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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Feb 04. 2018

첫 경험4

그의 시점

  

"한 번 하자."     


이제는 아무 기대 없이 이 질문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녀는 '지겹지도 않니?'와 '참 한심하네.'가 절반씩 섞인 표정을 짓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녀는 결혼 전까지는 남자와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내게 말해왔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질문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갑자기 내가 질문을 관두면 그녀 쪽에서 오히려 서운해할지도 모르고 혹시나 그녀가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니까 습관처럼 물어보게 된다.      


"한 번 할래?"     


처음에는 '설마'하던 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설득됐다. 하지만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녀와 결혼 전까지는 할 수 없겠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포자기했을 뿐이다. 요즘 시대에 혼전순결을 지키는 것도, 매달 월급의 일정액을 계좌번호도 모르는 하나님에게 보내는 것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교회에 나오라는 그녀의 성화에 못 이겨 나도 요즘은 매주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고 있다. 목사의 설교 따위는 관심 없지만 교회에 가는 것을 조건으로 '한 번'의 '절반'과 비슷한 것을 받기로 그녀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간 뒤로 그녀는 손이나 입으로 가끔 내가 사정하는 것을 도와준다. 유도의 절반 같은 그 반절의 애무를 받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분위기를 잡으며 그녀의 안다리에 내 다리를 걸어 넣고는 '한판'을 시도하지만 매번 그녀의 철별 수비에 막힌다. '열려라 참깨'도 '요술 램프'도 내 소원을 들어주진 못한다.      


그럼 나는 '도대체 성경의 어느 구절에 남자의 똘똘이를 입이나 손으로 받아주는 것은 되지만 버자이너(질)는 절대 안 된다'라고 적혀 있는지 묻고 싶어 진다. 하지만 실제로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가끔은 내 똘똘이가 그녀를 설득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한가 싶어 주눅이 들기도 한다. 한 번 하기 위해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는 나로서는 '파워 오브 갓'의 위력이 그녀의 의지력을 얼마나 튼튼하게 지탱해 주는지 알 길이 없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거래처의 유부남 과장을 만나는 자리였다. 과장은 최근 새로 팀에 배정받은 신입이라며 그녀를 소개했다. 그녀와 나는 이제 사귄 지 1년이 다 돼간다.      


이래 저래 피곤한 것은 딱 질색인 나는 그전까지 나름으로 '업무적으로 얽힌 사람과는 사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었다. 미혼으로 보이는 여자 직원을 만나면 남자 친구의 존재 여부나, 주말에 뭐하는지와 같은 질문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처음 본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의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얻었으니 이제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그녀와 관계없는 업종을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그녀는 엄청났다. 쉽게 말해 나는 한눈에 그녀에게 반했다.       


20대 초중반에는 적어도 나보다 서너 살은 많거나 나이의 앞자리 수가 다른 여자들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들은 아직 애송이에 불과한 내게 관심이 없었으므로 나는 군대를 포함해 7년 가까이 대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이렇다 할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었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연상의 그녀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고, 내게 관심 있는 또래의 여자들은 내 쪽에서 흥미가 없었다.     


그전까지 여자를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사귀기까지 꽤나 험로를 지났다. 생각해 보니 그전까지 여자들이 뭐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 내가 좋다고 덤비던 동기와 후배 여자애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내 또래의 여자들에게는 아무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심심하면 후배나 비슷한 연배의 여자애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영화를 보거나, 술을 먹기도 했지만 그러고 말 뿐이었다. 여자애가 취한 척을 하며 어깨를 기대와도 나는 택시를 잡아서 여자애의 집 앞까지 바래다주거나, 여자애가 술에서 깰 때까지 24시간 문을 여는 카페에 들어가 있거나 했다. 24시간을 하는 카페에 들어가서 가방 속의 소설을 꺼내 읽기 시작하면 열에 아홉은 한 시간 뒤쯤 술에 깬 척 일어나곤 했다.       


그녀는 나보다 3살이나 어렸지만 내가 본 그 어떤 연상의 여자보다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주변에서는 "너 그냥 2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의 여자를 좋아하는 거 아냐?"라고 묻기도 했지만 단순히 나이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나이 같은 것은 숫자에 불과하고 나는 그 나이 대의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통적인 속성에 끌렸던 것 같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나와는 매우 달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내게 결핍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알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비밀 같은 것도.     


