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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불혹 1부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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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Sep 04. 2023

불혹  9. 사랑

<부동산소재소설 1부>

         1     


         돈은 두 가지이다. 창고에 쌓아두고 조금씩 빼내어 쓰는 돈, 옹달샘이 되어 먹어도 먹어도 계속 솟아나는 돈. 


         2     


         미희도 야간 대학 4학년이다. 그중에 미희는 다섯 살 적은 강혜영하고 단짝으로 지냈다. 신입생환영회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순진해 보이는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웃을 때 촉촉한 눈이 반달처럼 변하고 보조개가 살짝 드러났다. 남자들이 한번 보면 두 번 세 번 자꾸 눈길이 가는 얼굴이다. 매끈한 몸매와 풍만한 가슴이 성적인 매력을 풍기었다. 한 듯, 안 한 듯 화장과 수수한 옷차림에는 요염함을 숨기었다. 강혜영은 ㈜동인건설 명함을 주었다. 미희도 ㈜선우 명함을 주었다. 건설사와 부동산회사는 한솥밥 먹는 관계라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3년 동안 둘은 자매처럼 스스럼없이 친한 사이가 되었다. 

         “여자는 몸이 경쟁력이다. 언니도 몸 관리 좀 해, 나이 먹을수록 더 신경 써야 해, 언니”

         “나도 너처럼 해볼까? 가슴도 키우고, 눈도 고치고? 그런데 난 무서워···”

         인천이 고향이다. 중학교 때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었다. 오빠는 공업고등학교 졸업했고, 인천 연안부두에서 선박 용접공으로 취업을 하였다. 전문대를 다니면서 살림을 맡아서 하였다. 졸업할 때 아버지가 폐암에 걸렸다. 살림과 병간호는 혜영이 몫이었다. 오빠 월급으로 생활비와 병원비를 충당하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었다. 인천에 있는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오빠가 결혼하면서 살던 집을 팔고, 그 돈에 대출을 받아서 오빠 신혼 아파트를 마련하였다. 작은 방이 신혼집에 있었지만, 불편했다. 이천에 있는 골프장에서 캐디를 하였다. 골프장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지냈다. 

         골프장에서 오는 사람은 소위 ‘돈 있는 사람’들이다. 1년에 한두 번이 아니라, 1주일에 두세 번 오는 사람들이다. 별난 사람들이 아닌데 부자로 사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몸이 무기라는 것을 알았다. 돈이 모이면 압구정동 피부과를 찾았다.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도록 말, 행동, 옷, 화장의 맵시를 익혔다. 수줍게 고개 숙인 청순미를 몸에 가득 담았다. 그렇게 돈 있는 사람을 보고, 그들을 통해 배우고, 스스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골프장에 온 ‘돈 있는 남자’들이 구애하기 시작하였고, 그들과 말을 섞으면서 애가 타는 남자들의 마음을 보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3     


         학교 앞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내려가는 길에 LP판 음악을 틀어주는 BAR가 있다. 이혼한 여자 사장이 동생하고 운영하는 BAR이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알게 되어 단골이 되었다. 40대 이상인 사람들이 주요 손님들이다. 칵테일 한잔을 하면서 혜영이가 묻는다. 

         “언니, 언니는 사랑했던 사람이 있어?”

         “응, 뭐라고?” 

         “언니, 남자 친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아, 결혼은 하지 않았으니 연애는 어떻게 하나 싶어서”

         “뭐가 궁금한데?” 미희가 입을 내밀면서 장난스럽게 웃는다.

         “난 전에 말했듯이 캐디 하면서 첫 남자를 만났어, 사실 난 남자 경험이 없었거든, 나보다 10살 많은 유부남이 첫 남자였다. 일부러 남자를 안 만난 것은 아닌데,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지,”

         “그래 알아, 전에 잠깐 이야기했어,”

          “첫 남자라고 했나?”

         “그건 이야기 안 했는데···”

         “그 사람은 내가 남자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부터 날 엄청나게 쫓아다녔다. 그 노력에 진심이 보였어, 그 남자와 처음으로 관계를 맺었는데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 부끄럽고 창피하고···, 그런데 침대 시트에 붉게 물든 처녀의 흔적을 보고 그 남자가 부들부들 떨면서 ‘자기 마누라하고 처음으로 관계할 때 없었다고’ 하면서 울더라.”

