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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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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Aug 18. 2023

불혹 3. 위로

<부동산소재소설 1부>

         1     


         문자가 왔다. ‘어디야 술 한잔할까? 지금 이수역이다. 시간 되면 중문동에서 한잔하자’ 문자를 보자마자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거울을 보고 가볍게 화장한다. 일어난다. 다시 앉는다. 거울을 보고 립스틱을 바른다. 옷장을 열어보고 빠르게 손으로 옷걸이를 치고 나간다. 투피스 롱 원피스에서 손이 멈춘다. 속옷부터 새것으로 갈아입는다. 새로 꺼낸 옷의 부드러운 감촉이 좋다. 거울에 비친 반짝이는 눈이 웃고 있는 미소를 본다.     


         2     


         문자를 받았다 ‘오늘 늦음, 일 관계로 접대가 있음’ 받은 문자에 회신을 주었다. ‘그래, 너무 늦지 마, 먼저 잔다.’ 부동산 사업을 한다고 6개월 전에 말을 했었다. 3개월 전에 옷 사 입으라고 500만 원을 주었다. 그리고 한 달 지나서 용돈이라고 1,000만 원을 주었다. 어제는 3,000만 원을 주었다. 겁이 났다. 돈뭉치를 받고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싸늘하게 대답을 한다. 

         “부동산 한다고 했잖아. 돈 안 줄 때 관심 없더니, 돈 주니 물어보네,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가?” 

         부부가 되어 삶의 극히 일부만을 공유하고 있다면, 공유하지 않는 다른 삶은 모순으로 가득한 공유이다. 개별적인 모습을 서로가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서로가 다른 삶을 사는 것이고, 평생을 살아도 낯선 모습으로 각인되어가는 것이다. 상호 간의 존중은 겉으로 나타난 모습이고, 실제는 무관심한 계약관계이다. 돈은 여자의 마음속에 동요를 일으켰고, 남자의 말은 예리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3     


         ‘아무거나’ 술집에 도착하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하다.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백 골뱅이와 소주를 주문하였다. 소주 한잔을 마신다. 차가운 술이 가슴을 타고 내려간다. 물 한잔을 마신다. 1년 전에 이 집에서 처음으로 술을 마시었다. 그 뒤로 몇 번 더 술 먹는 자리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것은 여름을 다 보내고 찬바람이 불던 11월이었다. 뜬금없이 ‘부동산 입문함’이라는 문자가 와서 이수역으로 찾아갔다. 역 앞에서 몸에 홍보용 띠를 두르고, 분양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호객행위 하는 모습을 보았다. 걸어가는 나를 발견하고 멋쩍게 웃는 모습이 짠했다. 저녁에 태평백화점 뒤편 골목에 있는 식당에 둘이 앉아서 순댓국에 소주잔을 들었다.

         “진짜 하는 거야? 얼마나 됐어?”

         “뭐, 분양, 그럼 하는 거지, 이제 5일 차다. 근데 생각보다 재밌다.”

         “야, 태현아” 미희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왜?” 놀란 눈으로 미희를 본다. 

         “이거는 너하고 안 어울려, 이것 말고 다른 일 찾아서 해라. 네 마누라한테 이야기해, 바보같이 가만히 있지 말고, 너 망했다고 말해. 그리고 너 엄마도 돈 많잖아, 좀 도와 달라고 해, 네가 남편이고 아들이잖아.” 눈을 부라리고 노려보면서 말을 거침없이 내 뿜는다. 단호함이 소리에 담겨있다. 

         “너 대학원까지 나왔다면서 어디 좋은 일자리 없어, 아는 사람들한테 부탁해봐, 이쪽은 인생 막장인 애들이 오는 곳이야. 하루 5,000원, 10,000원 받고 찌라시 돌리는 거는 너하고 안 어울려, 지금 네 모습을 봐, 돈 만 원 벌자고 전철역에서 온종일 뭐 하는 짓이야.” 인상을 쓰면서 겁주듯이 말하지만, 남자 눈에는 그냥 귀엽게 보이고 있다.

