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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 Aug 20. 2023

꽃, 피다_노란 천사의 속삭임

  타 버린 화분에서 꽃이 폈다. 꽃을 보는데 눈물이 떨어진다. 화분을 볼 때마다 내 속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꽃을 보는데 까맣게 탄 내 속에서도 꽃이 핀 것 같다. 꽃을 앞에 생각한다. 황무지가 된 것 같은 이 가슴에서도 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그 꽃을 보며 잘 버텼노라며 어깨를 다독여줄 날이 내게도 오기는 할까. 그리하여 나의 비옥한 땅의 생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칠칠치 못한 나를 너무도 잘 아는 나의 지인들은 나를 만날 때면 ‘이를 때는 화를 내야 하는 게 맞아.’, ‘이럴 때는 네가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야 하는 거야,’, ‘이를 때는 사과를 요구해야 하는 거야.’ 같은 말을 하며 내가 마주해 온 상황을 상식에 맞게 통역해 준다. 그러면 나는 왜,라고 하는 눈이 되고는 한다. 그 말에 그들은 늘 말한다. 나를 먼저 보라고. 그것 또한 연습이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에게서 나를 챙기는 것은 성실히 뭔가를 적고 읽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례한 부탁과 예의를 벗어난 언행과 자기 챙김으로 타인을 해하는 행위는 분명 불쾌함을 유발한다. 유쾌하지 못한 감정을 마주할 때마다 분노나 화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내가 세운 전략은 자기반성이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사람을 두고 씨름해 봐야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무수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놓게 된 기대나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습관이 된 그 반성이 속을 태우고 있는 줄 몰랐다. 마음의 병이 단단히 났는지 속이 탈 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2년, 울면서 끝없이 나를 둘러싼 상황을 곱씹게 되었다. 다 타 버린 속에 손이라도 얹어 보기 위해서는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은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니 그게 아무래도 잘되지 않았다. 

  올여름은 마음의 병이 절정에 이르러 갔는지 내내 고행(苦行)의 나날을 보냈다. 바쁘게 나를 몰아보기도 했고 종일 울어보기도 했고 도망치듯 비행기에 올라보기도 했다. 눈물만 더해질 뿐 가슴에 새겨진 고통은 덜어지지 않았다. 고행의 민낯을 마주하며 내게 닥친 시련이 내가 넘어설 수 있는 난관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인간은 절박해지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된다는 것을. 감당하기 힘든 괴로움은 인간은 고개 숙이게 한다는 것을. 

  나에게 괴로움은 ‘견딤’에 가까웠다. 힘들기는 하였으나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었다. 그러하기에 나에게는 힘들다고 하는 그 느낌을 참아내는 것이 괴로움이었다. 2023년 여름, 괴로움이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괴로움이 극에 이르면 통각이 되어 몸에 새겨지고 그 아픔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는 것도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게 삶에의 의지를 순식간에 녹여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너무도 생소한 일이었다. 

  괴로움을 마주하는 것이 공포가 되면서는 누가 나를 이 고행에서 꺼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온전히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의 선택이 내 앞에 가져다 놓은 현실을 마주 보며 분투하고 있다. 이 기다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는 것, 그게 내 속을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놓으면 편해질 것을 견디는 데만 익숙해져서 나는 어쩐지 놓는 게 잘 안된다. 

  견디고 있으면 괜찮아질 날이 오겠지 하는 무른 기대로 자꾸 속을 태운다. 타는 속을 보며 자승자박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앞날의 행복을 그리며 견뎌온 고행의 시간은 그리하여 다 타버린 화분이 되어 내 앞에 놓였다. 그리고 나는 그 화분에서 희망의 소멸을 읽어냈다. 그게 타 버린 내 가슴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지난날 선택과 그 선택을 따라 성실히 걸어온 날들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을 마주하며 나는 영악하지 못한 나의 선택을 탓했다. 그런데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나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애먼 가슴을 쳐 내렸다.   

  죽었다고 생각한 이름 모를 식물이 꽃을 피워두고 있다. 아직 꽃말이 없는 옐로우엔젤이라는 꽃에 기다림, 기적, 영원한 사랑, 신화 같은 꽃말을 덧붙여본다. 타버린 속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눈물 흘리며 괴로움을 마주하고 있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노란 천사의 속삭임을 남겨 본다. 당신의 날개가 돋아 있다고, 곧 날개를 펼쳐 비상할 수 있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당신과 다르지 않게 괴로움에 신음하는 내가 있으니 혼자라 느끼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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