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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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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Aug 20. 2023

불혹  4. 불륜

<부동산소재소설 1부>

            1     


         술은 먹지 않고, 이야기만 쌓인다. 자리 옮기자고 한다. 골뱅이는 반도 안 먹었다. 2차 가자고 하면서 일어난다. 계산하러 안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담배 연기와 술 먹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이다. 아슬아슬한 인생을 사는 놈처럼 보인다. ‘저 새끼 어떡하지’ 태현의 뒷모습에서 자기가 보였다. 

         둘이 밖으로 나왔다. 태현이가 담배를 문다. 연기를 뿜어낸다. 

         “어디 갈까? 한잔 더할 수 있어?” 

         “너는? 너 괜찮아”

         “일단 좀 걷자.”

         거리를 걸으면서 미희가 태현이 팔짱을 낀다. 얼마 걷지도 않아서 태현이 팔짱을 푼다. 풀린 미희의 손을 가볍게 잡는다. 미희는 잡힌 손을 빼지 않는다. 손을 감싸고 있는 남자의 손이 따뜻하다. 저만치 앞에 ‘Apple’ 빨간색 불빛이 보인다. 2층에 있는 BAR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붉은 조명이 검은 벽에 그려진 빨간 사과를 비추고 있다. 은은한 향기가 난다. 한쪽 벽은 술이 진열되어 있고, 화려한 조명이 진열대에 있는 양주병을 신비롭게 만들고 있다. 젊은 여자 두 명이 진열대를 등지고 서 있다. 맞은편에는 분리 벽과 커튼이 내려지는 테이블이 4개 보인다. 그리로 갔다. 양주 한 병과 치즈가 테이블에 깔렸다. 아가씨가 커튼을 내려주고 간다. 자기 앞에 있는 잔에 술을 따르고, 미희에게도 따라준다.

         “고맙다. 미희야,”

         “네가 특이한 놈인 것 같다. 맞다. 너 이상한 놈이야.”

         “1년 전쯤 되었지, 여기 중문동에서 너하고 소주 처음 먹은 것이, 하나 물어보자, 그때 왜 나한테 술 먹자고 했어? 동문회 처음 나오던 날, 너하고 나하고 말 별로 안 했잖아”

         “그냥 술 먹고 싶어서, 여자 혼자 어디 가서 술 먹기 힘들잖아. 청승맞고. 네가 대산동에 살고 있으니 옆 동네잖아.”

         “그랬구나” 

         테이블 위에 미희의 손이 있다. 은은한 테이블의 조명에 가지런히 보이는 여자의 손가락과 손등이 남자에게 유혹으로 다가온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기억 속의 설렘이 두근거리는 박동을 남자의 가슴에 일으킨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내적인 갈등이다. 우습게도 본능적 욕구가 이성을 이기고 있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다.      


         2     


         남자는 손끝으로 여자의 손등을 살살 어루만진다. 여자는 현실이 몽롱함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조명은 남자를 실루엣으로 만든다. 테이블 위에 먹다 남긴 술이 반쯤 담겨있는 술잔이 있다. 남자가 손을 가볍게 잡는다. 자기의 손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본다. 남자의 손안에 숨은 것이다. 불빛에 남자의 손등이 하얗게 보인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적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듯하다. 초점을 잃은 듯한 눈이 남자의 손등에 있는 혈관을 찾는다. 눈이 순간적으로 커진다. 숨 쉬는 것을 잊은 듯 맥박이 빨라진다. 고개 들어 조명 뒤 어두움에 숨은 남자를 찾는다.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입술에 수줍게 피어나다 사라지는 여자의 미소는 남자의 눈 안으로 녹아들었다.

         남자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몸을 앞으로 내밀어 미희의 입술을 훔친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고 생각하였고, 순간적으로 여자의 눈으로 파고드는 남자의 모습에 눈을 감았다. 머리를 옆으로 돌릴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못 움직였다. 멍했다.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코끝으로 술 향이 오르는데, 몽롱했다. 아랫입술이 본능적 감각으로 벌어진다. 부드럽게 스치고 간 차가움이 입술에 남아있다. 남자 입술의 흔적이다. 아쉬운 호흡이 길게 나온다.

         “아~,” 여자가 들리듯 말 듯 한 숨 소리를 뱉어낸다. 

         “뭐, 하자는 거니?”

         “그냥, 하고 싶어서,” 

         잠깐의 시간, 정적이 두 사람을 감싼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뜸들이다가 부끄러운 호기심이 여자에게 생긴다. 여자가 조용히 말을 꺼낸다. 