         “계약 웃기고 있네, 너 같은 순진한 애들은 계약 못써, 지금 너희 분양하는 애들이 대충 40명 정도 되지, 그중에 몇 명이 계약을 쓸 것 같아. 지나가던 사람이 분양전단지 보고 계약한다고?”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친다. 

         “번갯불 맞는 확률이야, 말이 좋아 분양이지, 반은 사기야, 계약을 써야 돈 버는 곳이다. 너 알만한 놈이 왜 그래, 여기는 너하고 안 어울려.”

         “술 먹자. 숨 좀 돌리고 이야기해.” 

         남자는 웃으면서 자기 술잔을 건네고 술을 따라준다. 술잔을 받은 미희는 한숨에 마시고, 다시 술잔을 건네주고 남자에게 술을 한잔 따라준다. 

         “부동산이 이런 것인지 몰랐다.” 여자를 쳐다본다. “개인들이 부동산을 사면서 수십억을 주고받는데, 주먹구구식이다.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다. 차를 하나 사도 별의별 검토 다 하고, 이리보고 조리보고, 따지면서 사는데, 부동산은 그렇게 안 해, 그냥 돈 된다고 말 한마디 하면 사람들이 서로 막 사, 그게 말이 돼? 웃기지 않니?’

         이런 짓거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해, 어마어마한 돈이 부동산에 흐르고 다니는데, 와! 놀랬다. 이걸 내가 모르고 살았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나 부동산에 내 인생 모두 걸어 볼까 한다.”

         미희 앞에 앉아있으니, 갑갑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던 검붉은 장막을 찢는 느낌이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는 허영심인지 우쭐함인지 모를 감동적인 환상에 젖는다. 예수가 생각났다. 성경책을 보면 12살부터 30살까지 기록이 전혀 없다. 성경책에서 사라진 18년 동안, 예수는 인고의 시간을 가지고 목수라는 천한 직업으로 때를 기다린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30살이 되던 해, 바짝 엎드려 있던 예수는 그의 뜻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곧 온다는 종말론으로 로마의 최고 권력에 대항하는 대척점에 서있었다. 

         “분양 쉽지 않아. 하늘에서 돈 떨어지기 기다리는 사람들이야, 너하고 어울리지 않아, 너 또 상처받는다.” 자기를 쳐다보면서 웃는 남자를 보고는, 왜 웃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했던 말을 계속한다. 

         “지금까지 네가 해 왔던 일 하고는 완전히 달라, 너 걱정돼서 하는 이야기야, 그냥 다른 일 하면 안 되니?”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실패만 한 남자이지만, 친구들에게 기죽지 않는 자존심이 강한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겁이 난다. 자기로 인해 부동산 분양 판에 뛰어들었고, 인생의 험한 꼴을 볼까, 걱정되었다. 집을 나온 노숙자 얼굴이 남자에게 겹쳐졌다. 거지꼴이 되어 소주병을 한 손에 들고 거리를 싸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모습이 생각나서 호흡이 버거웠다. 가슴이 아리면서 눈에 살짝 이슬이 맺힌다. 

         “내가 돈 없이 한량으로 보낸 게 5년 가까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이라서 빚은 천천히 갚아도 되지만, 집에서는 눈치 보고 사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그 누구도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를 안 해, 말을 안 해 그런 것일 뿐, 다들 편하게 살아, 나만 힘든 것이야.”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니?” 여자 목소리는 따뜻함으로 변하고 있다. 

