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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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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02. 2023

불혹 8. 불혹

<부동산소재소설 1부>

         1     


         벌써 송년회이다. 태현이는 옷깃을 여미고 2층으로 올라간다. 안쪽에 미희가 희수 옆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두 사람 앞에는 검은 카디건 걸친 형기가 앉아있다. 몇몇이 태현이가 오는 것을 보고 손짓으로 부른다. 태현이는 방에 들어서면서 손을 번쩍 들어 흔든다. 그리고는 하얀 와이셔츠에 소매를 걷어 올려 술을 마시는 호영이 앞자리에 끼어 앉는다. 구레나룻의 흔적이 얼굴에 보이는 호영이는 현직 검사이다. 덩치가 커서 마징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호영이는 태현에게 짱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절친이다. 당시에 담임선생님은 성적순으로 앞자리에 앉혔다. 그 바람에 1년 내내 짝꿍으로 지냈다. 태현이는 1등, 호영이가 2등이었다. 6학년 내내 그 등수는 바뀌지 않았다. 중학교 때 다른 학교로 갔다가 고등학교 때 다시 만났다. 고등학교 때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학교 복도에서 만나면 이유 없이 서먹서먹해서 서로 씨익 웃고 지나갔다. 문과와 이과로 나뉜 것도 있지만, 각자 자기 생각에 빠져있을 때이다.

         “짱구야, 술 받아” 호영이가 술을 따라준다.

         “OK. 넌, 일찍 온 거야. 고위 공무원이 야근하면서 일해야지 이렇게 나와서 술 먹으면 돼?”

         “야, 시끄럽고 술 먹어”

         “영감님이 소주 먹으면 되나, 폭탄주 드셔야지. 여기 양주 없나?”

         “너하고 나하고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말자. 애들 듣는다.”

         “알았다. 다음에 골프나 한번 치자. 조만간 연락할게”

         “그래 알았다. 골프.”

         “호영아, 재 알아? 미희 앞에 앉아있는 놈. 주먹이란다. 보기에는 이쁘장하게 체격도 왜소하고, 범생이 같이 보이는데 행동대장이란다. 나 지지난번에 처음 봤다. 상수가 이야기하더라. 강남에서 주먹으로 놀았단다. 상수가 좀 건들건들하잖아. 암튼 난 처음 보는데 초등학교 때도 재가 싸움을 잘했다고 하더라. 난 기억도 없는데”

         “난, 알지. 직업이 내가 뭐니?”

         “검사”

         “초등학교 때는 너나 나나 모범생이었잖아.”

         “그렇지”

         “그리고 당시에는 한 반에 80명씩 15반이 있었다. 누가 누군지 알아, 네가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형기 손 씻었어, 그쪽 세계에서는 한가락 했다. 지금 은퇴 했어, 그렇게 알고 있다. 뭐하면서 먹고 사는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 힘들 꺼야.”

         “아, 그래 너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역시 검사님은 다르구나”

         그렇게 동창 송년회는 여기저기 시끄럽게 떠들면서 술자리가 이어진다. 내과 의사인 병호가 몇몇 여자친구들에게 의료 상담해 주고 있다. 대한항공 기장인 호식이는 삼성증권에 매니저로 있는 연호와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태현이는 서너 번 자리를 옮기면서 술잔을 따라주다가 어느덧 나란히 앉아있는 미희와 희수에게 다가온다. 희수가 그것을 보고 ‘너, 서방님 오신다.’ 미희에게 귓속말한다. 미희가 눈을 흘긴다. 희수와 미희 사이에 태현이가 끼여 앉는다. 희수가 웃으면서 술병을 들고 태현에게 술을 따라준다.