         “그럼, 뽀뽀 하지 말고, 키스해줘”

         남자가 일어나 여자 옆자리로 옮긴다. 또다시 정적이 두 사람에게 흐른다. 여자 어깨에 남자가 손을 얹으니, 여자가 머리를 기대어 온다. 상대의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 진동을 밀착된 몸으로 느낀다. 여자는 진지하게 어둠 속에서 기다린다. 어쩌다가 남녀는 눈길을 서로 마주친다. 남자는 여자의 한 손을 잡고 영혼이 끄는 대로 끌고 간다. 남자의 입술이 여자의 머리, 이마, 코를 따라간다. 여자의 냄새를 찾는 남자의 본능이다. 얼굴이 스치듯 가까워 여자가 내뿜는 한 줌의 날숨은 남자의 들숨이 된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흥분한 여자의 입술이 욕망으로 벌어지는 찰나, 남자의 입술이 포개진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끝이 파고든다. 부드러움이 가득하다. 깊숙이 안으로 삼킨다. 몸이 잔잔하게 떨린다. 상대의 숨결을 느낀다. 단전이 뜨거워지며 찌릿찌릿하다. 여자의 겨드랑이에 남자의 손이 낀다. 그렇게 멈추어진 시간이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다. 입술이 떨어지고 얼굴이 멀어지고 눈을 뜬다. 상대의 은밀한 살 냄새가 입안 가득하다. 가장 단순한 쾌락에 서로의 눈빛이 달라졌다. 남자의 눈에 욕정이 가득히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을 본다. 여자의 눈에 눈물이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을 본다. 

         “우리는, 뭘까? 사랑은 아닌 것 같은데, 태현아”

         “사랑, 사랑이 뭘까? 지금, 지금, 내 감정을 사랑이라고 표현한다면, 사랑일 것이고, 아니라고 한다면, 아닌 거지 뭐, 미희야, 나 너 알아, 너 나 좋아하잖아”

         가만히 고개 숙여 귀에 입을 맞추고 다시 속삭인다.

         “너 나, 좋아하지?”

         남자의 목소리는 파괴적인 돌풍이 되어 여자를 살아나게 하였다. 심장의 펌프질이 커지면서 귀에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피가 뜨거워진다. 남자의 입술이 닿았던 귀가 뜨겁게 달궈져 가고 있다. 입이 살짝 벌어졌다가 닫힌다. 천천히 낮은 소리로 말한다.

         “음, 모르겠다. 헷갈려, 좋은 감정이 있으니, 너 연락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온 거지, 그것은 맞는 것 같아, 그런데 마음이 복잡해,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너에게 짠한 마음이 있어, 이것은 남녀 감정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미희야, 나 네가 좋다. 이 감정을 뭐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워, 그냥 좋아, 너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 내가 잘되는 모습을 너에게 보여 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그리고 너에게 축하받고 싶고, 위로도 받고 싶고,’ 

         그래, 이런 감정이 뭘까? 이게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이고, 감정의 유희라고 하면 감정 놀이이고, 난 잘 모르겠어.”

         둘이 눈이 마주친다. 

         “태현아, 안아줘”

         사랑을 받는 느낌에 행복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눈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나왔다. 예전에 유부남을 만날 때는 이런 감정이 없었다.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이 없었다. 사랑을 한다는 그냥 그런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순간은 그때와 달랐다.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또 다른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삶의 침묵 속에 억눌려 있던 여자의 마음이 솟아나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늦은 사랑이다. 눈을 감고 사랑을 불러오는 의식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3     


         1년 전, 노래방 간 게 생각났다.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해후’ ‘가는 세월’ ‘탁발승의 새벽 노래’ 등등 원래 가사가 그런 것도 있지만 아주 구슬프게 노래를 불렀다. 목청이 좋아서 듣기 좋았는데 슬펐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도 있었다. 그중에 최희준의 ‘종점’이라는 노래를 듣고는 가슴이 미어졌다. 마음속의 상처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슬픔 남자였다.     


         <너를 사랑할 땐 한없이 즐거웠고, 버림을 받았을 땐 끝없이 서러웠다.

         아려한 추억 속에 미련도 없다마는 너무도 빨리 온 인생의 종점에서

         싸늘하게 싸늘하게 식어만 가는 아~ 내 청춘 꺼져가네.

         너를 사랑할 땐 목숨을 걸었었고, 버림을 받았을 땐 죽음을 생각했다.

         지나간 내 한평생 미련도 없다마는 너무도 짧았던 내 청춘 종점에서

         속절없이 속절없이 꺼져만 가는 아~ 한 많은 내 청춘>     


         너무도 슬펐다. 남자가 우는 줄 알았다. 울었다면, 영문도 모르고 같이 울었을 것이다. 그때, 무슨 감정인지 몰라도 꼭 안아주고 싶었다.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눈을 감은 여자에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이 진짜로 안아주었었다는 착각이 들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 알았다. 노래방에 갔을 때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니 뜨겁다. 술 때문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뭔지 알게 된 부끄러움이다. 불혹에 사랑이 운명으로 다가온 것이다. 외로웠던 별 하나가 긴 꼬리를 보이며 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남자의 품에 안기고 있는 편안함이 좋다.     