         “애들 엄마는 남편이 돈 벌이 능력이 없으니 시어머니 눈치 안 볼 수 있잖아, 당당하게 살지. 엄마는 아들이 당신 말이라면 껌벅 죽으니 편하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다투는데 이유는 하나야, 서로 자기 시간을 가지겠다는 거야, 둘 중의 한 사람이 집에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지. 그래서 오래전에 대화가 없는 집이 되었다. 멋쩍은 내가 이거는 아니다 싶어 뭔가 시도해도 안 먹혀,’

         둘 다 말 섞기 싫다는 것이야, 애 엄마는 애 엄마대로 스트레스도 풀고, 취미생활도 하고 싶은 것이고, 내일모레 환갑이 되는 엄마는 나이 든 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 밖으로 나가 노는 것이다.”

         대화는 눈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너무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라서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는데, 두 사람의 눈은 서로를 바라보며 잔잔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암튼 어쩌다가 평일에 내가 집에 있으면 다들 좋아한다. 그리고 돈도 못 벌면서 왜 나가냐고,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한마디 툭 던진다.’ 

         사업한답시고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서 애 보라는 것이지, 집에 있었으면 하고 노골적으로 눈치 주는 것이다. 알아서 기라는 것이지.”

         길게 한숨을 쉬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웃기지, 그래서 늘 술에 취해서 들어간다. 나라는 존재는 우리 집에서 없어진지 오래야. 가족들에게서 존재감이 사라진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게 어떤 감정인지, 너는 모를 것이다. 두 사람 다 내가 돈을 못 벌어도 자기들 인생에 큰 변수가 없다는 것이지.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돈이 곧 권력이 되는 건가 싶다.”

         혹시, 열등감인가 싶어 말을 한다. 

         “네가 술 먹고 싶어서 술 먹는 것은 아니고, 복 받은 소리 하고 있네, 안 쫓겨나고 사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 너 같은 놈을 데리고 사는 마누라한테 아침마다 절하고 살아라.”

         “그래, 맞아, 고맙지, 고마운 일이야, 그런데 내가 없다는 것이야,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야. 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자꾸 상기시켜, 그것을 난 못 견디겠어.”

         “그런 감정에 빠지지 말고, 능력이 되는 마누라가 돈 벌면 어때서? 넌 그냥 살아. 부모 도움받고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야. 너도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돼, 그거는 너의 복이야, 그냥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돼”

         “알지, 그렇게 평범하게 살수도 있지,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는 평범한 것으로 오지를 않아. 내가 그런 한량으로 살라고 하면, 난 굴욕적인 삶을 산다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내 삶에 내가 없다는 것은 참기 어려워. 내가 사업을 계속 실패해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내 삶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희가 고맙다. 밥벌이 못 하는 나로 인해 자신들이 불편해질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한 진짜 걱정이 눈에 가득하다.

         “그리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부동산 할 만한 사업이야, 기회가 많아. 부동산은 서부 개척 시대 같아.” 남자의 눈빛이 갑자기 강렬하게 변하는 것을 본다. 

         “깃발 꽂으면 내 땅이 되는 거야, 그것을 내가 보았다. 지금 내가 부동산에서 가장 밑바닥이라고 하자, 그럼 위로 올라가는 일만 남은 거야” 남자의 말에 자신감이 넘친다. 

         “내 삶의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야 한다. 내가 찌라시 돌리는 이유다. 지금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그림이 그려지면 너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하마”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정했다. 숲속을 지배하는 호랑이 그림이다. 사업은 호랑이를 그리는 것이다. 호랑이 그리다가 잘 못 그리면 고양이가 그려진다. 처음부터 고양이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고양이 그리다 잘 못 그리면 낙서일 뿐이다. 남은 인생에 미련을 남길 필요가 없다.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은 과거로 끝났다. 목숨을 걸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 싸늘한 과거를 경험으로 끄집어내는 현재의 그림이다. 

     

         4  

   

         그날 헤어지고, 늘 술에 취해 사는 남자가 이해되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인 것 같아, 슬펐다. 분양 일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을 것이 걱정되었고 이유도 모르게 미안했다. 몇 번을 연락해보고 싶은 것을 참았다. 연락을 먼저 하면 마음의 부담이 생길 듯해서 못했다.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좀 전에 여기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숨겨두었던 보고 싶음에 서둘렀다.

