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공 Feb 01. 2024

자서전(自敍傳) 이유

내 곁에 두고, 60여 년을 찾아 헤매었네

"전화를 왜 안 받고, 그래?"

"응, 도서관에 있다 보니 ~ 무음으로 해놔서......"

"그래도 문자라도 답을 해줘야지."

"미안해!"

아내는 볼멘소리로 감정을 토로했다.

"친구가 작가라는데, 나도 작가나 한번 해볼까 해서......"

"작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냥 하던 일이나 하지."

"아니, 괜찮은 직업 같은데....."

"작가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데, 제명대로 살려면 포기하셔~ 그리고 유명한  작가들도 반짝하고  사라졌어, 왜 그랬는지 알아?"

"몰라!"

"그들은 더 이상 작품이나 인기가 없어 전전긍긍하며 백수 아닌 백수가 되고 있지."

"왜 그렇지?"

"원래 그런 거야, 권력과 돈에 붙으면 자기 것은 없어 지거든......"

"..........."

"우리나라가 왜 노벨 문학상이 없는지 알아?"

"모르지요."

"권력과 돈, 명예만  좇다 보니, 진작 문학적 순수성은 잃어버려서~ 그게다 지연, 학연, 혈연 등에도 얽매여 꼼짝달싹도 못하지."

"당신이  작가네~ 모르는 게  없어......"

"나도 한때는 문학소녀 시절이 있었지."

"응? 그건 또 처음 듣는 말이네, 그림은 잘 그리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원래 그림을 그리며 글도 맞춰서 쓰는 거야."

".............."

"그러니까 그림 속에 글감, 모든 글소재가 들어가 있는 거야."

"그러면 그림이 1번 이네, 글은 그다음이고......"

"그렇지! 용이 떠오르고, 용과 호랑이가 싸우면 무협지가 되는 거지."

"만약에 글이나 책이 먼저 떠오르면....."

"그럼 만화책이나 소설이 되는 거야."

"야~ 진짜 작가네, 작가가 되시는 게 어떠 하온지?"

"말도 마~ 잠도 못 자고 글에 미쳐서, 결국 몸이 망가져서 포기했어."

"그 정도였어? 차라리 그만둔 게 잘했네, 그런데 제명대로 못 산다는 게 그런 뜻이야?"

"당연하지! 늘 방에 처박혀 제대로 못 먹고 안 움직이니 바짝 골아, 병이 오는 거지."

"꼭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어, 스님들처럼 명상도 하고 산책하면서~그러면 운동도 되는 거야."

"됐네요, 그냥 뒷동산에 운동삼아 약수터나 다녀오세요."

"그러지 뭐......."

공은 딱히 할 일도 없고 도서관에 다녀와서, 뒷동산으로 산책을 했다.

모처럼 산에 오르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상쾌한 공기며 눈앞에 펼쳐지는 숲 속에 자연의 풍광이 현란했다.

친구가 말하는 자연 속에 아름다움, 그 자체에 글이 쓰인다고 하는 말을 이해가 되었다.

정말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눈도 쉬이 지치지 않는다.

모처럼 세속에 찌든 번뇌를 던져버리고 묵은 때를 벗어던지며 홀가분한 마음을 열었다.

마음의 창에 들어오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셔 본다.

진작 숲 속을 찾았어야 했다.

이처럼 숲은 넉넉한 마음과 함께 자유로움을 가득 채운다.

멋진 시가 생각나고, 자신도 시인이 되어 천지강산을 누비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적막을 깨는 기계음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예전, 직장생활 때 친하게  지냈던 선배였다.

"어이! 뭐 해?"

"네~에, 등산하고 있어요."

"그래? 건강 잘 챙기고 있네."

"형님도 늘 등산 다녔잖아요, 요즘은 안 다니세요?"

"서울생활한다고 다닐 시간도 없고....."

"서울엔 어떻게 가셨어요?"

"응, 막내아들 내외가 손주 좀 봐달라고 해서......"

"형수가 있잖아요, 형님까지......"

"그러게 말이야, 지겨워 죽겠어~ 아는 사람도 없고......"

"형님이나, 저나 백수생활에 스트레스받네요."

"자네는 그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네~에, 형님!"

"난, 새벽 3시~4시경 일어나면 성경 사경(寫經)을 하고 있지."

"역시 형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시군요."

"잠은 일찍 깨고, 마땅히 할 일은 없고......."

"그래도 형님은 좋은 취미를 가졌네요."

"그래? 사경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아서......"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일기를 쓰니 난중일기고, 형님도 사경을 매일 하니 성경일기가 되겠네요."

"그런 셈인가, ㅎㅎㅎ...."

"저도 일기나 메모하는 습관은 아직도 변치 않고 계속하고 있어요."

"좋은 취미를 살려보지 그래? 자네는 직장생활 때, 사내 글쓰기 대회에도 나갔잖아."

"안 그래도, 퇴직한 이후에도 틈틈이 글쓰기는 계속하고 있어요."

정공은 직장생활 때, 글쓰기 대회 응모 전을 잠시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독후감이나 수기 관련 글쓰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왠지 어색하고 쑥스럽다.

"뭐 하고 있어?"

"응! 글쓰기 하고 있는데, 당신이 한 번 봐줄래?"

"왠~ 글쓰기는, 또 한다고 그래........."

아내는 못 이기는 체하며 글을 보고 갑자기 킥킥거리며 웃는 입을 가린다.

"왜 그래, 뭐가 잘못된 거야?"

"아니~ 이건 논픽션소설이야, 다큐야?"

정공은 아내가 무슨 의미로 웃는지 몰라도, 글을 다시 한번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웃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코미디나 풍자적 관련 글은 하나도 없다. 차라리 딱딱하면 몰라도......