         “나, 태현이야, 형기라고 했지. 내가 술 한 잔 따르마, 받으시게, 지지난번에 봤지? 그때는 내가 잠깐 들렀다가 가는 바람에 말도 못 섞었다. 초등학교 때 몇 반이었어, 한 번도 같은 반 된 적이 없나 봐”

         “6학년 때 너 1반, 난 2반이었다. 맨 꼭대기 층에 교실이 2개 밖에 없었잖아. 그래서 너 알아, 너 1반 반장이었잖아. 우리 졸업식 때 나가서 상 받는 것, 기억난다. 네가 세 번인가 연거푸 나갔지, 아마”

         “아, 그래, 두 번이야, 6년 개근상하고 우등상, 그런 걸 기억해주고, 암튼 반갑다. 나는 너를 모르는데, 너는 나를 아는구나. 이거 내가 불리한데, 암튼 술 먹자.”

         “반가워, 너 이야기 많이 하더라, 여기 친구들이”

         “어 그래, 뭐라고 그래?, 모임에 새로 온 친구한테 내 뒷다마 깐거야, 이것들이”

         “아냐, 너 대단한 놈이라고, 친구지만 정말 멋있는 놈이라고 하더라. 고생 많이 했다고, 열심히 산다고.”

         “하, 그래, 뭐 이것들, 오늘 확 술값 내 줄까 보다.”

         “태현 오빠, 고마워”

         “이놈, 희수야, 됐거든요”

         “암튼 형기야 자주 보자, 자주 나와라. 그리고 여기 미희 알지? 우리 회사 상무님이다. 내가 4년 전에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면서 스카웃 했거든. 그리고 궁금한 애들 있으면 이야기해, 내가 여기 있는 애들 뭐 하고 사는지 다 알거든, 신랑들도 다 알아.” 형기가 술잔을 들고 마시면서 태현을 본다.

         “어릴 적 친구들이라서 재밌다. 대산동이 서울에서 돈 없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잖아. 윗마을 달동네 아니면 아랫동네인 시궁창 시장 골목에서 살던 친구들이라서 가슴에 맺힌 한들도 많아. 물론 형편 좋았던 놈들도 있지만, 대산동에서는 다들 도토리 키재기이지,”

         아랫동네에 살던 형기는 장마철 비가 오면 하수구 물이 넘쳐서 퍼내었던 일이 생각났다. 정말 못사는 동네였다. 

         “그래서 그런가? 밖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끼리 모이면 다들 착해, 저기 증권사에 일하는 연호만 조심하면 돼, 투자하라고 꼬드기거든.”

         “나, 신랑 몰래 3,000만 원 쟤한테 맡겼는데 지금 1,800만 원이다. 손실이 커,” 희수가 웃으면서 술잔을 들고 말한다.

         “암튼 다들 열심히들 살고. 힘든 놈도 있지만 서로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것이지 뭐··, 우리 나이가 지금 그럴 때잖아,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나이, 불혹이잖아. 불혹이 뭔지 알아? 불혹은 다른 말로 유혹이다. 불혹의 나이를 살아가는 사람들···, 유혹받기 쉬운 나이···, 갈팡질팡하는 40대야.”

         “유혹받는 세대, 누가 나 좀 유혹해주라” 희수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불혹을 불혹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불혹은 유혹이 된다. 누군가가 잡아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지, 자기가 자기를 잡으라는 건데···, 그게 되냐?”

         형기가 웃음기 없이 태현이 말을 듣는다. 태현이 술잔을 들자 같이 잔을 들고 마신다. 빈 술잔에 소주를 따라준다.

         “자기 인생에 있어 흔들리지 않는 ‘하나’ 그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지. 뒤돌아보니 한심하고, 앞을 보니 더 한심하지,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것이다. 너도 불혹, 나도 불혹, 우리 모두 불혹이 아닌 유혹에 살고 있다.”

         '불혹이 유혹이라' 형기가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남들이 모르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는 나이야. 지금 다들 그렇게 살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이 그럭저럭 잘 풀렸다면, 그것은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고, 인생이 잘 안 풀려 밑바닥 인생을 산다면···,”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운이 나빠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건방 떨 필요도 없고, 기죽을 일도 없다.”

