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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Dec 13. 2024

코로나, 임신, 일

일장일단

세상만사는 참으로 일장일단이다. 

살면서 이걸 가장 절감했을 때가 임신기간이었다. 


통근 시간이 줄고, 여유 시간이 늘고, 사람에게 덜 부대끼고, 자연과 더 가까워진 삶을 살게 되니 아이를 가져도 되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부부는 그전까지는 절대 아기는 없다는 주의였다, 100% 딩크는 아니었지만 적극적으로 아이를 갖지는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과 마음에 여유가 드니 인간의 본능인지 무엇인지 우리 둘 다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


그리고, 정말 정말 운이 좋게도 아기 천사가 우리에게 찾아와 주었다. 


마음을 먹고 얼마 안 됐는데 갑자기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기 시작하여 어리둥절했고, 코로나 시국의 임산부는 마음이 한층 더 불안했다. 


나는 입덧이 좀 있는 편이었고, 중기에는 냄새에 민감했고, 막달에는 소화불량과 역류성식도염이 둘 다 있었다. 따라서, 코시국의 마스크 착용은 나에게 너무나 괴로웠다. 


아기를 가졌으니 더욱더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딜 가나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안 되는데 마스크를 계속 끼면 속이 안 좋을뿐더러 임신하면 숨이 많이 가빠지는데 정말 숨 막혀서 죽을 것 같았다. 


한창 무더운 8월에 임신 초기여서 정말 너무 괴로웠다. 괴롭단 말을 계속해도 모자랄 만큼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도 그 괴로움이 아직도 내 마음에 둥둥 떠오른다. 


회사 오가는 것만도 힘든데 이놈의 마스크와 이 불안한 마음으로 인해 한층 더 괴로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나는 우선 여러 대중교통을 거쳐 출퇴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보니 코시국에 전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되었고, 플러스로 임신까지 하였으니 여러모로 고위험군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래서 주변의 적극적인 배려 덕분에 재택근무를 2~3일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이지 마스크를 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당시엔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도 끼어야 했으니까)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거기에 입덧도 있고 임신 초기(배는 안 나와도 무거운 몸)의 기운이 없는 상황에서 통근이 사라진 것만 해도 정말 살 것 같았다. 거기에 코로나에 걸리면 아기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불안감에 나는 상당히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감사했다. 당시는 코로나 완전 초기여서 이런 모든 상황이 너무너무 나는 불안했었다. 


그리고 기차는 정말 원거리를 다니니까 서울에 살던 사람이 부산에도 가고 방방곡곡의 사람들을 스치게 되니까 내가 걸리면... 역학조사가 어떻게 될까? 슈퍼 전파자 몇 번 이런 것이 되는 걸까? 이런 불안감도 컸다. 


그런데 이것도 참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 코로나가 터지니까 사람들이 기차를 안 탔다. 나처럼 정말 꼭 다녀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기차를 안 타니까 여태까지 출퇴근을 하면서 가장 편안하게 기차를 타고 다닌 기간이 바로 코로나가 창궐한 시기였다. 나도 일하러 가는 게 아니었으면 굳이 기차를 타고 어딜 나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기차의 인구밀도가 확 줄어들어서, 편안하게 앉아 다니고, 어떤 기간에는 기차 탑승 시에 두 자리가 붙어 있으면 한 자리만 구매가 가능했던 시기가 있어서 옆에 사람과 부대끼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래저래 나로서는 순탄하지 않은 임신 기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많은 배려와 편안함을 느낀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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