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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Feb 08. 2018

첫 경험4-1

그녀의 시점

(글 하단 링크에 있는 첫 경험4를 먼저 읽어주세요.)


저 바보는 참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다. 오늘도 저 바보는 "오늘 진짜 춥지?" 혹은 "아침은 먹었어?"와 같은 말을 할 때처럼 "한 번 할래?"라고 내게 물어온다. 일단 하기만 하면 홍콩을 몇 번이라도 왕복시켜 줄 수 있다는 듯 허풍을 떨지만 막상 내가 "그래, 한 번 하자"고 순순히 응해주면 저 바보는 꼬리를 말고 도망갈 게 뻔하다. 당황한 표정으로 "어? 응? 뭐? 괜찮겠어? 너, 그, 교회... 그, 뭐, 혼전순결..."이러면서 도망을 갈 거다. "당연히 뻥이지."라고 내가 말하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게 안 봐도 비디오다.      


무엇보다 "한 번 할래?"라고 물어보는 저 바보한테는 섹시함이 단 1도 없다. 큰 결심을 했다는 결연함이나, 남성적인 공격성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미 새에게 모이를 바라는 새끼 새 같은 불쌍한 표정이다. 눈물이 맺힌 듯한 바보의 얼굴을 보다 하마터면 웃음이 날 뻔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무표정을 가장했다. 여기서 틈을 보이면 어찌 됐든 저 바보는 득달같이 달려들 게 뻔하니까.     


사실 나도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거나 하나님이 나를 벌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벌한다면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는' 쓰레기들을 먼저 벌해야 할 거다. 내가 다니는 교회만 해도 성도들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는 집사와 목사가 수두룩 빽빽하다. 입바른 말을 하는 세 치 혀가 모르게, 그들의 왼손과 오른손은 어두운 치마 속을 바쁘게 헤맨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과거 가톨릭 사제들의 빈번한 아동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교회는 집단적으로 이를 묵인하고 은폐했다. 결국 한 신문사가 집요하게 취재한 끝에 교회의 성추행 스캔들을 세상에 알렸다. 동서고금,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쓰레기는 있다. 심지어 가장 신성한 종교의 장에서도.       


저 바보가 그리도 증오하는 내 혼전순결의 기원은 아직 내가 생리를 시작하기 전인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사람들이 신혼여행이나 휴가로 종종 찾곤 하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동네 사람들은 '옆집 순이네 숟가락 개수'까지는 모르더라도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왕래가 잦았다.      


초등학교에서 두 자릿수 덧셈을 배울 무렵의 여름방학, 나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영수네 집에 가야 했다. 하지만 영수는 없고 영수 아버지만 있었다. 영수 아버지는 나를 보고는 "날도 더우니 와서 음료수나 한 잔 먹고 가라"고 권했다. 나는 사양했다.      


"호미랑 낫만 받아 가지고, 집에 가서 점심 먹을 거라 괜찮아요."      


하지만 아저씨는 자꾸만 음료수를 먹고 가라고 나를 다그쳤다. 어쩔 수 없이 방에 들어가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데 아저씨가 은색 사발에 미숫가루를 타서 내왔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미숫가루를 마시려는데 아저씨의 끈적한 손이 내 허벅지를 더듬었다. 땀에 절은 아저씨의 손이 흉물스러운 장어의 끈적끈적한 점액 같았다. 느물 느물한 아저씨의 눈은 뱀이었다. 한 순간 내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허벅지 위를 지나던 아저씨가 내 팬티에 손을 댈 때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르고는 신발도 신지 않고 도망쳐 나왔다.      


엄마는 그 날밤 늦게 왜 심부름을 하지 않았냐고 나를 나무랐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하는 나에게 엄마는 청심환을 먹이고는 배를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불러줬다. 남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 트라우마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후로 주말에는 영수 아저씨를 피하기 위해 나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는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됐다. 나는 예쁘다,라는 걸. 섬에 살 때도 종종 남자애들에게 고백을 받아봤지만 서울에 와서 확실해졌다. 그리고 예쁘다,라는 게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예쁘지 않은 고통보다 예뻐서 받는 고통이 100배는 낫다. 


20대 초반의 내게 접근해 오는 남자들은 100이면 100 스스로가 반반하게 생겼다고 자신하는 애들뿐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중에 괜찮아 보이는 남자 몇 명과 사귀었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애가 강하고, 자신감 있고, 매너가 좋았다. 둘이 함께 인파 속을 걸으면 느껴지는 주변의 시선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반반한 그들은 예외 없이 올림픽 선수라도 되는 것처럼 스킨십 진도를 빠르게 빼려 했다. 키스를 하고 다음 단계에서 막히면 그들은 화를 냈다. 물론 나도 그들 중 몇몇 과는 함께 자고 싶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화를 내고 돌변하면 내 속의 작은 유리 파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를 더 꼭 닫았다.      


그들에게 내 의지 혹은 신념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내 신념을 지켜준다'거나 '나를 존중해 준다'고 약속하던 그들의 말은 반년이 채 안돼 썩기 시작했다. 가면이 벗겨지고 맨얼굴이 드러났다.

