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불혹 1부 02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국현 Aug 17. 2023

불혹 2. 인연

<부동산소재 소설 1부>

    1 


         “정 팀장님, 저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형님은 뭔가 하실 것 같아요” 

         이수역에 있는 호프집에서 마른안주에 500cc의 잔을 부딪친다. 6개월 전에 이수역을 걸어 나오다가 ‘시네마 상가 분양사무실’ 현수막을 보고 무작정 들어갔다. 

         “일비 얼마입니까? 저 일 좀 할 수 있을까요?” 

         정 팀장은 일비 받아먹고 노는 양아치인 줄 알았다. 커피 한 잔 주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사업하다가 망한 사람이었다. 일을 시켜 달란다. 부동산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불과 6개월 만에 전문가로 자리를 잡았다. 출근하고 보름쯤 지나서 자기에게 Deal을 하였다. 일비 만 원 받으면 조용히 PC방 가서 놀다가 석회(夕會) 시간 전에 올 터이니, 눈 감아 달란다. 그리고 반드시 6개월 안에 계약 쓸 것이니 자기를 믿어 보라며 웃는다. 

         말을 섞으면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있다. 부드러운 인상과 듣기 좋은 목소리도 한몫했다. 일단 마음이 가는 대로 그 말을 믿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유 없이 마음이 동하였다. 사석에서 형님으로 부르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형님이 처음 일 좀 해보겠다고 오셨을 때 놀랬습니다. 저도 이 일을 한 지는 4년 정도입니다만, 대부분 소개로 오는 것이지, 형님처럼 자기 발로 찾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그런가요?”

         “네~”

         “정 팀장님은 제가 부동산으로 인연을 맺은 첫 번째 사람입니다. 지금 네이버에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상가 114, 상가뉴스레이다, 조인스랜드와 부동산 114, 스피드뱅크 등등에 부동산 칼럼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3~4개월 지나면 원고가 어느 정도 확보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상가투자 관련하여 책을 출판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합니다. 정 팀장님이 도와주시어야 합니다.”

         “아이고 형님, 제가 형님한테 부탁하여야지요, 형님 계약 쓰시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부동산을 하나도 모르던 사람이, 어떻게 일을 이리 잘하십니까?” 

     호프 500cc 잔을 한 손으로 들어 상대의 잔에 살짝 부딪힌다. 

         “저는 형님이 못 버틸 줄 알았는데, 한두 달 하다 그만둘 사람으로 봤었거든요. 암튼 대단합니다. 분양 수수료가 3% 나오니깐 2억 정도 되지요?”

         “뭐 대충 그렇습니다.” 눈을 마주친다. 500cc 잔을 들자, 정 팀장도 잔을 든다. “정 팀장님이 잘 이끌어 주시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형님 덕에 저도 팀장 수수료 4,300만 원 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잔을 부딪친다. “오늘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맘껏 드세요, 형님 2차도 쏘겠습니다. 지금 형님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들 형님 칼럼 보고 오시는 것이지요?”

         “네, 맞습니다. 제가 쓴 부동산 칼럼 읽고 스피드뱅크와 상가114 등등에서 상담 신청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들을 만나고 가짜로 만든 명함을 보여 줍니다.”

         “진짜요?”

         “네~, 아직 제가 사업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가 스피드뱅크나 상가 114의 직원으로 압니다.”

         “IT 컨설팅 방법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만납니다. 한번 만나고 두 번 만나고, 그렇게 서너 번 만납니다. 그들은 이미 저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오기 때문에 반은 제가 먹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물건 자료를 꺼내서 브리핑해 줍니다. 그들 마음에 저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설득하기 쉽습니다.”

         “그게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 가보시었나요? 목사가 설교하면서 하는 말 중에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목사들 화법입니다. 뭔가 따지고 싶은데 못 따지는 것이죠, 선택은 제가 하는 것입니다.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은 그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제가 하는 것입니다.”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생각났다. 119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는 의사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만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결정이 응급실 담당 의사의 손에 있는 것이고, 당사자는 물론 보호자인 자기도 그 행위에 일체 관여할 수 없었다. 하얀 가운의 권위에 눌려 이러쿵저러쿵 따질 수가 없었다. 설명해 주어도 모르니, 그냥 잘 부탁한다는 말만 하였다. 응급처치가 끝나자 입원 절차를 밟으라고 한다. 감사하다는 말과 원무과에 가서 청구서에 찍힌 돈의 숫자는 일체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 그때 느꼈던 느낌이다.

