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도 막지 못 한 사랑
우리 효진이 마실 청하 사 왔어?
우리 아버님이 시누이에게 하는 말이다. 평소에 소주는 좋아하지 않고 청하를 마시는 나를 생각하시고 하시는 말씀이다.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다. 처음엔 모든 게 어색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왜 그렇게 힘겨웠는지 모른다. 한 해 한 해 시간을 함께 하면서 정이 들었다. 세상에 “정”만큼 귀한 감정이 없는 것 같다. 흔들림을 잡아주고 아픔을 이기게 해 주고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한다. 처음에는 서먹하고 어색했던 사이가 점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졌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연대감이 생겼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었고 어머니가 어머니가 되었다. 이제는 이름뿐인 관계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의 아버지고 어머니다. 서로를 걱정하고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내가 결혼 하기 바로 전해에 아빠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갑자기 알게 된 아빠의 병 그리고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난 아빠는 내 안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으니까. 조금 편안한 게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 내 마음의 닻에 걸려 우리 아빠는 아직도 내 안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의 사랑은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다. 언제까지나 받고 또 받고 싶은 게 부모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은 나를 불안하게 했고 아프게 했고 흔들리게 했다. 언제나 든든히 지켜주던 사랑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조금씩 채워주신 분이 있다. 바로 나의 “청하”를 지켜주시는 아버님이다.
우리 아버님은 말씀이 많이 없으시다. 대신 조용히 행동을 하시다. 명절 때도 함께 있으면 며느리들 불편하시다며 식사도 가장 빨리 하시고, 며느리들 거실에서 편하게 TV 보며 쉬라고 방에 들어가서 쉬신다. 하는 일에 대해서 안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 “너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다. 든든한 지원군이고 응원단장이시고 아빠다. 나에겐 아빠가 셋이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나를 살게 하신 아빠,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언제나 함께 하시며 나를 지키시는 아빠 그리고 남편과 함께 선물처럼 와주신 아빠. 이렇게 든든한 아빠를 셋이나 가진 나는 어떤 일이 닥쳐도 어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도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잘해 낼 것을 믿고 지지해주는 아빠가 셋이나 있으니까.
얼마 전 아버님께서 감 두 개를 나에게 내미셨다. 나는 감을 좋아한다. 빨갛게 익은 홍시를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것 같은 느낌이 좋다 그리고 감씨를 입안에서 요리조리 발라내는 기분도 좋다. 올 해는 비도 많았고 날씨가 좋지 않아 감이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두 개 남은 감을 까치가 와서 먹으려고 하길래 내가 쫒아버렸다.
우리 효진이 주려고 내가 지키고 있었느니라.
까치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그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홍시보다 더 붉어지고 더 달콤해지고 몰랑몰랑해졌다. 감나무 옆에 지키고 서계시다가 까치를 쫓고 감을 따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웃음도 나고 뭉클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렇게 큰 사랑을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그냥 치워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갈 운이 나에게 잘 못 온 거라고 해도 그 사랑은 내가 가져야겠다. 나는 절대 뺏기지 않고 그 사랑을 지켜낼 것이다. 아버님께서 나에게 감을 먹이기 위해 까치를 쫓으며 감을 지키신 것처럼 나도 이 행복을 꼭 지켜낼 것이다.
의심하지 않고 가슴 충만하게 누릴 부모의 사랑을 그냥 온전히 누리며 그 사랑을 우리 아이에게 물들인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받았던 사랑의 감정들을 물려받을 수 있게 나는 사랑의 가교가 되어 나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우리 효진이”는 내가 시댁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아이의 이름 뒤에 엄마를 붙여 누구 엄마야 또는 누구야가 아니라 나는 “우리 효진이”다. 그래서 시댁 동네에 가면 주변 어르신들도 “우리 효진이”왔어? 그러신다. 차고 넘치는 사랑을 온몸으로 마음으로 받은 나는 이제 까치도 이겨버렸다. 그 사랑에 감사하며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그리고 나를 소중히 여기며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