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빵순이의 겨울빵 이야기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성장의 기회이다.
(앤디 그로브)
호떡이야기가 너무 거창한가? 하지만 성공 뒤의 달콤한 맛, 나에겐 그게 호떡이다. 때는 바야흐로, 4월 어느 날 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뿌듯한 호떡을 먹었다.
4월. 올해 지역 아쿠아리움으로 현장학습이 잡혔다. 한 반에 15명, 총 3반이라 전세버스 두 개로 나눠서 간단다. 일단 참석 여부에 동그라미. 겨우 못 걷는 한 달 반에서 벗어나(에피소드- 산다는 것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아 https://brunch.co.kr/@life-gardener/27 참조), 씩씩한 등교를 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다.
자폐를 가진 어린이에겐 일반적으로 당연한 모든 것이 허들이 된다. 난해한 것은 어떤 게 허들이 될지는 애들마다 다르단 것. 그중, 현장체험학습은 최고난도라 할 수 있다. 첫째, 낯선 버스를 타고 낯선 곳을 간다(낯설면 공간에 대한 적응을 새로 해야 한다). 둘째, 애들이 동시다발로 신이 난다.(다중자극에 대한 정보처리가 힘들다). 셋째, 엄마가 평소와 다르다(먼가 루틴이 다르다!).
그날도 그랬다. 작은 학교라서 전 학년이 같은 날 현장체험학습이라 동시에 모여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교하자마자 어마어마한 사운드가 공간을 메우고 있었고,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곧 버스 출발 시간인데, 절대 타지 않으려 했다. 담임 선생님은 난처하신 표정이고 아이 담당을 맡으신 특수실무사 선생님도 당황하셨다. 도움반 선생님은 6학년 형아를 지원하시느라 이미 8시 전에 출발하신 상황.
“제가 정원이(가명) 데리고 갈게요. 버스에서 울면 소풍 가는 일이 모두 힘들 거 같아요. 시간 맞춰 하차 장소에 데려가겠습니다. 두 분은 그때 봬요! “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200만 도시를 대각선으로 횡단하는 50분 길을 갈 생각을 했다니. 그래도 모두가 즐거운 소풍을 시작부터 힘들게 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무엇보다도 아이도 선생님도 모두 즐거운 소풍이 되었으면 좋겠단 마음이 컸다. 베테랑 운전사라면 수월할지도 모를 제안이었겠지만, 5년째 정해진 길만 가고 초보딱지도 자필로 붙여 다니는 나에겐 정말 큰 용기였다. 사실 아이가 3살 때 시작한 운전은 5년 내내 같은 자리를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발달센터와 학교, 병원만 조심스럽게 돌기만 했었다. 난생 처음 미리 “모의 주행” 해보지 않고, 목적지를 입력했다. “보물산 아쿠아리움”.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클래식 FM 가정음악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아이와 출발했다.
10시 10분 전.
난 아이와 무사히 도착했다.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차선변경도 실수했지만 “딱 맞게” 도착했다. (얼마나 헤맸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아이도 그사이 안정됐다. 같은 반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줄을 서고 있었다. 늦지 않아 다행이네. 아이랑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엄마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릴게. 엄마차 타고 가자.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좋아하는 물고기 많이 많이 보고와!“
반짝이는 눈빛으로 아이는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아이를 보내고 그제사 긴장이 풀렸는지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봄날 오전의 쌀쌀함을 느꼈다. 평소 등교시킬 때 제법 단정하게 입고 등교시켰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도시락 준비하느라고 부리나케 오느라 반팔티셔츠에 체육복 차림에 달랑 지갑하나, 차키만 들고 있었다. 아, 머리도 안 감았지. 이런 몰골로 오다니.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여하튼 기다리기로 약속했으니, 아침 겸 점심을 먹어볼까? 나는 내려와서 보물산의 유명한 씨앗호떡집을 보았다. 2층은 보리밥집이네. 그래, 먹자. 얼마만의 외식이냐. 그날 먹은 밥은 참 맛있었다. 후식으로 달콤한 호떡을 먹으며 다시 차 근처로 올라왔다. 그리고 뒤에 초보딱지가 안 붙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 어제 남편이 차를 썼구나. 맙소사. 오늘 딱지도 없이 운전한 거야?
그 뒤로 4년이나 붙이고 다녔던 초보딱지를 떼고 운전한다. 모르는 곳도 용기를 내서 가본다. 아이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운전도 해본다. 그 뒤로 조금 더 자유로워졌고 또 용감해졌다.
이제 호떡의 계절이다.
도전할 거리가 있으면, 그날의 달콤함을 떠올려본다. 이제 딱지를 뗀 초보운전사는 자유롭게 성공의 맛을 되새기며, 시동을 건다. 부릉.
에필로그.
1. 호떡 전에 먹은 7,000원짜리 1인 보리밥상도 꿀맛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은 호떡도 꿀맛이었지요.
2. 따로 가게 배려 해주신 담임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이가 활짝 웃으면서 돌아왔어요^^
3. 정원(가명)은 "마이라떼" 작가님이 지어주신 애칭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독한 빵순이의 빵 이야기]는 공동매거진 '이토록 친밀한 빵'에서 연재되는 인생정원사의 이야기입니다.
1. 단팥빵, 나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