         “형님, 제가 보기에 형님은 조만간에 분양업계의 전설이 될 것 같습니다.” 대단하다는 의미로 ‘엄지척’을 하고 500cc 잔을 든다. “첫 계약이 나온 지 두 달 만에 5건을 계약한다. 저는 본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지금은 교회 안 가지만, 하나님은 어릴 때부터 믿었습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20년의 세월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였습니다. 정말 끝없는 추락을 하였고, ‘밑바닥 인생이다’생각할 때 부동산하고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이수역에 오시었잖아요?”

         “볼 일이 있어 이수역에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이수역에서 내렸고, 그렇게 생각 없이 걸어 나왔는데, 분양 현수막이 눈에 뜨인 것입니다. 발걸음이 분양사무실로 그냥 향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신의 장난일 수도 있지요.”

         20년의 침묵이 깨어나고 있다. 기도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적이 없었다. 소란스럽게 자신의 명함을 자랑스럽게 내미는 친구들을 보면, 성공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하였다. 그들은 월급쟁이였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생각으로, 자기 최면으로 살았다. 그 내면의 기도가 외부세계를 향해 빗장을 풀고 있다. 

         “근데 형님, 비법이 무엇인가요? 좀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사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이, 팀장님, 왜 이러십니까? 사부님은 무슨, 정 팀장이 제 사부지요, 부동산 첫 발걸음을 떼게 해주시었는데”

         ‘인연이 오면,’ 혼잣말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말을 한다. 

         “형님을 만난 것은 인연인 것 같습니다.” 

         증조부 때부터 한양에 살아온 서울 촌놈이다. 창경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종로 원서동에 있는 빌라가 집이다. 현대빌딩을 끼고 북촌 방향으로 걷다가 오른쪽 비탈길을 올라가야 있는 집이지만, 풍광은 서울에서 최고의 명당자리이다. 거실에서 창경궁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소파에 느긋이 앉아서 본다. 밤새 세찬 바람이 불고 눈이 오는 고요한 아침에 거실에 앉아있는 것은 사치다. 

         아버지는 종로 토박이, 동네 터줏대감이다. 어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 돌면, 골목에 얽힌 김두한과 그 시절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아버지만의 ‘야인시대’가 있는 것이다. 젊었을 때 김두한과 어울렸던 그 시절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늘 강조한다. 인연은 때가 되면 우연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앞에 불현듯 나타난다. 

         누구는 그 인연을 잡고, 누구는 그 인연을 스치듯 보낸다. 수년 동안 만나도 만들어지기 어려운 친밀감이 짧은 시간에 생기었다. 삶의 어둠에 희미한 빛이 비쳐지고 있다.      


         2     


         “정 팀장님, 부동산에 입문하고 보니, 다들 물건 파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정 팀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파는 것이죠.”

         “네, 그렇습니다. 팔아야 돈 버는 것이죠”

         “중개업소 사장님들은 무엇을 하나요? 물건 파는 것이죠, 시행사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물건 만들어서 파는 사람입니다. 인터넷에 있는 부동산 전문가들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전문가로 가장해서는 팔아야 할 물건을 파는 사람입니다. 다들 부동산 물건을 파는 사람 쪽에서 일합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저는 물건을 사는 사람 쪽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제가 IT 사업을 하고, 벤처 기업을 옮겨 다니고 하면서 컨설팅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기법을 부동산 분양에 접목한 것입니다. 부동산 분양, 영업 아닙니다. 부동산 Business Model에 연결한 것입니다. 아파트를 사는 사람, 땅을 사는 사람, 빌딩을 사는 사람, 투자가 되었든 실수요가 되었든, 그 사람에게 제 이름이 브랜드가 되어야 하고, 마케팅 포지션이 되어야 합니다.” 

         “형님, 역발상 같은 거죠? 좀 쉽게 설명해 주시죠.”

         “역발상 아닙니다. 그냥 비즈니스 눈으로 보면 당연한 선택입니다. 부동산 매도 물건은 확실한 공급, 부동산 사는 사람은 불확실한 수요, 미지수죠. 그럼 어느 쪽에 서 있어야 돈이 될까요? 역발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눌수록 ‘뭐 이런 사람이 있나!’ 놀라움에 경외감이 계속 들어왔다. 자기는 4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못 한 것이었다. 비록 자기가 공부를 못해서 수원에 있는 전문대 겨우 나온 것을 알고 있다. 머리가 나쁘다는 것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좀 다르다. 공인중개사를 따고, 보광동에 있는 중개업소에서 실장으로 근무했었다. 10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중개사로는 돈 벌기 힘들겠다 싶어서 분양 영업으로 온 것이다. 여기저기 현장 옮겨 다니면서 분양 영업하였다. 상담하고, 분양전단지 돌리고, 전화기를 잡고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앵무새처럼 떠들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물건 있는데,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임대료 300만 원 나오는 상가가 있는데, 투자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양수리에 땅이 좋은 게 있는데, 사장님 자료 보내드리겠습니다.’