         남자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흔들면서 들어온다. 성큼성큼 걸어와서 자리에 앉는다.

         “뭐야 백 골뱅이야? 내가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잘 시켰다.”

         “잘 지냈냐? 분양할 만해”

         “오늘은 내가 술 한 잔 살게, 내가 너보다 돈 많이 버는 것 같은데, 내가 사마” 씩 웃는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오늘 내가 술 먹고 싶거든.”

         “왜 그래, 너, 내가 예전에 했던 말 아냐”

         “내가 너하고 술 먹고 싶어서, 호프집에서 달랑 오백 두 개 먹고 왔다.”

         “뭐야? 계약 썼니?”

         나를 보면서 웃는다. 내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자기 술을 들고 바로 마신다. 술 따라달라며 빈 소주잔을 손에 쥐고 내민다. 낯설게 보였다. ‘쟤 누구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 따라주는 내 손을 넘어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따라준 술을 바로 마시고, 빈 잔을 테이블에 놓는다. 남자가 주머니에서 휜 봉투를 꺼낸다.

         “내가 돈 좀 벌었다. 빚도 갚았고, 애들 엄마한테 남편 노릇도 오랜만에 했다.”

         “진짜구나, 어떻게 계약 썼니?”

         “너한테 고맙다. 이거 너한테 주는 내 마음이다. 내가 빚지고는 못 사는 놈이다. 너한테만 주는 것이 아니니 부담 갖지 마라. 밑바닥에서 발버둥 칠 때 신세 진 사람들 찾아다니며 고맙다고 인사 다니고 있다. 너는 나에게 부동산이란 단어를 알려준 사람이니 특별히 고마운 사람이다.”

         태현이는 미희를 보면서 계속 웃는다. 미희는 봉투를 들었다. 그리고 열어보았다. 100만 원 수표 10장이다.

         “야, 너 장난해,”

         “나 빚 다 갚았다. 네이버에서 지식 검색해봐, 인터넷에 내가 쓴 글이 여기 저기 검색될 것이다. 그리고 이 돈은 너한테 고마워서 주는 돈이기도 하지만, 너 스카웃 비용이야, 나하고 같이 일하자, 월급 줄게, 그리고 보너스도 줄게, 굶어 죽지는 않을 터이니 나 믿어봐라. 나 사무실 낼 것이다.”

         골뱅이를 하나 집어 들고 껍데기를 까서 속살을 발라낸다. 그리고 벌거벗은 골뱅이를 미희 앞에 있는 접시에 올려놓는다. 그 모습을 미희가 본다.

         “먹어, 먹으면서 이야기해”

         “이 미친놈, 이거 뭐 정말 미친놈이네”

         술을 마신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업에 대한 밑그림을 이야기한다. 여자는 남자가 똑똑한 놈이라고 생각은 하였지만, 정말 똑똑한 놈처럼 보였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말하는 남자가 섹시하게 보였다. 남자의 눈이 빛났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눈빛이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변한 것 같다. 속마음이 들어난 얼굴에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보였다. 저놈 말려야 한다.

         “태현아, 내 말 잘 들어” 비장한 얼굴로 말한다. “내가 너 같은 놈들, 이 바닥에서 많이 보았다. 분양해서 돈 좀 벌면 대행사 차린다고 깝죽거린다. 어떤 놈들은 시행한다고 개폼 떨고 다닌다. 그리고 돈 펑펑 쓰고, 자빠지는 것이지. 특히 너같이 배운 놈들이 그래, 좀 안다고 이 바닥을 아주 우습게 본다. 돈 좀 벌면 환장하는 것이지, 나는 너처럼 배우지 못했어도 양아치는 되고 싶지 않다.”

         “미희야,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야, 내가 양아치 안 되게 네가 내 옆에 있어 줘”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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