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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토끼 Apr 21. 2023

밥 먹고 앉으면, 9시

아이 숙제에 발동동

저녁 밥을 아무리 빨리 먹어도, 아이들과 숙제하려고 둘러 앉으면 9시다.

쫌 노력하면 몇 분 빨라지지만, 결국 다시 9시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9시에 잔다는데, 9시부터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학교 숙제, 엄마 숙제, 학원 숙제, 때에 따라 학습지까지...

학습량이 모자랄까봐 목록에 올려두었던 엄마 숙제를 슬그머니 빼보아도 10시 자기는 글렀다.


어쩔 수 없다. 빨리 해야지. 9시부터 식탁에 둘러 앉아 시작해 본다.

'가장 급한 게 뭐니'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게 뭐니'

아이는 내 마음과 다르게 행동이 굼떠 준비물 가져오는데 반나절이다. 

그러다 각도기라도 찾기 시작하면 워매! 20분이 홀라당 지나간다.


이번엔 감사 일기 쓰기다.

우리 학교 특성 사업이라나... 주제는 학용품.

지우개야 고마워~로 글짓기를 해본다. 아이는 받아쓰기를 하고, 나는 글을 부른다...;


독서가 그렇게 우당탕탕 된다니.

책 한 권 읽고 독후활동하기는 이럴 때 읽으려고 빌려온 글밥 좀 많은 그림책으로 후다닥 떼우고,

갑자기 등장한 조사 숙제에 가슴이 철렁했는데, 다행히 다음주까지란다.


이 와중에 자기가 미리 했다고 우쭐해하는 숙제가 있으니,

줄넘기 하기...

하, 엄마는 자고 싶단다. 그 다음이 모니.


일일수학 풀기는 혼자 하겠거니 시켜놨더니.

'나누기' 단원이라고 덮어놓고 다 나눴다. 더하기도 있는데...;

진한 B 연필로 써서, 지우면서 승질을 내니, 어쩔 수 있나 열심히 지워준다.


집중을 해서 해도 10시 반에 끝날까 말까인데,,, 무수한 속터짐을 삼키고 삼켜

이제 치카중...

'11시다, 11시~ 어서 자자'


바쁜데 안아달랜다. 빨리 자라고 쑥 끌어다가 포옥 안아준다. 

부족하다고 다시 올까봐 더 꼬옥 안는다.


'엄마 숙제 도와줘서 고마워'

속삭이는 한 마디에, 9시부터 동동 구르던 마음이 진정된다.


그래 숙제 좀 안 하면 어때~ 이쁜 내 새끼.




 칼퇴근하고, 미리 다 준비해둔 저녁을 익혀먹으며 9시를 8시로 당겨본 적이 있다. 그래도 아이들의 몸시계는 아니 정신시계는 9시가 되지 않으면 작동을 하지 않더라. 9시부터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인지, 유튜브 보고 카톡하고 놀더니, 기어이 9시가 되서야 시작되는 이 모든 루틴.


안 도와주겠다고 마음을 먹어보지만, 좀 해보겠다는데 외면할 수 없는 일. 오늘도 글쓰기를 불러주고 있다. '이렇게 받아 쓰다보면 그래도 나아지겠지?' 하는 작은 희망으로 막 불러주는데... '엄마 다른 문장 없어?' 그건 좀 별로라고 평가도 하신다...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한다고만 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뭐했니?' 목끝까지 차오른 잔소리를 집어 삼키고, 애랑 같이 숙제 삼매경에 빠져본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리 아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자세히 알게 되니 좋은 점도 있지만, 못다한 숙제가 나한테 돌아오지 않게 자꾸 숙제했냐는 잔소리를 하는 부작용도 생긴다.


그런 부작용은 결국 아이가 숙제를 내놓지 않고 꽁꽁 싸매어 끌어안고 침몰(?)하는 또 다른 부작용을 부를 수 있으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해달라는 것에 집중하자. 애초에 아이가 숙제를 스스로 하는 것을 목표로 두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겠다. 


4학년 쯤 되니, 숙제를 잘 하고 칭찬을 받을 것인가, 안하고 혼나고 떼울 것인가를 저울질하더라. 이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숙제를 잘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성실하게 해가면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는 한 번 큰 걸 안 했을 때 와일드 카드처럼 꺼내 쓸 수 있게 되니, 일단 할 수 있는거면 '잘'을 포기하고 하는데 집중하라고... 그리고 아주 큰 숙제에 그 한 방에 그 기회를 쓰라고(그 기회는 안 올 수 있음ㅋㅋ) 인생을 아우르는 조언을 해 주었다.


아이도 할 일이 늘어간다. 엄마 일도 같이 늘어난다. 하지만, 방치하지 말고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하고 해결해야하는지를 옆에서 코치해주자. 다 못할 것 같은 일도, 엄마에게 얘기해서 해나가기 시작하면 모두 끝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자. '에라 모르겠다'하지 않도록, 말해봤자 잔소리만 듣는다고 지레 단정짓지 않도록, 그리하여 넘사벽인 '스스로 하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아이가 해야할 일'을 거들어 '신뢰'를 쌓자. 그 신뢰가 언젠가 큰 한 방으로 돌아올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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