         형기는 태현이가 불혹을 이야기할 때, 복잡한 느낌을 받았다. 건달 생활을 끝냈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이유 없는 불안함이 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방향을 잃은 나침판이었다. 하루하루가 유혹이다. 흔들리는 자기 인생을 보고 있는 듯 앞에 앉은 친구가 이야기한다. 지금껏 살면서 스스로 뭔가를 결정한 적은 없다. 누군가가 지시를 내리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살았다. 건달 생활 그만둔 것은 집사람의 죽음이 크게 작용하였다. 싸움밖에 할 줄 몰랐던 형기를 22살에 만나서 항상 옆자리를 지켜준 여인이었다. 16년을 부부로 살았다. 대장암이 걸려 죽어가면서 자기에게 숙제를 주었다. 딸에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아빠가 되어달라는 유언이었다. 딸은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2학년인 딸은 전교에서 1~2등을 하고 있다. 불혹이 유혹이라고 한 태현이 말에 100% 공감되었다. 말을 잘하는 친구로 보였다. 묘한 호기심이 생기는 친구였다.     


         2 


         지난번 송년회에서 보았으니 2달 만이다. 학동사거리에 있는 고급 일식집이다. 형기가 제일 먼저 도착하였다. 문 앞에 서 있던 여종업원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일본 전통 실내정원이 있는 가운데 홀을 지나 미색의 은은한 조명이 어울리는 통로를 따라 독립된 방으로 안내해준다.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형기 뒷모습을 맞은편에서 지배인이 미동도 없이 쳐다보고 있다. 팔각 문양이 있는 창호 문을 열자 일본 귀족의 응접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장식들과 색채, 다다미가 눈에 들어온다. 언뜻 보면 몽환적인 그런 느낌도 있다. 잠시 뒤에 지배인이 방으로 들어온다. 지배인과 형기가 이야기를 나눈다. 지배인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나가는 순간에 호영이 들어온다. 호영이는 나가는 지배인을 흘끗 보고는 형기를 보고 웃는다. 

         “형기야, 잘 지냈지? 날이 춥다.” 

         “그래, 나야 뭐 잘 지내지, 너는 안 바쁘냐?”

         “야 여기 오는데 뒷문으로 나왔잖아. 앞으로 나오면 나 기다리는 놈들 많아. S그룹, D그룹에서 나온 놈들이 술 먹자고 정문에 깔려있다. 그놈들 눈 피해서 도망 다니는 것도 피곤하다. 설마 여기까지 미행하지는 않았겠지”

         “검사들도 힘들게 사네”

         그때 태현이가 미희와 같이 들어온다. 지배인이 직접 안내해준다. 형기가 일어나 호영이 옆자리에 옮겨 앉는다. 미희와 태현이가 같이 나란히 앉는다. 딱 봐도 최고급 요리가 테이블에 펼쳐진다. 발렌타인 30년산을 지배인이 ‘서비스’라고 가지고 온다. 형기에게 인사하고 테이블에 놓는다. 다들 형기를 바라본다. 

         “자, 폭탄주로 먹어야 하는 거 아냐?”

         “야, 아깝지, 이 좋은 술을 맥주에 타서 먹으면, 그냥 먹어”

         “좋지, 자 먹자고,”

         그렇게 술이 돈다. 형기는 다소 조심스럽다. 한 놈은 검사이고, 한 놈은 사업하는 놈이다. 5일 전에 뜬금없이 태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금요일 저녁에 박 검사하고 같이 술 먹자면서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잠시 망설였지만, 일이 없는 형기는 약속을 수락하였다. 장소는 학동사거리였다. 태현이가 왜 자기하고 술을 먹자고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호영이가 있는 술자리이다.

         “호영아, 너 작년에 압구정동에서 술 먹으면서 나한테 한 말 기억나냐?”

         “뭐? 어떤 이야기”

         “나한테 돈 많이 벌라고 했잖아. 너 유혹 안 받고 살게 해 달라면서”

         “아, 그날···, 기억나지,”

         1년 전에 호영이가 태현에게 술 한잔 사달라고 하였고, 둘이는 중문동 순댓국집에서 만나, 오소리감투에 막걸리를 먹었다. 