         “그럴 수도 있구나!”

         “첫 남자가 되어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자기가 책임을 질 터이니, 캐디 그만두라고 하더라. 천호동에 분양하던 오피스텔을 내 명의로 사주더라고, 그러면서 날 사랑한다고 자기 맘을 받아달라고 하더라. 애가 둘 있는 사람인데 반도체 관련 장비 사업을 하더라고, 한 달에 500만 원씩 용도도 받았지, 차도 하나 사주었어. 어쨌든 나는 캐디 그만두고 골프 배우러 다니고, 피부 관리하러 다니고, 영어학원 다녔다. 그러다가 그만 임신이 되었어”

         “어머, 진짜?”

         “응, 하지만 애를 낳을 자신이 없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내 생각을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얼굴이 하얗게 돼서는 벌벌 떨면서 애를 지워야 한다고, 이거는 아니라고 하더라.”

         “·······”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난 이해할 수 있었다.”

         혜영이가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자기도 태현이에게 그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지, 어쨌든 낙태는 불법이잖아. 시간을 끌면 힘들어지기 때문에 결심을 해야 했다. 그 사람이 소개한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 시술을 받았어, 그 뒤로 그 사람하고 관계는 끝났지. 참 그 사람은 성남에 있는 무슨 교회의 장로였다. 헤어지면서 위자료 달라고 그랬다. 그랬더니 1억 원 통장으로 입금해주더라. 그 사람하고 헤어지고 나서 그 사람이 사준 오피스텔 팔았지, 돈이 있으니 좋더라. 그리고는 청담동에 있는 스포츠 센터 등록하고 하루에 4~5시간을 보냈어, 몇몇 남자들을 만난 적이 있지만, 내 맘을 가져간 남자는 없었어. 그러다가 우리 사장을 만났다.”

         “사별하신 분이라면서?”

         “응, 스포츠 센터에서 회원들하고 라운딩하는데, 한번은 같은 팀에서 만났지, 우리 사장하고 나하고 관계는 이야기했지?”

         “그래, 한 달에 반은 같이 살고, 반은 따로 산다고?”

         “응, 구속 안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 같이 있으면 맨날 싸우고 다툰다.”

         “그렇구나”

         “너무 내 이야기만 했나? 어쨌든 난, 여자는 몸을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남자들이 그 몸을 원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술 안 취했지? 혜영아, 너하고 나하고 비슷한 게 많구나, 하지만 넌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 남자들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아.”

         “언니, 사랑하지, 난 지금 우리 사장님 사랑해,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만나고 섹스를 해. 하지만, 연속극처럼 울고 매달리고 징징 짜고, 뭐 그러지는 않아. 사랑을 핑계로 누군가가 내 인생을 독점하고자 한다면 그게 사랑일까? 내 인생의 자유를 포기하는 거잖아? 난 그게 싫어, 사랑은 잔인한 게 아니라 즐기는 것이야.”

         “그래~” 미희는 사랑은 즐기는 것이라는 혜영이 말을 속으로 따라 해본다.

         “그래서 날짜를 정해 놓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에 반 정도는 사장이 내 집에 있거나, 내가 사장 집에 가고, 나머지는 각자 생활하지.”

         “연인들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좋은 것 같아.”

         “그리고 버스 지나가면 또 버스 오잖아. 나를 좋아한다고 하는 남자, 나도 사랑하지, 나 싫다고 가는 남자, 잡고 싶은 생각은 없어. 여자는 꽃이야 언니, 그러니 나비가 찾아오도록 이쁘게 꾸미고 있어야지, 나비는 한 꽃만 찾지 않아, 꽃도 한 나비만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언니는 사랑하는 남자 있어? 형부 이야기 좀 해봐”

 미희는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듣는 혜영이는 가볍게 주먹 쥔 손을 반쯤 벌어진 입에 대고,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하여 쳐다본다.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가 사라진다.

         “너는 사랑에 목숨 걸지 않는다고 했지, 난 지금 그 남자가 없는 세상이면, 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해, 너하고 좀··· 다르지, 너 기준에서 보면 사랑에 목숨 건 여자로 볼 수도 있어. 난···, 그 사람이 있는 세상만 존재해, 그게 내 세상이야,”

         미희 눈에 이슬이 살짝 맺힌다. 말을 끊고 고개 돌린다. 그리고 혜영이 보면서 웃는다. 눈이 마주치자 혜영이는 울컥 목이 메어 힘들게 뱉어낸다.