         4     


         ‘안아줘’라고 미희가 이야기하였을 때, 놀랬다. 두 팔을 벌려 안아주었다. 자기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 감고 있는 여자를 보면서 ‘안아줘’라는 잠긴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외로움’이 느껴졌다. 이 여자는 이제부터 내 여자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들과 화해하지 못하여 얼어붙은 마음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20살에 한 여자를 만났다. 1985년 때이다. 당시 종로서적 뒷골목인 관철동은 젊은이들의 거리였다. 가브리엘이라는 지하 카페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들어오는 여대생의 모습에서 후광이 보였다. 첫눈에 반했다. ‘내 인생을 걸고 사랑을 할 것이다.’ 그렇게 순진한 20살 청년이 사랑을 고백하였다. 둘은 손잡고 종로 밤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20살에 시작한 사랑은 외사랑이 되어 분노의 사랑으로 끝났다. 사랑을 주는 사람은 어둠 속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사랑을 받는 사람은 빛 가운데를 사뿐사뿐 걷는다. 잔인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일방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을 잔인하게 유희로 즐기는 것은 사랑의 또 다른 권력이다. 그 절망 속에서 다시는 사랑이란 감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하였다. 사랑은 말장난이었다. 그날 밤 용산에 있는 집창촌에 가서 총각 딱지를 버렸다. 그리고 1년 뒤에 선을 보았고,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집사람, 은옥이다. 


         5     


         왼손으로 미희 몸을 감싸 안은 채, 술을 한잔 마신다. 술을 따른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미희 입에 댄다. 미희가 마신다. 남자의 얼굴이 다가온다. 눈을 감는다. 떨리는 입술과 또 다시 파고드는 혀끝 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우리, 불륜이다.” 미희가 입술을 떼면서 피식 웃는다.

         “불륜, 맞아” 

         “너, 다 버리고 나에게 올 수 있어?”

         “내가 꿈꿨던, 그런 사랑이 한때 있었지, 그런데 그런 사랑이 있을까? 전에 한번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난 사랑을 안 믿는다고, 다 감정의 유희라고”

         “알아, 그래서 하는 말이야, 행여나, 그런 생각 조금도 하지 말라고, 내가 말하는 거야, 넌, 그 자리에 있어, 난 너의 숨은 여자처럼, 살 수 있다.’ 

         너를 먼발치에서 훔쳐보는 것으로도 좋아. 약속할게, 너에게 뭘 바라지 않아. 나 때문에 너의 가정을 깨지는 마, 나 때문에 이혼 같은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마라”

         “그냥 너는 네 맘에 충실해, 나는 내 맘에 충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맘을 서로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이혼을 한다면 너와 관계없이 하게 될 것이다.”

         “넌 너의 길을 가, 힘들면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그래, 네 옆에서 내가 널 보고 있을게, 그렇게 나를 보는 그런 너를 보고 있는 나로 족해.”

         “미희야, 내가 주는 것은 생각하지 말고 다 받아, 그러면 된다. 그리고 받았으면 너도 나에게 줘, 기다리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받기만 하는 사랑, 주기만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은 말장난이다. 상처만 남을 거야, 주면 받고, 받았으면 줘.”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주저함도 있고, 집착도 있고, 분노도 있는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사랑을 가볍게 생각하겠다, 한다. 남자는 그 사랑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관계를 형성하는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열정이라는 본능과 냉정이라는 이성의 복합적 감정이다. 열정에 따른 본능과 이성의 중간 어디쯤에 사랑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 그 어디에 비어있는 공간이 있다면 본능과 이성이 스며들어 간다. 스며들어가는 조합 비율이 사람마다 다르다.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것은 사랑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비율이 극단적으로 가기 때문이다. 여자는 자기 사랑에 대한 비율을 조합 한다. 

         “여행 가고 싶다, 너하고 둘이”

         여자는 몸을 남자에게 바짝 다가간다. 남자와 가까이 있고 싶다. 전에 가져보지 못한 열정이다. 남자의 손이 얼굴을 만지고 있다. 그 손을 잡아당겨 자기 입술에 댄다. 남자의 입술이 다가온다. 머리부터 짜릿한 전율이 다시 흐른다.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잊기로 하였다. 추락하였던 자존감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남자가 여자의 아랫입술을 깨물다가 입술을 댄 채로 말을 한다. 

         “가자, 어디든, 둘이 가자”

         “나, 제주도 가고 싶어, 갈 수 있을까?”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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