         “내가 유혹받으면 옷을 벗어야 한다. 내가 지금 나가면 연봉 얼마 받는지 아니? 내가 움직인다면 아마도 S그룹이 1순위이다. 거기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야. 기업이 싫으면 법무법인으로 가도 되고, 그래서 그런 유혹을 안 받고, 내가 위로 고위공직자 타이틀 좀 달고 살아보게···,”

         “........”

         “사업하는 네가 돈 많이 벌어서 나 좀 도와줘라, 나 지금 전세 사는 것 알지? 집도 없이 산다. 지방 가서 돌아다닐 때는 혼자 뭐, 관사에 처박혀 있어 잘 못 느끼는데, 이렇게 서울에 있으면 아들, 딸 얼굴 보고, 마누라 보면 솔직히 ‘사표 쓸까?’ ‘돈 받고 옮길까?’ 유혹을 받는다.”

         상대방 잔에 술을 따라준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한 점을 집어서 새우젓을 찍어 먹는다.

         “어디까지 가고 싶은데, 여의도 가는 게 목표 아니야? 여의도에 있는 돔이 열리면 거기서 마징가 나오는 거잖아. 딱 너네.”

         농담이 썰렁했는지, 침묵으로 술을 따르고, 적막으로 술을 마신다. 두 사람이 마주 본다.

         “........”

         “........”

         “여의도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 되고 싶다.” 

         “........”

         “........”

         “조용한 곳으로 자리 옮기자”

         사람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가지고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추구한다. 성공한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어떤 사람이 성공한 사람인지 가르쳐 주는 학교는 없다. 욕망과 희망은 같은 것이다. 살아가는 모습은 사실로 나타난다. 자신을 관대하고 너그럽게 바라볼 때 성공은 멀어지는 것이다. 권력의 힘으로 놀겠다는 호영이 욕망을 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청담동으로 자리를 옮겨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욕망과 사실을 구분하여 빗장을 풀 때가 된 것이다. 

         ‘돈 많이 벌어서 유혹 안 받고 살게 해달라’고 호영이가 태현에게 이야기하였다는 말을 듣고 섬뜩함이 엄습했다. ‘검사’라는 것은 호영이가 입고 있는 옷이다. 그 옷의 힘은 대한민국에서 강력한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노리개처럼 갖고 놀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놈이 친구에게 ‘돈 많이 벌어서 유혹 안 받고 살게 해달라’는 농담을 한다면 그것은 뼈가 있는 말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놈이다. 불을 뿜어내는 화산이 가슴에 있을 것이다. 내부에서 뿜어내는 강한 욕구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태현이와 이야기 나누었다는 것이다. 오늘 술자리가 그냥 술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형기야, 너는 어떻게 지내냐? 친구들 말로는 너 이혼해서 혼자 딸아이 키운다면서”

         “아닌데, 나 이혼 안 했다. 혼자 딸아이 키우는 것은 맞아. 애 엄마가 대장암으로 죽었지, 그런데 굳이 말 옮기기 싫어서 가만히 있는 건데, 그렇게 이혼했다고 소문이 나더라”

         “아, 그래, 괜한 걸 물어보았네, 오지랖 넓은 짓 하면 늘 실수한다니깐. 미안하다.” 

         “나하고 형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미희도 그렇고, 맞지 미희야?”

         “응, 맞아, 형기 재 진짜 장난꾸러기였다. 여자애들 노는데 고무줄 끊고, 송충이 잡아다가 여자들한테 던지고, 콩알탄 던져서 놀라게 하고, 치마 입은 여자애들 아이스께끼하고 도망가고”

         미희 이야기에 형기가 소리 내어 웃는다. 다들 큰소리로 웃는다. 모두 어릴 적 그 시절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여과지 없이 떠들고 술을 마신다. 국민교육헌장 못 외워 혼난 이야기, 땅따먹기, 넘어져서 무릎 깨진 이야기, 소풍 갔다가 도시락 쏟아져서 울던 이야기, 선생들 이야기, 다망구, 자치기, 오징어 게임, 삼팔선, 비석치기, 얼음땡 놀이, 연탄가스 마시고 어지러워서 화장실에 빠진 이야기 등등 떠들고 웃고 술을 마시었다. 형기는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맘 편하게 술 먹어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집 밖에서는 늘 긴장하면서 살았었고, 집에 오면 집사람과 딸에게 늘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었다. 긴장과 미안함이 늘 같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긴장도 없고, 미안함도 없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어릴 적 아이스께끼하면서 장난치던 그 시절의 자기였다. ‘어릴 적 친구가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영이는 알고 있는데, 형기야, 미희하고 나하고 둘이 사귄다. 몰랐지?”

