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드니 공항에 도착할 때만 해도 나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수처럼, 단단한 각오로 두 발을 굳건히 디디고 서 있었다. 긴 칼을 휘두를 준비를 마친 채, “돌진!” 하고 함성을 지를 기세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새로운 삶을 향해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위세는 하루도 채 가지 못했다.
홈스테이를 결정한 덕에, 공항에는 홈스테이 맘이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웅장하게 울려 퍼지던 전쟁의 북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영화 같은 결의는 산산이 조각났고, 남은 것은 어색함과 현실뿐이었다. 나는 간신히 입을 떼어 “헬로”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반갑다는 듯 활기차게 말을 쏟아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아줌마의 친화력은 국경을 초월하는 법이다. 그녀는 내게 호주의 날씨와 생활에 대해, 또 앞으로 함께 지낼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내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군기 바짝 든 신병처럼 굳어버린 나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혹여나 무례하게 보일까 봐 중간중간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조차 어색하기만 했다.
공항에서 그녀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창밖 풍경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이국적인 거리, 파란 하늘, 따뜻한 햇살.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게는 한 폭의 그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설렘보다는 불안이 컸고, 긴장한 탓에 온몸이 굳어 있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정신조차 없었다.
방을 안내받고 문을 닫자마자, 나는 침대에 털썩 쓰러졌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에 있었다. 익숙한 언어, 익숙한 거리, 익숙한 사람들 속에서… 그런데 지금, 나는 낯선 나라의 낯선 집 한가운데 앉아 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거지?’
1년 동안 준비했던 유학이었다. 가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닥치니, 가슴 한쪽에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녀가 준비해 준 저녁을 먹었지만, 무슨 맛인지조차 몰랐다. 음식을 씹고 삼켰지만,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다. 그리고 천천히, 조용히 눈물이 흘렀다.
떠나오기 전, 가족들은 말했다.
“꼭 가야겠니?”
그때의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낯선 방 안에서 나는 그만큼의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인지.
막상 현실로 닥치니, 가슴 한쪽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이 이렇게 외로울 줄은. 가족의 목소리가 이렇게 그리울 줄은. 내가 그렇게 원했던 도전이, 이렇게 막막할 줄은 떠나오기 전에는 몰랐다.
그러나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그리고
내 안에 용기가 다시 생기기를 기도하는 것뿐.
그렇게, 첫날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