그리고 아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당신 글쓰기가 내용은 좋은데, 주제나 핵심을 정확하게 표현했으면 해!"

아내의 말은 주제가 제대로 전달이 안된다는 것, 장르마다 주제를 벗어나 갈팡질팡, 우왕좌왕, 한마디로 기승전결이라는 기본적 구성 체계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고맙다. 한 때, 작가를 꿈꾸며 글쓰기 먼저한 선배로써 진실된 충고이다.

그리고 글쓰기가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쪼그만 경험과 지식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했다.

생각은 거창하고, 실제 글 쓰는 실력은 못 미치고, 이 두 가지를 조화스럽게 맞추어 나가는 게 핵심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당신 말대로 바다나 산으로 여행이나 다녀야겠어......."

"당신이 글쓰기를 좋아하니, 글쓰기를 하세요."

"당신이 비웃으니, 그만할래!"

"아니~ 내가 언제 비웃었다고 그래, 참~ 당신도......."

"그냥~ 농담이야, 당신이 도와주면 잘할 것 같아서......."

"나보다야~ 당신이 더 잘할 수 있어, 꾸준함과 상상력이 풍부하니~ 파이팅!"

아내는 응원을 하며 글쓰기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표했다.

"당신 메모나 일기 쓰는 습관이 있잖아, 그런 것을 토대로 이어 나가 봐."

"그럼 수필을 쓰라, 이 말이네?"

"수필이든 자서전이든 일단 완성을 해봐, 그 뒤에 내가 다시 봐줄게"

정공은 아내의 말에 힘을 입어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돌입하였다.

일기든 자서전이든 제대로 된 글쓰기가 되기 위해서는 선배나 스승 조언의 필요하다.

아내는 글쓰기에도 기초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새싹이 이제 막 솟아났다고 했다.

새싹이 잘 자랄 때까지 지대한 관심과 정성이 필요하다며 파이팅을 보냈다.

왠지 아내가 더욱더 자랑스럽게 보였다.             

정공은 글을 쓰며, 과거를 회상하고 명상과 사색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런 와중에,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어쩌면 불도에 깊이 관련된 생각이 들었다.

자신 스스로가 하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 보이지 않는 불도힘에 의해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백수로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다 아내의 핀잔을 들으며 시작했었다.

백수의 기본 임무인 가사를 하면서, 그다음엔 아내가 지시하는 일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때에, 아내가 늘 하는 말이 있었다.

"당신은 여태 조직과 타인을 위해 일해왔잖아, 이제 자신을 위한 일을 해보는 거야."

"봉사하는 일도 결국엔 자신을 위하는 길이야."

"무엇을 봉사한다는 말이야~ 집안일? 그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아니~ 나로서는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뭐가 문제야?"

"설거지 하나만 봐도 그래, 다했다는 것이 미끌미끌하고 마음에 안 들어!"

아내는 설거지 상태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아예 싱크대 주위에 오지 말라고 했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당신은 남이 시키는 일, 봉사고 어떤 일이든 맞지 않는다는 거야."

"그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는 거야?"

"그건, 당신이 결정해! 중요한 것은 당신이 만족하느냐에 달렸어."

아내는 과거, 남편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반평생, 위로만 보고 살아왔고, 자신을 보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워했다.

그렇기에 백수가 된 지금, 잔소리를 아예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혼자서 여행이나 산책을 가라고 독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을 항상 위하고 말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젠가 정공이 다니는 절에서, 주지스님이 아내에 대해서 한 말씀이 생각났다.

"거사님이 지금 편안하고 행복하신 이유는 모두가 보살님 덕이지요."

스님은 집안에서 아내의 위치는 부처님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부모은중경에서 부모의 은혜는 산과 같고 바다와 같다고 기술하였다.

그중에서도, 어머니라는 여자는 위대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어쨌든 아내가 지금 하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붓다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떤 형태로든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이 없다.

그것이 아내이든 자신이든 불도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음을 알았다.

"바다는 희망이야~ 바닷속에는 보물과 지혜가 무진장 있지, 고기도, 사람들도 바다에서 보물을 캐지."

언젠가 퇴직한 선배와 바다를 찾아갔을 때, 선배가 말했었다.

정공은 그때를 떠올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지! 강물이 흘러 바다에서 다 만나 듯, 모든 물이 최종적으로 모두 흘러들어온 곳은 바다이다.

내가 읽은 경전에서도 바다를 많이 언급했었다.

부처님의 세계를 바다로 표현했고, 바닷속에 있건 바다 겉에 있건, 결국 모두가 바다로 돌아간다고 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 고해의 바다에 들어와서 괴로움과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방편과 법문을 설하셨다.  

이러한 연유에서 삶에 진정한 의미를 찾고 싶었고, 글쓰기로 다가선 것이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은  자신의 삶이야기이지만, 불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써온 글이다.

싫든 좋든, 기뻤든 슬펐든, 잘 살아왔던 못 살아왔던, 모두가 오롯한 자신의 삶이다.

그래서 자서전도 내가 누구며, 이 세상에 왜 왔는지 밝히는 것으로 써내려 간다.

누구에게나 불성은 있다고 한다.

내가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가 바다와 같은 불성을 찾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집안에 부처를 두고 산속에 돌부처를 찾아오지 마시라."라고 했던 고승의 말씀이 생각난다.

난, 부처님을 바로 곁에 두고 천지강산과 수많은 세월 속을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부처님이자, 스승이며 훌륭한 선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이 모든 것을 알기까지에, 60여 년의 세월이 넘게 걸린 것이다.


이전 04화 겨울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