         “아니 눈치채고 있었는데, 그래서 아까 자리 비켜준 거야, 너희 둘이 앉으라고”

         “와, 역시 눈치 빠르네, 어떻게 알았어, 얘네 둘이 사귀는지, 모임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전에 송년회 모임에서 알았지, 미희 옆에 앉아서 떠나지 않더라. 미희 보는 눈빛이 다르더라고, 그리고 단란주점 가서 노래하는데, 태현이 노래할 때 몇 명이 무대로 나가서 춤추고 놀았잖아. 그런데 잡은 미희 손을 놓지 않더라고···, 그때 느낌이 오더라”

         “미희가 아깝지, 미희 얘도 참 힘들게 살아온 친구다. 저 짱구보다 더 좋은 놈 만나서 결혼도 하고 살아야 하는데, 태현아 너 잘해라, 미희 힘들게 하면 바로 내가 너 바로 ‘결혼 빙자 혼인 사기’로 구속한다.”

         “야, 됐거든, 사주에 난 결혼할 운이 없단다. 자, 남의 연애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술 드세요.”   

   

            

  

         “나 너에게 할 말이 있다. 형기야 나하고 일하자, 믿을 사람이 필요한데, 같이 호흡을 맞출 사람이 없다.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사업도 사업이 점점 커지면 뺏어 먹겠다는 놈들이 달라붙어, 법을 지키면서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춤출 수밖에 없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고 하던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네 사람이 느낀다. 오늘 술자리 이유이다.

         “밥상 차릴 능력도 없으면서 밥상에 숟가락 얻고 반찬 투정하고 뺏어 먹겠다고 덤비는 놈들이 있다.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독기를 품고 덤벼들지, 이들과 다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손에 피가 묻는 경우가 있다. 내 편이라 생각했던 놈일 수도 있고, 적이라 생각했던 놈일 수도 있고, 암튼 깨끗한 손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없다. 돈과 권력의 힘을 가져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길이고,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면서 한번 사는 인생 살아보자는 그 무엇을 잡았다. 호영이는 권력으로, 나는 돈으로,”

         “·······”

         “밥상 같이 차리자”

         “·······” 

         다들 조용하게 이야기를 듣는다. 호영이가 조용하게 술잔을 들고 마신다. 그 빈 잔에 미희가 술을 따라준다. 형기가 옆에 앉은 호영이 얼굴을 고개 돌려 본다. 호영이가 한쪽 눈을 윙크하듯 찡그리며 웃는다.

         “지금 통장에 언제든지 뺄 수 있는 현금이 30억 있다. 형기, 네가 합류하면 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거다. 그래서 이 돈을 백, 천, 만 배 만들 것이다.”

         형기는 태현이 이야기 듣고는 한 놈은 밖에서, 또 한 놈은 안에서 뭔가 그림을 이미 그렸다는 것이다. 한 놈은 권력, 한 놈은 돈이다. 거기에 주먹을 가지고 끼라는 것이다. 오늘 술자리 이유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와는 다른 인연이 오고 있다. 하지만 같은 것이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태현아, 너무 뜻밖인데, 나한테 생각할 시간이 있는 건가? 아니면 지금 결론을 내려야 하나?”

         “뭐가 되었든, 네가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 형기야, 너 편하게 해”

         “내가 법대 가서 4학년 때 고시 합격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검사 된 아들 보여드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고시 합격 소리 듣고 돌아가시었다.”

         다들 호영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태현이는 술 한잔을 마신다. 

         “형기야, 내가 검사 노릇 하면서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뭐 배웠는지 아니? 세상은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종교도 그렇다. 정치와 종교는 굉장히 비슷하다.”