오히려 처음에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는 놈들일수록 반작용은 더 심했다. 그들은 본인의 멋진 얼굴과 몸을 보고도 흥분하지 않고 호응해주지 않는 나를 이상한 년, 혹은 나쁜 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제풀에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대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 내 뱃속의 유리 파편이 다시 떠올랐다. 내 사수 역할을 맡은 30대 후반의 과장 덕분이었다. 그는 아내와 딸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그는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간 자기 딸에 대해 자랑을 하고 다녔다. 팔불출 같은 그의 행동에 사람들은 웃었다. 하지만 딸 자랑은 그의 가면이었다.     


그에게 업무 지도를 받고 2주일쯤 돼갈 무렵 그가 업무 후 간단히 저녁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과장과 친해지는 편이 내 회사생활에도 도움이 될 거라 여겨 그러기로 했다. 간단한 저녁이라는 말과 달리 그가 예약한 식당은 격식 있는 일식집이었다. 그가 "사케 한잔 괜찮지?"라고 묻는데 뱃속이 쏴 했다. 나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는다.      


사케가 몇 잔 돌자 아내와 딸 얘기를 시작하던 그는 어느새 묻지도 않은 자기 부부생활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딸을 낳은 이후 섹스리스 부부가 됐다는 둥, 나와 같이 회사 생활을 하게 돼 업무 의욕이 고취된다는 등 되는대로 지껄였다. 그러더니 넌지시 2차는 근처 호텔로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내게 반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소름이 돋았다. 뱃속의 유리가루가 내장을 휘저으면서 회오리쳤다. 나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한 채 말했다.      


"과장님 많이 취하신 거 같아요.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인사를 하고 빠르게 돌아서 나가려는데 그가 테이블을 넘어 내게 손을 뻗어왔다. 나는 있는 힘껏 그를 밀치고 빠져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울면서 휴대폰으로 엄마의 번호를 불러왔지만 전화를 걸 순 없었다. 아니, 전화를 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과장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업무 지시를 내리고는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나무랐다. 업무시간과 휴식 시간 가릴 것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따로 불렀다. 밥 먹을 때 만이라도 그를 피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핑계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피하자 그는 아예 내가 사는 원룸 주변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몇 시간을 기다렸다며 억지로 나를 식당이나 술집으로 끌고 가 혼자서 술을 마셨다. 내가 술을 거부하면 그는 뭐라 뭐라 주정을 부리다 돌아가곤 했다.      


그의 괴롭힘이 한 달여간 이어지던 때 그가 업무 미팅을 핑계로 나를 점심 자리에 불렀다. 다른 사람이 없는 그와 나 둘만의 점심일지도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실제로 고객사의 한 남자가 나왔다. 그 남자는 20대 후반으로 과장의 입장에서는 ''인 회사의 막내급 사원이었다. 점심 자리에서 과장이 나를 언급하며 성적인 농담을 건네자 그는 능숙하게 대화를 돌렸다. 과장이 민망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의 말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주면서 자연스럽게 업무 얘기로 대화를 이끌었다. 대화를 이끌던 과장의 말이 줄고 그가 대화를 주도하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는 과장에게 질문을 세 개 하면 그다음에는 나에게 화제를 돌리는 식으로 적당히 총량을 배분하며 대화를 이끌었다. 나는 과장에게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그가 내게 질문을 하면 과장스럽지 않게 미소를 띠우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점심을 마치고 그는 과장과 내 명함을 챙겨 넣으며 과장에게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고 내게는 "일은 못해도 막내끼리 친하게 지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부터 그쪽의 막내는 내게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해왔다. 사실 그의 외모는 그동안 만나왔던 남자들과 비교하면 더블보기, 아무리 좋게 봐줘도 보기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과장을 피하기 위한 좋은 구실임은 분명했다.      


그날 이후로 그와 평일 중 하루나 이틀, 주말마다 데이트를 했다. 매주 주말마다 그는 저녁을 먹으며 고백을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실제로 고백을 하지는 않았다. 얼굴에는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라고 씌어 있었지만 실제로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만난 지 한 달째 되던 날에 정말 힘겹게 "처음 봤을 때부터 쭉 호감이 있었습니다. 사귀어 주세요."라고 고백했다. 고백을 하던 그 날에도 그는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나는 그의 그런 바보 같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업무적인 능숙함과 별개로 한 달 동안 데이트를 한 여자와 눈도 맞추지 못하는 바보라서 좋았다.      


회사에는 부러 내 연애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사귀고 한 달이 지나서부터 바보에게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다.

바보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바보였다. 남이 자기 코를 베어가도 웃으며 넘겨줄 것 같은 사람 좋은 미소를 언제나 짓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웃는 경우는 드물었다. 남이 자기 살을 베어 가면 웃으며 넘기지만 뼈를 건드리면 돌변하는 타입이었다. 자기 영역 안에서 인(IN)과 아웃(OUT)이 오싹할 정도로 명확했다. 단단한 벽돌로 자기만의 성을 쌓고 벽 안에 나와 단 몇 명만을 허락했다.      