또래 혹은 나보다 어린 여자애들은 이야기를 나누면 어쩐지 속이 빤히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성별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나와 겹쳐지는 특징들이 감지됐다. 하지만 연상의 그녀들은 나와는 뭔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좀처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더 알고 싶어 졌고 관심이 갔다. 알 수 없는 상태일 때 그녀들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과장과 함께 나온 그녀는 실제로는 나보다 어렸지만 속을 알 수 없었다. 연상의 그녀들이 갖고 있는 미지의 매력과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생기가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 속에 멤돌고 있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 이후 나는 끈질기게 그녀에게 구애했다. 매일 아침 문자로 인사를 건네고, 틈만 나면 식사나 커피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고 했다. 자존감이 낮아서 한 번 차인 여자에게는 절대로 두 번 고백하지 않았었지만 그녀라면 10번을 차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차이고 거절당하고 무시당하고 좌절하면서도 실패가 쌓이니 나름 오기가 생겼다. 이제 정말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쯤 그녀는 능숙하게 틈을 보여줬고 그럼 다시 나는 일주일치 거절 쿠폰을 그녀에게 발행해 줬다. 일주일이 4번 지나고 한 달째 되던 날 그녀는 "노력이 가상하니 한 번 사귀어 줄게"라는 분위기로 내 고백을 받아줬다.      


처음 몇 달간은 나와 사귀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기 때문에 그녀와 잘 수 없다고 해서 불평불만이 생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보기만 해도 굉장히 떨렸기 때문에 미천한 내가 그녀에게 손을 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게 생각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다름, 그녀의 특별함이 발하는 빛이 사그라지고 나와 그녀 역시 평범한 연인 사이가 되자 조금씩 조금씩 불만이 쌓여갔다.      


그녀는 앞서 몇몇의 남자 친구를 사귀었지만 그녀는 내게 첫 번째 여자 친구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전에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섹스리스' 연인으로서 1년을 버틸 수 있었다. 필요하면 그녀의 손과 입에게 도움을 청했고, 정 안되면 혼자서 해결을 하며 참았다. 주변에서 슬슬 결혼을 하는 커플도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참고 결혼 후에 그동안 쌓인 울분을 마음껏 풀어줘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와 결혼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혹독하리만치 최면을 걸었다.      


처음부터 내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빠져들었던 그녀를 마지막까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마지막만큼은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사귄 지 1주년이 되던 날은 그녀가 회사에서 야근을 하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가 그녀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1주년과 그녀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기로 했다. 생일 당일, 그녀는 회사에서 회식이 잡혔지만 최대한 빨리 끝마치고 나올 테니 저녁을 함께 먹자고 말했다.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식당을 예약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자 그녀에게 문자가 하나 왔다.      


"회사에서 생일 축하를 해준다고 잡는 바람에 좀 늦어질 것 같아."      


다시 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받지 않았다. 1통, 2통, 3통 부재중 전화가 쌓여갔다. 식당에서 4시간을 넘게 기다린 뒤에 나는 식당을 나왔다. 화가 나서 그녀가 사는 동네로 찾아갔다. 찬 밤공기 속에서 다시 몇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녀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차갑게 식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한 동안 고민한 후에 오늘은 그냥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녀의 생일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은 피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그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숙취로 전화를 늦게 받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통화음이 몇 번 울리기 전에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낯선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유일하게 등록한 단축 번호로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번호를 잘못 누를 일은 없을 거였다.      


"혹시 ㅇㅇ이 핸드폰 아닌가요?"라고 물어보려는 찰나 저쪽에서 그녀인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핸드폰이 급하게 꺼졌다. 잠시 뒤에 전화가 왔다.      


그녀는 평소의 그녀 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내가 그토록 "한 번 하자"고 할 때는 단호하던 그녀가 당황하며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녀의 변명을 들을수록 그녀가 지금 그녀의 옆에 있는 남자와 '한 번 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아프게 전해져 왔다. 내 안에서 뭔가가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날 아침의 그 통화 이후 나는 그녀와 다시는 통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술에 취해 대학시절 내게 관심을 보였던 몇몇 여자애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중 한 명에게 답이 왔고 나는 그녀를 보러 갔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와 한 번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도 한 번하고, 그 이후에도 그녀와 몇 번 더 했다.      


+

내가 모르는 그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뒤죽박죽이 됐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 수 없게 돼버렸다. 나는 앞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는 척하며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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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1: https://brunch.co.kr/@lieoflie/6

첫 경험2: https://brunch.co.kr/@lieoflie/83

첫 경험3: https://brunch.co.kr/@lieoflie/98

첫 경험4-1: https://brunch.co.kr/@lieofli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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