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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진 leeAjean Sep 10. 2024

[소설] 08화_
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꼽았다

소설_사냥철에 양들은 도망쳐요.





10


 다들 하루키를 언급할 때 그의 유명 작품을 꼽지만, 


 난 단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꼽았다. 이유는 이 책이 내 삶의 한 부분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종종 침대에 누워 얼마나 잘 수 있나 생각한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전혀 다른 곳으로 빠져든다. 몸속 장기는 이미 힘을 잃었는데, 정신만이 또렷하다. 


 그때, 자신의 망가짐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늙어감을 인식한다. 





 마침내 잠들면, 힘이 빠져 자는 노인처럼 사자 꿈을 꾸지만, 온도차에 깨어나 숨을 헐떡인다. 


 바다 한 복판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상어가 넘치는 방향으로 몸을 던져,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물결이 이는 꿈. 그런 꿈을 꾼 것이다. 


 베개 위치를 적당히 비틀어 다시 잠들 때면, 엄마의 품을 회상한다. 


 눈을 뜨면 현실과 마주한다. 외로움이 밀려온다. 날개가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뛰어내리고 싶어 진다. 


 이런 상황을 인간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바로 그 시점에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것보다 그 책을 좋아할 명쾌한 이유가 있을까.







 <여울의 여명>은 특유의 문체가 좋다. 


 간혹 책의 저자인 ‘d.p.’만이 이해할 문장이나 설득력 없는 전개에 갸우뚱 하지만, 읽을 수 있는 말로 된 암호를 푸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생각은 공상과 같다. 그리고 소설을 쓰면 공상에 들뜰 수 있다. 


 때로는 허약해지고, 


 때로는 다중적이게 된다. 


 여러 인격이 부딪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와 글쓰기를 고통스러워하는 나. 아무것도 하지도 못하면서, 사치스러운 결론에 이르러 다시 글을 잡는다. 


 몰입은 깨진 상태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기분, 이윽고 글쓰기를 멈추고 만다. 




 



 소설은 창조다. 


 신은 작가들에게 창조의 권리를 쥐어주었다. 


 누군가는 한평생 동안 권리가 주어진 지 알아채지 못하고 죽고, 누군가는 알고 있음에도 외면한다. 


 외면은 세상에 봉사하길 거부하는 것과 같다. 


 히스토는 거부한 적이 없었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슬픔에 잠식돼 손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히스토는 자신 같은 것을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소명을 외면한 대가로, 회색지대를 표류하는 삶을 선고받았다.’라고.


















사진 1 : haruki murakami

사진 2 : charl du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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