한 번은 바보가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주는 술자리에 갔었다. 술자리 분위기가 무르익자 바보의 친구 중 한 명이 그룹 밖의 자기 후배를 불렀다. 후배가 합석했다. 적당히 술이 오른 후배가 내게 수작을 부리며 연락처를 묻자 바보의 표정이 순간 돌변했다.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굳어버린 바보의 표정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영수네 아버지나 과장의 표정과는 다른 의미로 무서웠다. 바보는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나와는 별개로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있는 바보가 안쓰러웠다. 교회에 나가면 혹시나 바보가 바깥세상에도 관심을 둘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부탁하면 바보는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교회에 나가는 대가로 나는 바보에게 작은 상을 주기로했다.


바보와 관계를 시작하자 과장의 괴롭힘은 훨씬 더 집요해졌다. 그는 아예 대놓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를 내게 뿜어댔다. 주변에서도 과장과 내 관계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왔다. 과장의 괴롭힘에 지쳐 바보를 만나도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바보에게 과장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바보에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어쩌면 위험하다. 바보가 과장에 대해 알게 되면 더 이상 바보인 채로 있지 않을 것 같았다.      


바보와 사귄 지 1년째 되는 날 과장은 퇴근을 앞둔 내게 아무 의미 없는 페이퍼 워크를 넘겼다. 어렵지는 않지만 완료해도 아무 의미 없는 단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날 안에 마무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날은 야근 후 집에 와서까지도 몇 시간을 더 매달렸다. 바보는 칭얼댔고, 나는 일주일 뒤인 내 생일에 꼭 보자고 바보를 달랬다. 그리고 이쯤이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일에 바보가 다시 한번 "한 번 하자"고 덤벼들면 그와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의미라곤 없었던 싸움을 이제 끝내자. 시원하게 바보와 한 번 하고 나도 새롭게 출발하자.      


단순히 생각하자 어렵던 문제들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쓰레기 같은 과장이 꼴 보기 싫으면 회사를 그만두면 된다. 나는 아직 젊다.     


그리고 생일 당일, 나는 반차를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팀장께 보고도 하기 전에 과장이 나를 막았다. 그리고 그는 예정에 있지도 않던 팀 회식을 소집했다. 과장은 팀장에게는 따로 보고를 올리지 않고 자기 밑의 직원들만 입단속을 시켰다. 빠져나갈 수 없도록 초반부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적 악화와 팀 분위기 갱신을 내세웠지만 단순히 나를 괴롭히기 위한 행동이었다. 초반에는 나를 두둔하던 대리 2명도 나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됐다는 식으로 내게 노골적으로  원망의 시선을 보냈다.      


삼겹살로 시작된 1차는 2차 이자카야를 거쳐 3차인 노래주점까지 이어졌다. 노래주점에서 화장실로 잠깐 피신한 뒤에 위속의 내용물을 게워냈다. 그의 강권에 이미 주량을 초과했다. 혼자서 기다리고 있을 바보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하필 배터리가 방전돼 있었다. 잠깐 바람을 쐬고 지하의 주점으로 들어가자 남자 대리와 여자 대리는 나가고 과장만 있었다. 과장은 대리 두 명은 화장실에 갔다고 말했다. 뱃속이 쏴했다.      


"과장님도 많이 취하셨고, 시간도 늦었으니 저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려는데 등 뒤로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맥주잔을 던진 거였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내 팔을 낚아채 강제로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는 욕 지거를 내뱉으며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항변했다. 과장의 망상 속에서 나는 그의 여자 친구였다. 그가 잘하든 못하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너는 그냥 쓰레기일 뿐이다.      


그는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고는 자기가 잘못했다며 더 이상 잡지 않을 테니 눈앞에 놓인 폭탄주 한 잔만 원샷을 하고 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 쓰레기의 얼굴을 단 1초도 더 보기가 싫어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맥주잔 가득 있는 그 술을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들이켰다.      


눈을 뜨니 침대 위였다. 정신을 차리려는데 내 옆의 남자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과장이었다. 과장은 내 전화기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래가 저릿해 손을 넣어보니 피와 함께 정액이 묻어 나왔다. 뱃속의 유리 조각이 내장을 뚫고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과장은 내 뱃속에 뱀 같은 칼을 쑤셔 넣었다.      


"방금 네 남자 친구한테 전화 왔던데. 너 자고 있길래 내가 대신 받았어"     


소리가 되지 않는 울음을 뱉어내며 나는 바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리는, 음성은 말이 되지 않고 입안을 맴돌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던 바보가 상황을 파악하고 입을 다물었다. 바보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바보는, 벽 밖으로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첫 경험1: https://brunch.co.kr/@lieoflie/6

첫 경험2: https://brunch.co.kr/@lieoflie/83

첫 경험3: https://brunch.co.kr/@lieoflie/98

첫 경험4: https://brunch.co.kr/@lieoflie/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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