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die Melancholie, 1871)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나를 나무라지 마시오, 그대 우울이여
나는 그대를 노래하기 위해 펜을 갈고
머리는 무릎까지 숙여 경배할 터이니
그대는 은자처럼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쉬기만 하시라
어제는 그대가 나를 노려보기만 했구려
이글거리는 아침 햇살 속에서
끄륵끄륵 탐욕스럽게 계곡을 날아다니며
말뚝에서 썩어가는 고기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탐욕의 새여, 그대가 먹이를 찾지 못했다면
나는 둥지에서 시체처럼 누워 기다릴 터이나
그대는 내 눈을 피해 빙글빙글 돌면서도
아침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도도한 척하는구려
그대처럼 높이높이 솟구쳐서
구름까지 날아올라 입맞춤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오히려 깊이깊이 가라앉아
찬란한 심연까지 내려갈 것이오
그리하여 몰골 흉한 모습으로 꿇어앉아
못나고 일그러진 희생제물이 된다 해도
나는 내 젊은 날들을 참회하면서
그리워할 것이오, 그대 우울이여
나는 묵묵히 앉아 있을 터이니
그대는 천둥번개 몰아치듯 내 주위를 빙빙 돌면서
인간들처럼 가면을 쓰지 말고
진실되고도 엄숙한 얼굴로 내게 말해 주시오
가장 사납고 냉혹한 여신이자
절친한 친구인 그대여, 어서 오시오
나를 독수리 내리꽂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시오
그대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더라도 능히 막아낼 터이니
추악한 욕망으로 날름거리며
끝없는 탐욕에 취해서 헐떡거리는 그대여
그대의 차가운 침대에 핀 유혹의 꽃들로는
버나비들밖에 끌어들이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바로 나 자신인지라 온몸이 떨려오는구려
꾐에 빠진 버나비들, 홀로 버려진 꽃
얼어붙은 강으로 내리꽂히는 독수리, 휘몰아치는 폭풍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내 손아귀에 있음이라
이제 나는 근엄한 여신에게 절을 해야겠소
조금도 거리낌 없이 찬양하며 드높이겠소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고 길고 긴 노래를 부르겠소
그리하여 내가 간절히 갈망하는 것, 그것은 바로 생명, 생명, 생명이외다
나를 나무라지 마시오, 성난 신이여
그대가 고운 선율로 노래하면 나는 경배할 것이요
그대가 무서운 얼굴로 다가오면
동이 틀 무렵 그대는 사악한 얼굴로 변할 것이라
이제 나는 찬양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온몸을 흔들며 장단 맞추나니
깃털 펜도 잉크를 흘리며 마구 달려가는구려
그러하니 이제는 나를 떠나시라, 여신이여 나를 놓아주시라
(이 시를 번역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면 이해하시려나.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 . 이제 다시는 니체의 시는 번역하지 않으리. 절대로!) [혹 어색하고 수상한 곳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나(?)
An die Melancholie | 우울에게
니체는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Wagner, 1813~1883)를 거의 숭배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가족과도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바그너의 부인인 코지마(Cosima)가 1869년 11월에 니체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가 1514년에 제작한 ‘Melancolia(우울)’라는 판화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구해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코지마는 바그너가 타계한 이후 25년간 남편이 지휘한 바이로이트 축제를 맡아서 아들에게 물려줄 때까지 이끈 명지휘자였다.) 그러나 니체는 그 다음 해인 1870년 6월이 되어서야 간신히 그 판화를 구해서 코지마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판화에 어울리는 시도 썼는데, 그것이 바로 여기에서 소개하는 이 ‘An die Melancholie(우울에게)’이다. 니체는 자신의 후원자이자 친구인 카를 폰 게르스도르프(Carl von Gersdorff)에게 많이 의지했으며, 이 시는 1871년 바로 그 친구와 함께 스위스의 아름다운 정원도시인 지멜발트(Gimmelwald)로 여행 갔을 때 쓴 것이다. 이때 니체의 여동생도 함께 갔었다고 한다. (카를 폰 게르스도르프는 니체가 어려울 때마다 옆에서 도와준 인물로, 거의 비서 수준으로 헌신했다고 한다.)
니체는 24세에 바젤 대학의 교수가 될 정도로 당시에 명성이 대단했으나, 그 반면 반평생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두통과 눈의 통증에 시달리며 보냈다. 그가 설파한 초인사상은 생존 당시에는 철저히 외면당했다가 타계한 이후에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평생 ‘고독한 투쟁’을 벌인 것이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Melancolia(우울)’ 동판화는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소장되어 있다. (1514년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