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 내 경우도 이전에 그런 질문을 많이 했던거 같다. 내가 누구인지 질문하는 이유는 방황을 끝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목표가 있는 사람, 지금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겐 이런 고민을 할 여력이 별로 없다. 방황이 시작되면 고민이 시작된다. 방황을 끝내기 위해선 나에 대해 잘 아는게 중요하고, 기준점 삼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너무 포괄적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지금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 가 한데 얽혀있다. 그러다보니 어디에 중점을 두어 나를 파악할 것인지에 대한 오류에 빠진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지금의 나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좋아했던 것,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의 선택이 나를 온전히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의 선택들은 모두 나의 온전한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 상황에 따라 떠밀리듯 하는 경우도 있고, 최악을 선택하지 않기위해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좋아했던 것,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달라져 있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미래의 나를 보며 나를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 이러이러한 것을 하니 어떠한 사람이 될거라는 기대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경험해봤겠지만 계획을 아무리 잘 짠들 생각한대로 끝까지 실행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또한 중간에 더 좋은 조건이나 상황이 있으면 언제든지 미래의 나가 바뀔 수 있다. 때문에 미래의 나를 생각해서 지금의 나를 규정짓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해야한다. 오히려 괴리감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를 규정하는 것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목표가 바로서기 때문이다. 목표를 선명하게 그릴수록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지며 목표가 있기에 지금 해야할 것들을 선별할 수 있고,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되지 않는다. 나를 바꾸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행동이다. 즉 목표는 방향성이고, 변화는 행동에서 온다.
때문에 목표를 잡을때는 지금 하는 행동, 그리고 앞으로 할 수 있는 행동들을 기반으로 슬로건을 잡는게 좋다. '무언가를 했던 나'가 보단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가 좀더 낫다는 의미다. 행동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변화 된, 또는 변화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결국 어떤 포인트를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그 도달점에는 스스로의 성장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들은 미래와 연결되어야 한다. 과거는 데이터일 뿐이다. 데이터만 보고 미래를 예측하고 결정해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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