         “어~ 언~ 니!”

         “혜영아, 우습지!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만···, 그 사랑에 매달리지는 않아, 이거는···, 너하고 생각이 같은 건가? 그 사람이 나 때문에···, 혹은 내 사랑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그렇게 만든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그 사람은 나에게 사랑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 이미 사랑을 하고 있다면 증명이 필요한 것이 아닌데, 여자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요구하지.”

         “언니, 그게 여자들 심리···,”

         “그래, 이해는 해. 하지만 난 아니야. 자기가 자기의 사랑에 믿음이 없어서, 그런 확인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남자 여자 차이가 없어. 사랑을 말로 증명할 수 있을까? 말로 증명하지 못하니, 돈으로 하라고 하지, 돈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인데, 돈으로 증명하면서 사랑한다고 한다. 난 그게 더 웃겨···보여.”

         “·······”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우연에서 당연한 사실들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잖아. 살아있다는 게 증명이잖아. 그 사람과 있으면, 난 가끔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어, 그냥 이 세상에 같이 살아가고 있으면 돼···. 같은 공간은 아니지만, 같은 시간에 있잖아.”

         “언니 사랑은 너무 슬프다.”

         “그 사람은 나를 만나기 전에 가정이 있던 사람이야. 아~ 이것은 너하고 다르구나! 나 만나기 전에 다른 여자가 그 남자 마음에 있었어, 그 여자가 나보다 먼저 그 남자의 사랑을 받았어, 비록 지금은 그게 아닐지라도···,”

         “형부가 이혼하고 언니하고 살림 차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마음은 없는 거야?”

         “그런 것 물어보지도 않았고···,” 호흡을 한번 한다. “나 때문에 그런 선택은 하지 말라고 했다.”

         “언니 왜?”

         “그 사람 몸과 마음을 내가 독점할 수는 없어, 그 사람은 나에게 100% 마음을 줄 수 없지, 나는 그 사람에게 100% 줄 수는 있어도···, 너는 사랑을 핑계로 너를 독점하고자 한다면···, 그 사랑을 버리겠다고 했지?”

         “응”

         “그래 맞아, 그래서 난 나의 독점을 주장하지 않고, 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야, 그게 싫으면 애초부터 사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지. 원래 다른 여자가 있는 남자를 사랑한 것이 나이기 때문이야.”

         “언니하고 나하고 생각하는 게 비슷하네,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해”

         “그 사람 마음에 조금이라도 내가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돼, 하지만 내 맘은 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어. 내 맘에 다른 남자가 없을 때, 그 남자가 나에게 와 버렸어, 내 기준을··· 그 사람에게 요구할 수 없어, 그 남자의 사랑과 내 사랑은···,” 앞에 있는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다. 혜영이도 마신다. 

         “그래 시작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욕심일 뿐이야. 혜영아, 너는 어떤지 모르지만, 너와 나의 차이는 하나밖에 없어.” 

         “·····”

         “한 사람을 맘에 담아 두고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그게 차이야.”

         “·····”

         “남자가 버스가 아니라, 내가 버스야, 정류장 없이 종점까지 쉼 없이 달려가는 버스, 그 남자가 내 버스에 탄 유일한 사람이야. 나비가 꽃을 찾아온다고 했니? 난 다른 남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른 나비를 기다리지도 않지만···, 다른 나비에게 나는 꽃이 아니야.”

         “언니 너무 멋있다. 그런데 슬프다. 언니는 슬픈 사랑이다.”

         “사랑하면서 자꾸 사랑을 의식하면 사랑이 왜곡되는 것 같아. 사랑한다는 것을 잊어야 사랑이 되는 거야. 그게 내 사랑이야.” 

         미희는 그 남자가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의미를 이제 알고 있다. 둘은 BAR에서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듯 아닌 듯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사람의 아픔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충격을 받았고, 서로에게 아련한 슬픔을 느낀다. 미희가 노래를 하나 신청한다. Melanie Safka의 ‘The Saddest Thing’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혜영이가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을 미희는 본다. 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그리고 웃는다. 사랑이 있다면 사랑은 몇 가지일까? 있다면 하나일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사랑만이 유일한 것이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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