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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Jan 06. 2018

첫 경험3

-자기, 거기에 점이 있네. 안녕 점아?     


=응, 어디?      


-자기 거기에 말이야. 정확히는 버섯 머리 쪽에 있어. 뿌리와 기둥 쪽에 있는 건 종종 봤는데 이쪽은 드물거든. 그리고 머리에 점이 있는 남자는 굉장히 잘 한대.     


정말이었다. 내려다본 버섯 머리의 오른편에는 작은 점이 하나 있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그 버섯과 동거동락했지만 머리 쪽에 점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원래부터 있었는데 내가 아직껏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그 점이 생긴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버섯 머리 위의 '점 군'에게 인사를 하고는 입을 맞춘 뒤에 버섯의 머리 부분을 입으로 덥석 감싸 안았다. 동시에 그녀의 '혀 양'이 '점 군' 주위를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인사를 나누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그녀의 한 쪽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손에 걸리는 귀걸이가 없어서 좋았다.     


그녀와 나는 사실 몇 시간 전에 처음 만났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이 지구에 그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몰랐던 시간의 길이와 정확히 동일한 시간만큼 내 버섯의 머리에 '점 군'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해 알고 있는 타인의 존재.     


신기했다.      


처음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눈 지 반나절도 안 된 그녀는 27년을 나로 살아온 내가 나에 대해 모르는 사실 하나를 알고 있었다. 내 거기에는 점 군이 조용하고 인내심 있게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 주기를 바라며 20년 이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에 앞서 다른 누군가도 내 점 군의 존재를 알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점 군에게 친히 인사를 건네고 점 군의 존재를 내게 알려준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뿌리와 기둥 쪽에 점을 가지고 있는 남자를 만났다 할지라도 내게 했던 것처럼 "뿌리(기둥)에 점이 있는 남자는 굉장히 잘 한대."하고 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과 상관없이 그녀는 충분히 예뻤고, 세심했으며,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칭찬에 우쭐해진 점 군이 두 배 세 배로 마구마구 커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예쁜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예쁘다", "너 정말로 예뻐"라고 두 번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나조차도 몰랐던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그녀는 정말로 예뻤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제 내가 그녀도 몰랐던 그녀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녀를 아직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딘가로 데려다주고 싶었다. 내가 앞으로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될지라도 '절대로 그녀를 잊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을 하나 남겨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 몸에 숨겨진 미지의 장소를 발견하려는 탐험가처럼 나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녀에게 받은 것을 갚아 나갔다. 그녀는 가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 머무를 때 터지듯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그럼 그 안에 숨겨진 가능성의 보석을 찾아 그곳을 천천히 세심하게 탐구했다. 그녀의 체온이 오르고 그녀의 몸 속을 흐르는 붉은 강의 흐름이 거칠어 졌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나와 내 친구인 점 군을 그녀의 안으로 이끌었다.     

=이제 간다.      


나는 그녀의 양손에 깍지를 끼고 세게 잡았다. 점 군이 타고 있는 버섯 열차가 점점 더 빠르고 힘차게 터널을 왕복하기 시작했다. 터널은 이제 곧 소나기가 내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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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1: https://brunch.co.kr/@lieoflie/6

첫 경험2: https://brunch.co.kr/@lieoflie/83

첫 경험4: https://brunch.co.kr/@lieoflie/100

첫 경험4-1: https://brunch.co.kr/@lieofli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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