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을 끝낸 후, 시드니에서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것을 마주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부터 비롯된다.

by LC

상징(Symbol). 호주의 상징이라 할 만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앞에 서 보고 싶었다. 시드니를 거쳐 남미로 가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기에, 남미로 떠나기 전 시드니에 며칠간 머물면서 휴식을 취했다. 퍼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4시간 반. 퍼스보다 3시간 더 빠른 곳. 킹스크로스 근처에 숙소를 잡은 나는 오페라 하우스를 몇 번이고 찾았다. 그 앞에서 호주에서의 생활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난 특별한 목적 없이 호주에 왔지만, 지금 생활은 만족할 만 해. 그래도 얻어가는 게 있으니까. 호주에 와서 영어도 많이 늘었고, 돈도 많이 벌고 이 정도면 괜찮지."
"저도 여행 경비 마련하려고 호주에 왔는데, 목표(여행경비 마련)는 이루었으니까 만족해요."


"'실패다 성공이다'라고 말하는 건 웃기지만,
호주에 워킹 와서 돈만 쓰다가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최소한 이 정도면 우리는 실패한 케이스는 아니죠."(웃음)

7월 22일 밤,

내가 호주에 도착했을 때, 퍼스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퍼스 국제공항의 까다로운 세관 검사와 혼잡함.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입국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숙소 예약도 해 놓지 않았고,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려했다. 하지만 운 좋게도 공항에서 만난 한국인(유 형님)이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고, 그렇게 호주 생활이 시작되었다.


호주에 오기 전, 목표로 한 것 몇 가지가 있었다.

1. 미국, 중남미 여행 자금 600-700만 원 정도를 모을 것.

2. 호주에는 3개월 정도만 머물 것.

3. 스카이 다이빙 하기.

4. 서핑 하기.

5. 일 끝나고 2~4주 정도 호주 여행 하기.


많은 사람들이 '기회의 땅'이라 말하던 '호주'에 직접 와서 부딪혀 보니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생각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자신감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포기해야만 할 것만 같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낸 적이 있다.

맨땅에 헤딩이라고 해야 하나. 인맥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몸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내가 호주에 도착한 시점인 7-8월, 겨울에는 농장/공장을 막론하고 일거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시티 잡(City job, 시내의 호텔이나 식당, 근교의 공장에서 일하는 것)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했고, 모두들 하루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단 몇 시간이라도 일을 하려 했다. 소위 '초 비수기'에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 별다른 방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계속 두드릴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엔 문이 열렸던 것이다. 그렇게 목표(여행 자금 모으기)를 달성할 수 있었다.

예상치 않게 길어진 구직 기간.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인 건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지체되었고, 자연스럽게 호주에 머무는 기간도 길어졌다. 어쩔 수 없이 여행 일정을 조절해야 했다. '남미 여행 기간'에 변화를 주지 않는 대신 '호주 여행'을 포기해야 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행 자금을 넉넉히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위안 삼았다.

듣던 대로 호주 서부 해안(퍼스 주변의 바다, 대서양)은 최고라 할 만했다. 코발트블루빛 바다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 그리고 백사장 뒤편 잔디밭에 마련된 바비큐 그릴. 대서양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높은 파도는 서핑을 하기에 최적이었다. 나는 퍼스에서 만난 사람들(교회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사람들, 공장 사람들)과 바다로 나갔다. 노스 프리맨틀의 레이턴 비치(Leighton Beach), 퍼스 서쪽의 코스틀로우 비치(Cottesloe Beach)와 좀 더 북쪽의 스카보로 비치(scarborough beach)는 나와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다.

호주라는 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하다면 좀 오랫동안 호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호주에 워킹을 왔던 많은 사람들이 '영주권'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한국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부족한 것 없이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한 삶. 호주, 최소한 내가 머물렀던 퍼스와 프리맨틀엔 여유가 넘쳤고 모든 것이 풍족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스완 강(Swan River)의 모습. 다시 찾지 않는다면 영원토록 그리워할 만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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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일을 시작하게 됐다.

2주일 간의 구직 생활. 무엇이든지 해야만 했고, 농장일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으로 알려진 와인 농장 푸르닝을 하게 되었다. 여러 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약 7주간 일을 했고, 7주 동안 3천 달러가 조금 넘는 돈을 모았다(생활비, 텍스 등을 제외하고 남은 돈). 하지만 여행 자금으로서는 아직 부족했다. 다음 일을 구할 때까지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시간'이었다.

또다시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공장에 취직하게 된 나의 고민은 '언제 떠나면 좋을까'라는 것 하나로 좁혀졌다. 7주? 8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과 떠나는 것 사이에서의 고민. 생각보다 남미행 비행기 표값은 비쌌고(11월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가격이 많이 뛰었기 때문이다), 여행 자금을 넉넉히 가지고 떠나자는 생각에 9주 정도 일하게 되었다. 1주일에 100만 원을 벌 수 있고, 그 돈이면 좀 더 풍족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다독였다. 자기합리화라고나 할까?


생각보다 호주에서의 지출이 많았다. 많이 번 만큼 많이 썼다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공장에서 일 할 때의 '셰어하우스'. 일주일에 125달러의 지출. 방 한 칸, 한 달 4주면 500달러였다. 서핑 보드도 구입을 했는데, 새것을 사도 여행을 하면서 들고 다닐 수 없었기에 호주 현지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중고로 하나 구입을 했다(새 제품 가격은 최소 4-500달러. 중고 매물로 나온 180달러짜리 숏 보드를 좀 더 깎아달라고 졸라서 155달러에 샀다). 스카이 다이빙을 하는 데 560달러를 썼고,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다이빙 장비를 풀셋(전신 슈트, 핀, 고글 등)으로 구입하게 됐다. 다이빙 세트 가격만 600달러가 넘었는데 결제를 하는 순간에도 이걸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계산대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오지 형이 말했다. "3일만 일하면 되는데 뭘 고민해. 이왕 사는 거 좋은 거 사."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썼다.


나와 호주, 그리고 여행.

호주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많은 것들을 보았고, 만족할 만큼의 돈을 벌었다. 영어 실력이 조금 늘었으며,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내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시드니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나를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Bogota)'에 데려다줄 것이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남미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모든 것은 불확실했지만 결국, 목표한 바를 이루고 남미로 떠날 수 있게 됐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었다.

여행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누구를 만나게 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것을 마주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부터 비롯된다. 불확실성. 앞으로의 여행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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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841.png 시드니 '킹스 크로스(Kings Cross)'의 상징인 코카콜라(왼쪽)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오른쪽). 아래 사진은 호주 국영 항공사인 콴타스 항공.


앞 이야기

- 5000달러를 잃다?!

- 스카이 다이빙, 잊을 수 없는 짜릿함.

- 공장, 그리고 호주와의 결별 준비.

- 얻은 건 무엇인가? 돈이면 충분한가.

- 별미, 자연산 전복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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