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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May 22. 2022

(시네클럽)다시는 종로에서

명필름아트센터에서 영화보기4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첫 노래 <시인의 마을>이 나오는 장면에서부터 울었다.

내가 왜 울지, 생각해 보았다. 그의 삶과 노래를 생각하며 뜨거웠던 한 세대가 흘러갔구나, 하는 느낌이 든 것 같다. 나는 첫 노래를 들으면서 이미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정태춘은 자신의 음악을 추구했다. 흥행 여부나 세상의 평가는 그에게 크게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가 꿈꾸는 세상을 그만의 방식으로 노래했다. 시를 읊조리는 시인의 마음으로 노래하는 음유시인, 정태춘. 하지만 시대는 그를 한 곳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았고, 그는 전교조 투쟁의 현장, 대추리 미군 사격장 반대 투쟁 같은 현장에 나섰다. 아무도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는 마음속의 목소리를 따랐다.

대추리 사격장 반대 투쟁현장의 정태춘


그의 정의감과 소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건은 역시 사전검열제도에 맞서싸운 것이다. 서슬퍼런 군부정권 시대에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 그는 가장 먼저 홀로 긴 싸움을 시작했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 음악인들과 힘을 합하여 결국 사전검열의 위헌 판결을 얻어낸다. 지금 예술가들이 누리고 있는 창작의 자유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대놓고 발매한 비합법테이프로 들었던 <아, 대한민국>, <92년, 장마 종로에서> 음반은 그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가요 사전심의 위헌신청을 한 정태춘
'불법 테이프'를 발매하여 검열제도에 맞선 정태춘

그의 노래와 삶에서 빼놓아서는 안되는 인물이 바로 그의 아내이자 동지인 박은옥이라는 사실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위에서 말한 거칠고 험난한 시간에 정태춘의 곁을 지켜주며 응원했을 박은옥이 없었다면 심지 굳은 그도 많이 흔들리고 힘들었으리라. 정태춘의 음반과 공연은 늘 박은옥과 함께이다. 이 둘은 함께 작업하며 존중하는 동료 음악인인의 관계이기도 하다. 결혼생활을 한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이지만, 아내가 반대하는 일을 계속 밀어부칠 수 있는 남편이 몇이나 될까. 정태춘의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준 박은옥과의 동지적 관계 또한 눈여겨 보아야 할 지점이다. 

늘 함께 공연하는 정태춘과 박은옥

이 다큐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얘기와 삶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이다. 그 중 몇곡은 그와 박은옥의 40주년 콘서트 실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곡을 다 보여주는 곡들의 면면을 보면 고영재 감독이 정태춘의 음악과 삶에서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느껴진다. 

 어린 남매가 부모가 일하러 간 사이에 잠긴 방안에서 화재로 죽은 이야기를 담은 <우리들의 죽음>, 80년대 말과 90년대초의 뜨거웠던 민주화 투쟁이 지나간 시기를 역설적으로 노래한 <92년, 장마 종로에서>, 광주의 아픔을 노래한 <5.18>은 정태춘의 삶과 음악의 본질이 결국은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다.


우는 얘기로 시작했으니 우는 얘기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울었다. 오열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기도 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울게 했던 것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나온 지금 곰곰히 생각해본다.

뜨거웠던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그 시절,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 순수했고 더 용감했고 더 무모했다. 최소한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아 노심초사 하지는 않았고 승진을 위해 비겁하게 살지도 않았고 나 만 잘 살면되지 하며 주변에 무관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태춘, 그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영원한 청년으로 사는 것 같다. 소신을 지키고 약자들을 생각하고 용감한 이가 바로 청년이 아닌가.

 영화보는 내내 흘린 내 눈물의 이유는, 지나가 버린 한 세대에 대한 헌사와 추억, 그리고 지금 내가 사는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닐까 싶다.  

영원한 청년, 정태춘


그의 음악들을 더 찾아 듣고 싶어졌다.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듣다가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이 대목이 나오면 나는 또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 시절 테이프로 참 많이 들었던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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