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a Dec 28. 2021

한라산에서 조난 전화를 걸다

한라산에서 다리가 부러졌다(1)

나의 버킷리스트 달성. 직접 찍은 백록담

나의 버킷리스트 '한라산 백록담 보기'이다. 

그리고 그 버킷리스트가 생애 전 마지막 리스트가 될 뻔한 것을 누가 알았는가.


우리 부부는 등산에 한창 맛을 들이고 있었다.

등산의 시작은 나의 무기력함을 이겨내기 위함이었다. 나는 휴직과 퇴사 후 우울증이 왔고, 무기력증이 와 방에 누워있기가 일수였다.


햇빛을 보는 일수가 줄어들수록 나는 더욱 무기력해져 시체처럼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식욕도 감퇴했고, 의지도 약해졌다. 간혹 나를 일으키는 친구의 전화에 통화를 하면서 일부러 밖에서 걸어 다니기도 했다.


등산 갈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보이는 그대로 그냥 생각 없이 던졌다. TV에서는 등산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무너질까 무서웠던 남편은 본인이 정말 싫어했던 등산을 시작했다.

나의 다리 수술 때 박힌 나사 사진

사실 나는 몇 년 전 무릎 수술을 했다. 무릎 전방 십자 인대가 두 개다 완파되면서 두 달 가까이 병원에 누워있었고 몇 개월을 재활했지만, 다친 다리는 완전히 굽혀지지 않아 쪼그려 앉기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처음 올랐던 청계산은 무기력함과 우울에 빠져있던 나에게 주어진 작지만 큰 성취감이었다. 혹여 선수들은 청계산 매봉을 30분 만에 뛰어서 오르내린다던데 나는 첫 등산이 왕복 6시간이 걸렸다. 오르는 시간보다 내려오는 시간이 특히 길고 힘들었다. 내려오는데 특히나 무릎이 아파 오래 걸렸다.


그렇지만, 그래서 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더 열심히 운동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요령도 점점 늘어났다. 등산시간도 5시간으로 4시간 30분으로 줄었다. 덜 무릎이 아프게 내려오기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다리로 '한라산'을 목표로 세운 것은 다들 무리라면서 만류했다. 내 다리가 완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운동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왕복 5시간이 최장 산행시간이었다. 왕복 10시간이 넘는 한라산은 산중의 산. 목표가 너무 높았다.


모두가 안된다고 말할 때 진짜 안 되는 걸까

나는 이제 평생 백록담은 볼 수 없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올랐다가 천천히 내려오자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정상까지 시간이 안되면 그냥 중간에 내려오자.라는 생각으로 한라산 등반을 목표로 했다.

12층까지 10분 안에 계단으로 오르기를 연습했다. 집에서는 틈틈이 스테퍼로 걷기 연습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에서 코어 근육 운동을 하였다. 그렇게 한 달을 준비해서 한라산으로 향했다.


입산 바로 직전에 찍은 사진.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다

새벽 6시도 되기 전 5시 30분에 우리는 성판악코스 한라산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입산은 6시부터였다. 30분간 정비를 하고 준비운동을 했다. 


처음에는 '관음사코스'로 예약을 했다가, 한라산에서 제일 힘든 코스라는 말에 '성판악'으로 코스를 바꿨다. 한라산을 오르려면 인원수 제한으로 미리 입산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남편은 성판악코스가 너무 등산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의 무릎 수술 이력을 고려해 우리는 성판악으로 올랐다가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정했다. 체력이 따라줄지 걱정이던 나는 물과 초콜릿 핫팩을 잔뜩 만반의 준비 끝에 한라산에 입산하게 되었다.


남들은 다 내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깜깜한 새벽에 아직 동이 트기도 전, 핸드폰으로 불빛을 비춰가면서 천천히 올랐다. 몸이 슬슬 풀리고 있었다. 한라산 겨울산에서는 진달래대피소를 통과해야 하는 시간이, 그리고 정상에서 내려오기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천천히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서 올랐다. 슬슬 해가 뜨기 시작하고, 뒤에 출발했던 사람들이 우리를 제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 누군가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속도조절이 안돼서 앞서 다 가시라고 한 뒤에야 출발을 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눈이 쌓여있었다.

11월이었지만, 한라산 꼭대기는 설산이었다.


남편이 아이젠을 신는 동안, 나는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먼저 올라가다가 지쳐서 눈 바닥에 철퍼덕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오가 될 줄은)


산에서 만난 은인
백록담 근처 계단은 다 눈이 얼어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더니 조언을 해주셨다.


"털모자 쓰고 땀난 채로 올라가면 땀이 다 얼어서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서 위험해요. 내가 헤어밴드를 줄 테니 밴드로 머리를 싹 넘기고 모자를 써요. 그리고 바람막이를 안에 입고, 위에 패딩을 바꿔 입어요. 나처럼."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나는 바람막이와 패딩의 순서를 바꿨다. 그리고 헤어밴드를 받으려다가 목에 하고 있던 밴드로 헤어밴드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산신령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은인이었다.


우리는 챙겨 온 아이젠을 신고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진달래 대피소에 들어서자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정상을 향할수록, 몸을 가누지 못해 바람에 몸이 밀리면서, 남편이 뒤에서 받쳐줘야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등산을 한 지 6시간이 지나서야 12시쯤 백록담과 만날 수 있었다. 백록담을 보면서 나는 소원을 빌었다. 한라산 정상의 바위 앞에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있다가 결국 다른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다이소에서 산 보온병이 잘 안 되었던 것인지 우리가 산행을 너무 오래 한 것인지, 물이 다 식어서 컵라면이 잘 되지 않았다. 옆의 아저씨는 군대에서 먹는 듯한 식량을 가져와 먹는 것을 보고 감탄을 했다. 아! 고단수들은 다르군.


사고는 나려면 날 수밖에 없다


산에는 산신령이 있다고 한다.

산을 얕잡아 보면 안 되는 이유는 언제나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통 아이젠을 차도록 했어야 했는데, 내가 먼저 올라간 사이 시티젠을 찼다. 남편의 자신감이었다. 그 자신감은 산신령을 노하게 했다.


아이젠은 눈이 없는 구간에서는 좀 불편한 감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한라산을 내려오다가 사고가 났다. 이 큰 불행이 사고가 나면 나일 줄 알았는데, 남편에게 닥칠 줄은 상상을 못 했다.


사고는 방심한 순간 찾아온다. 


갑자기 눈길에 미끄러져 바위에 발이 걸리면서


우두둑-


남편의 다리가 부러졌다. 


나는 황급하게 조난 전화를 걸어야 했다. 오르면서 봤던 그 많던 조난 구조 번호표지판이 찾으니 보이지 않았다. 


https://brunch.co.kr/@lalachu/15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