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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22. 2021

마흔, 또 한 번의 마흔을 위한 기적

솔개에게서 배우는 삶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좋아하고 동물의 왕국을 좋아하는 나는 솔개에 관한 관찰 프로그램을 보고 숙연해지면서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는 경험을 한다. 자연과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것이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자연과 동물들의 삶이  감동적일  있다는 것을.


솔개의 수명은 매우 길어 평균 80년을 산다. 하지만 솔개가 그렇게 장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힘든 과정이 있다. 솔개는 자기 생의 반인 40여 년 정도를 살게 되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닳아 무뎌지고, 날개는 오래된 털로 뒤덮여 날기조차 힘들게 된다. 솔개에게 생명의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이때 솔개는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 몸으로 40여 년의 생을 마감하느냐, 죽음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느냐. 변화와 도전을 선택한 솔개는 높은 바위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튼다. 그리고 이미 능력을 상실한 자신의 구부러진 부리를 없애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며 바위를 사정없이 쪼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부리가 다 닳아 없어지면 그 자리에서 강하고 튼튼한 새 부리가 자라난다.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 부리로 자신의 발톱을 하나씩 뽑기 시작하는 것이다. 낡은 발톱을 뽑아버려야 새로운 발톱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거워진 낡은 깃털을 하나씩 뽑아버리면 그 자리에서 보송보송 새 깃털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렇게 생사를 건 130여 일의 사투를 겪고 나면 솔개는 다시 40여 년의 삶을 다시 살 수 있다.

 


부리로 바위를 쪼고, 발톱과 털을 뽑아내는 솔개는 감동이었다. 공허함과 허무함 속에서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흐물거리던 삶에 스파크가 일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높고 튼튼한 성을 쌓고 그 안에 갇혀 솔개의 부리처럼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쳤던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몸이 자주 아프고 상처가 나면 아물지도 않게 된 몸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지켜왔던 가치관을 버려야 할 만큼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당황하고 있지 않고 변화한 몸과 사회를 탓하지도 않고 부리를 부수고 발톱과 깃털을 뽑아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고통을 참아내고 인내하며 변화한 나를 상상하며 애쓰기 시작했다.

 

칼 융은 “중년은 인생의 정오(noon of life)”라고 말했다. 중년은 정오의 태양처럼 인생의 절정기라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빠르게 증가는 것을 보면 중년은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라 인생의 절반을 살아낸 것뿐이다. 새로운 반을 살아내기 위해서 솔개처럼 과거의 자신을 죽여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알아?’와 같은 꼰대 같은 말은 집어치우고 솔개처럼 과거를 지워내는 고통을 감수해내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처한 상황을 비관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관망하며 과거에 집착하며 고집만 부리며 불평했던 나를 뒤돌아 본다.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으면서 뭔가가 바뀌기만을 꿈꾸고 기도했다. 행동하지 않고 기적을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 기적이 되어보기로 한다.


 "Be the miracle!!!!."

 

마흔, 중요한 변화를 위한 많은 선택의 기회를 맞게 된다.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 앞에 놓였을 때 용기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 용기 있는 선택을 했을 때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고 멋진 중년이 삶을 즐길 수 있다. 변화가 필요한 마흔, 새로운 삶을 위한 자신의 변화 앞에 주저함 보다는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용기 있는 선택과 결정은 삶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게 할 것이다. 마흔, 기적을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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