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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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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Jul 24. 2016

첫 경험


남자가 묻는다. 

"이름이 뭐야."

여자가 답한다.

"소리."

남자가 묻는 것은 여자의 이름이 아니다. 여자도 이름을 말하지는 않는다. 남자와 여자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묻지 않았고 여자도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다시 남자. 

"솔이?" 

"아니, 그냥 소리야."

"몇 살?"

"몇 살처럼 보여?"

"음... 스물셋, 넷."

여자는 남자의 '음'이 뜻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린다. 하지만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 않고 웃으며 살짝 양 손바닥을 위로 올리는 시늉을 한다. 조금 더 숫자를 높이라는 말이다. 남자는 숫자를 올린다. 어디까지나 실제로 보이는 그녀의 나이보다 낮은 한도 안에서. 

"그럼 한 스물다섯이나 여섯 쯤."

“…”

여자는 말이 없고 남자가 다시 얘기한다. 

"뭐 아무려면 어때.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여자는 남자에게 음료수를 권하고 남자는 뭐가 있는지 되묻는다. 사이다, 주스, 옥수수수염차 등등. 남자는 주스를 한 잔 청하고 여자는 종이컵에 주스를 따라 남자에게 건넨다. 

"담배 펴?"

"아니, 하지만 담배 피워도 전혀 상관없어. 담배 연기 맡는 거 싫어하지 않으니까." 

남자는 담배 연기를 맡으며 약간의 긴장을 풀고 싶었다. 또 담배를 피우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가 담배를 피우지 않자 조금 실망한다. 그 뒤 여자와 남자는 서로 형식적인 대화를 5분 정도 지속한다. 한 시간 뒤 남자가 이방을 나서면 담배 연기처럼 금세 사라져버리고 말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다시 여자가 말한다. 

침대에 누워서 잠깐 기다려.  


남자는 이미 여자와의 한 시간을 위한 값을 치렀다. 


이제 50분이 남았다. 남자는 배를 침대의 바닥에 대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누워있다. 여자가 다가오고 남자는 기다린다. 남자는 잠시 후에 고양이를 생각한다. 여자의 감촉이 고양이 같다.


고양이는 남자의 등에 올라가 자신의 혀로 남자를 간지럽힌다. 남자의 어깨, 등, 허리를 따라 고양이의 침이 묻는다. 그리고 곧 증발한다. 고양이는 조금 더 짓궂게 남자와 장난을 치고 싶어 한다. 남자의 엉덩이와 은밀한 부분에 혀를 집어넣는다. 남자는 조금 놀라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남자는 이 부분에서 적당한 소리를 내어 여자에게 자신이 어떤지를 알려주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이 나을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중간에 여자에게 꾸중을 듣는다. 오빠처럼 그게 휘고 딱딱할 경우엔 조금 더 부드럽게 하지 않으면 안 돼. 여자들이 아파한다고. 남자는 과연 여자가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잠시 생각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가고 전화벨이 울린다. 남자와 여자는 둘의 장난을 끝낸다. 장난을 마치고 남자와 여자는 둘이 함께 깨끗하게 장난의 흔적들을 지운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턴다.      


남자가 떠나 기 전 여자는 문 앞에서 남자를 막아서고 자신의 두 팔을 벌린다. 남자는 여자를 가볍게 안아준다. 


따뜻하다. 남자는 행위의 한가운데 느꼈던 그녀의 감촉보다 가볍게 그를 안아주는 여자의 가슴이 훨씬 더 부드럽고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말한다.  


난 소리라고 해.  


남자는 잠시 후에 조금 슬퍼진다.      


(난 소리라고 해. 난 소리라고 해. 난 소리야. 나중에 다시 방문하게 되면 꼭 나를 찾아줘. 소리를 말이야.)


남자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온다.      


이름은 아니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여자가 (가짜) 이름을 말한 순간 그는 손님이 됐고, 잠깐의 따뜻함마저 진짜가 아니게 됐다.       



첫 경험2: https://brunch.co.kr/@lieoflie/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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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4: https://brunch.co.kr/@lieoflie/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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