         물건을 무한정 소개하다 보면 언젠가 하나 걸리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운 좋으면 계약하고, 운 나쁘면 굶는 것이 분양 영업이었다. 영업사원 2년 정도 하다가 팀장으로 움직였다. 피라미드 앵벌이 조직이다. 밑에 쪽수가 많으면 운 좋은 직원이 있을 것이고, 자기에게도 수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분양하는 사람이 전국에 10만 명이 있다고 한다면 10만 명은 자기처럼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분양 판에 뛰어든 지 6개월도 안 된 사람이었다. 자기가 분양 판에서 지금껏 번 돈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전율이 몸에 싸하게 흘렀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자랑할 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남들처럼 평범한 그런 삶이었는데, 본인의 밥벌이 능력이 왜 남들보다 떨어지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제 그 이유를 가르쳐 줄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아침에 조회가 끝나고 일비 만 원 받아, 인근의 PC방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컵라면을 하나 먹고, 남은 돈으로는 담배를 샀다. 저녁 석회까지 네이버 창에 단어검색을 하면서 부동산 공부를 했다. 부동산이란 상품을 모르는 것이지 사업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산전, 수전, 그리고 공중전까지 이미 겪었다. 

         아파트는 부동산 전문가라는 K와 P가 이미 TV와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토지와 경매에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넘친다. 불혹의 나이에 부동산에 뛰어들면서 이들과 경쟁하여야 한다. 저들이 손 안되는 상가에 승부를 걸기로 한다. 상가투자에 대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분양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연관어로 개발을 알아야 한다. PF, 시공, 신탁사, 위험, 분양, 청약, 등기, 전매 등등 끝없이 등장하는 단어를 검색하고, 단어가 모인 문장을 이해한다. 그리고 본인이 이해한 것으로 TEXT를 만들어 칼럼을 쓴다. 열흘쯤 지났을 때 첫 칼럼으로 A4 한 장이 완성되었다.

         칼럼은 성공적이었다. 칼럼 6개를 인터넷에 올렸을 때 스피드뱅크와 조인스랜드에서 연락이 왔다. 네티즌들의 조회 수가 게시판의 다른 글들과 비교하였을 때, 폭발적으로 많다고 한다. 조회 수가 너무 많아 전문가 게시판을 별도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입문하고 3개월 되어서 부동산 전문가 타이틀을 얻었다. 지금은 칼럼 하나를 쓰는데 3~4일 정도 소요된다. 1~2시간에 한 칼럼 쓰는 것이 목표이다. 아직 더 공부해야 한다. 불혹의 나이에 뛰어들었으니 남보다 열 배는 공부해야 한다. 

         스피드뱅크 관리 책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칼럼니스트 상호 간의 소통하는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가짜로 만든 명함을 들고 모임에 가 보았다. 토지, 경매,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등의 칼럼을 쓰는 전문가들과 가끔 방송에 보던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파트 전문가로 활동 중이며 SB 정보업체의 부사장인 P도 자리에 참석했다. P는 이번에 출판한 책이라며 사인해서 준다. P 중심으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태현이는 승부욕이 발동했다.      


         3     


         “형님, 형님 계획이 무엇인가요?”

         “저요, 일단 분양대행사를 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년 안에 제 이름으로 서울에 빌딩 하나 올려보는 것입니다.”     


         4     


         부드럽지만 속삭이듯 자기감정이 어떤지 생각에 잠긴다. 삶의 공범자가 되어야 한다는 느낌이다. 호기심으로 저 사람을 바라본다. 막연하지만 분명하게 ‘결심’이 다가오고 있다. 이 결심의 시작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두려움에 망설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처리하여야 한다. 복잡하게 받아들이면 아무것도 못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 왔다. 인연이다. 그동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살아온 시간은 혼란스러운 연습이었다. 이제 실전으로 가야 한다. 그럴 때가 된 것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이전 01화 불혹  1. 유혹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