         태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호영이가 본다.

         “사람들을 믿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눈, 코, 귀, 입, 몸으로 느끼는 감각을 건드리면 된다. 감각으로 느껴지는 감성이 마음을 움직인다. 감성과 이성 둘을 섞는 것이 정치 기술이다. UFO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니? 수많은 사람이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고 증언하지, 그런데 단 하나도 확실한 증거는 없다.”

         “UFO는 진짜 아닐까? 우주가 얼마나 넓은데, 아! 미안~, 말 끊어서”

         “아니, 괜찮아. 다들 너처럼 그것이 과학적인 판단이라고 한다. 진짜처럼 생각하잖아. 그런데 다 말뿐이다. 고대 건축물, 유적지와 기형적인 생긴 자연물이 있다. 고대의 기술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건축물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외계인의 증거처럼 떠든다. 마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처럼 보인다. 가짜인 것을 조금만 공부하면 다 아는 것이다.”

         미희가 학생이 선생을 쳐다보듯이 호영이 말에 귀 기울인다.

         “죽으면 사후세계가 있어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고 한다. 단 하나도 증거는 없다. 확인할 수 없으니 믿는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런 허상을 심어주면 된다. 정의, 민주, 평화, 인권 등의 단어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증거는 필요 없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선동이고, 언론 플레이이고, 정치 마케팅이다. 자연스럽게 패거리가 만들어진다. 팬클럽 같은 것이다. 웃긴 것은 그런 무리가 스스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알아서 충성하는 것이지, 그리고 점점 조직화 되어 간다. 사이비 종교가 생기는 이유이고, 정치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공중 부양하고 병자를 고쳐준다고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이비 교주를 믿는 거나, 국민을 위해 이 생명 다 바친다고 하는 정치인을 믿는 것이나 도긴개긴이다.”

         어릴 적에 교회에 가면 부흥회가 있었다. 박수하고 노래하고 기도한다. 들것에 실려 온 사람을 고쳐준다고 안수기도한다. 그리고 잠시 뒤에 누워있던 환자가 벌떡 일어나, 병이 나았다면서 뛰어다니면서  춤추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예배당에 모인 사람은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그것이 진짜라 믿었다. 호영이 말을 들으면서 어릴 적 교회 부흥회가 생각났다. 호영이가 계속 말한다.

         “진짜는 중요하지 않아. 약육강식이다. 모든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한다.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국민을 죽이는 게 정치이고 권력이다. 1차, 2차 세계대전이 그런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모든 전쟁은 한결같이 국민을 위한 전쟁이었지만, 사실은 돈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정의와 민주, 평화 등으로 포장된다. 종교도 그렇지, 종교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살육, 강간, 폭력은 인류 역사에 너무나 많다. 마녀사냥은 힘없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 게임이다. 실제는 종교인들이 돈을 갈취할 목적이었다. 아프리카 노예사냥들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되었든 숨어 있는 목적은 돈이었다. 정치와 종교는 비슷하다. 내가 태현에게 돈을 벌라고 하는 이유이다. 돈이 있어야 강자로 살아남는 것이다. 태현이 너 무슨 말인지 알지?”

         “알지, 그래서 내가 돈 번다고 하잖아”

         “그래, 그래서 우리가 여기 모여있는 거지”

         미희가 형기는 두 사람의 이야기들 들으면서 술을 마신다. 미희는 온더락으로 마시고, 형기는 스트레이트이다. 비워진 술잔에 서로 술을 따라준다. 형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당 모의’하는 친구들 모습을 보았다. 살고 싶은 세상은 딱 하나 있었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그런 일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이 두 놈이 그림 그리고 있었다.

