 된 거래처 사장님이었다. 그 남자를 좋아하였고 의지하였다. 같이 있으면 재미가 있었다. 섹스를 할 때마다 사랑한다는 남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였기에,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였고,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1년 정도 교제하다가 남자가 관계를 정리하기를 원했다. 집에서 눈치를 챈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할 수는 없다면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족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고 하였다. 어떻게든 이별을 피하고자 3개월 정도 실랑이를 하였지만, 남자는 초라한 이유를 반복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를 하찮은 존재로 취급한 남자의 교묘한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사랑을 구걸하는 모멸감에 무너진 미희는 일그러진 마음으로 이별을 받아들였다. 

         사랑이 뭐냐는 태현의 질문에 당황했다. 자기가 유부남을 만났을 때, 결과야 어찌 되었든 사랑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부동산이나 해볼까?”

         “그래 해봐라”

         테이블에 빈 소주병이 늘어난다. 두 사람은 취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머리는 맑아졌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모를 수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술 마시는 지금은 너무 정신이 또렷하다. 취했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미희야, 많이 먹었다. 집에 가자.”

         “그래, 잠깐 계산하고 오마”

         밖을 나오니 휘황찬란한 중문동이다. 울긋불긋 밤거리는 화려하다. 술 취한 젊은이들이 이쪽저쪽에서 걸어온다. 젊음이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로를 달리는 차의 불빛이 꼬리를 물고 왔다 사라지는 것을 본다. 칙칙한 낮보다 좋다. 술에 취해 보이는 세상이다. 미희가 웃으면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가게 문 앞에 서 있는 태현이가 담배를 물고 뒤돌아 자기에게 손을 흔든다. 자기는 세상에 혼자라서 아슬아슬하게 사는 것 같은데,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사업이 망해서 밑바닥까지 추락한 놈치고는 너무 여유가 있다.

         “가자. 너 취했니?”

         “아니, 이정도야 뭐, 괜찮지, 술값 많이 나왔지? 다음에 내가 살게 미희야”

         “야 됐고, 노래방 갈까? 괜찮아?”

         “나야, 뭐 좋지”

         술집을 나오면서 미희가 옆에서 팔짱을 낀다. 팔에 와 닿는 여자의 가슴이 느껴진다. 태현이는 노래방이 어디 있나 고개를 들어 찾는다. 네온사인의 불빛이 가득한 밤하늘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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