         호영이가 비록 동창이라고는 하지만, 검사라서 처음에 거북했었다. 20대 때 강남 룸싸롱에서 웨이터로 일을 했었다. 당시에 술 잔뜩 처먹고, 계산할 때는 돈 없다면서 협박하는 생 양아치 검사를 많이 보았다. 그들한테 조인트도 많이 맞았다. 돈 봉투 받으면서 여자 접대받는 검사는 부지기수였다. 그들 중의 일부는 인권변호사가 되어 뉴스에 나오고, 어떤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그들이나 자기나 같은 부류인 것을 알았다. 같은 도둑놈이고 깡패였다. 배운 놈들은 큰 도둑이고, 자기처럼 못 배운 놈은 작은 도둑이었다. 그 차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깡패라고 하여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힘이 없는 존재라는 것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어릴 적 친구라고 하는 이놈들은 지금 큰 도둑 되자고 자기를 꼬드기는 중이다. 미희가 말을 건넨다. 

         “형기야, 같이 일하자”

         “응? 글쎄 생각하지 않았던 제안이라서”

         “태현이 믿을만한 놈이야, 내가 알아, 지난 6년 동안 내가 지켜보았다. 일하면서 박사까지 학위 받고, 지금은 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도 한다. 배신할 놈은 아니다. 지금 호영이가 돈이야기 하니, 나도 돈 이야기 할게, 같이 일해서 돈을 벌면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을까? 100만 원 벌면 둘이 나눠 먹을 수 있을꺼야. 그리고 1,000만 원 벌어도 500만 원씩 나눌 수 있고. 그런데 5억 벌면 나눌까? 아니면 배신하고 혼자 먹을까? 10억 벌면 나눌까? 역할이 다 다른데, 자기가 더 많은 역할 했다면서 싸울 것이야. 쉽지 않아. 그런데 태현이는···, 그 역할에 맞게 같이 나눠 먹는 친구이다. 내가 본 태현이는 나눠 먹는 놈이다.”

         “미희야 아니거든요, 나도 혼자 먹고 튈 수 있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럼 ‘사기죄’ 내가 구속하면 되는 거지” 다들 웃는다. 태현이가 제일 크게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물 흐르는 듯한 울림으로 형기에게 들린다.

         “태현아, 내가 술자리 끝날 때, 이따가 헤어질 때까지 고민해보자, 생각 많이 하는 놈 아니다. 내가 원래 생각이란 것을 길게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할 줄도 모른다. 오늘 술자리 끝나면서 이야기해줄게, 그때까지 고민하자”     


         4 


         호영이와 형기하고 헤어졌다. 형기는 마지막에 한마디 하였다. ‘너희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한,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 너희가 그리는 그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칼이 되어 줄게’ 

         태현이는 대리를 불렀다. 차는 옥수역 인근의 아파트로 들어간다. 차 안에서 미희의 손을 잡는다. 미희가 태현이에게 기댄다. 6개월 전에 미희 이름으로 6억 원을 주고 아파트를 하나 장만하였다. 한강이 보이는 32평 아파트이다. 거실에는 태현이와 미희 사진이 걸려있다. 거실에서 한강의 야경이 보인다. 미희가 창밖을 본다. 태현이가 미희를 뒤에서 품에 안아 감싼다. 

         여자는 느릿한 욕망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이트가운 사이로 남자의 양손이 들어온다. 젖가슴을 부드럽게 만진다. 한 손이 젖가슴을 떠난다. 그 손은 여자의 살갗을 더 부드럽게, 어떤 곳은 더 거칠게, 그리고 더 깊숙이 만져간다. 남자의 손길에 여자는 젖어가고 있다. 여자의 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꽃이 용암이 되어 흘러나온다. 남자는 그 뜨거움을 손으로 느낀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몸을 다룰 줄 알았다. 여자가 뒤를 돌아 남자의 입술을 찾는다. 달아오른 얼굴이 부끄러워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여자의 입술이 남자의 가슴을 지나서 배꼽을 지난다. 서로의 몸이 서로의 손과 입술에 길들여 있다. 가뿐 숨소리는 신음이 되고 쾌락이 되었다.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말 탄 듯한 실루엣이 밤하늘의 거실 창밖으로 보인다. 

         아침이다. 태현의 손은 미희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다. 미희가 고개를 돌리면서 눈을 뜬다. 서로의 얼굴을 본다.

         “잘 잤어?, 아침 뭐 먹을까? 뭐 먹고 싶어?”

         태현이는 두 집 살림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희는 그것을 인정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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