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본어는 우리 세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영화 대사이다.1999년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이 설원위에서 죽은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며외치던 유명한장면에서 나왔다. 영화의 인기만큼이나그 당시 패러디도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으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그 말이인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말을 들을 때마다 혼자 생뚱맞게배시시 웃고는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말과 함께 따라오는 그때그 시절의 추억 때문이다.
대학교 때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곧장 가거나 공부할 생각은 전혀 하지않고 삼삼오오 모여서 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대패삼겹살집, 감자탕집, 호프집 등을 전전했었다. 어디를 갈지는 오직 그날의 주머니 사정에 달려있었고 술사 먹을 돈이 부족한 날은 맥주 몇 병만 사 가지고 친구의 자췻집을 털기도 했었다.
내가 더 어린아이였을 때우리 아빠는한밤중에 종종 술안주로 먹다 남긴 치킨과 닭똥집싸들고오셔서자고 있던 나와 동생들의어깨를 흔들며 잠을 깨우셨다. 그럴 때마다 우린 눈도 제대로 못 뜬채아빠의 술냄새 풀풀 풍기는 뽀뽀를 받으며 바삭함이 간신히 매달린 치킨과쫄깃함을 넘어 고무보다 질긴 닭똥집을 맛있게 먹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들은 엉뚱하게도 나도 커서 술을 잘 마실 것이라는 믿음, 아니 착각을 주었고 마침내 스무살이 되자 나는 내가 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숱한 밤을 비틀거리며 친구들에게 끌려다녔다.
그날도 그랬다.몹시 추운 겨울, 이미 며칠째 눈이 내려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있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없이 우리는 다같이 호프집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이 세상에 우리만 존재하는 듯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시끄럽게 웃고 떠들며놀다보니 밤이 점점 깊어갔다. 어느새 자정이 넘어우리는 흥건히 취한 상태로 호프집을 나왔다. 밖에는 다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소복소복 내리는 눈과 은은하게 비치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걸을 때마다 들리는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는 기분 좋은 흥분을 일으켰다.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아직 그 누구의 발자국도 닿지 않은 새하얗게눈 덮인 공터가보였다. 그 공터를 본 순간 나는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치 이와이 슌지의 페르소나가 된 양 갑자기 공터로 달려가 허공에 대고 소리를 쳤다.
"오겡끼 데쓰까!"
뒤에서 친구들의 웃음이 터졌다.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나는 더욱 고취되어무릎을 꿇고 한번 더 소리쳤다.
"와타시와 겡끼데쓰!(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친구들은 계속웃으며 하나둘씩 내게다가왔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릴 적 엄마가 푹 꺼진 이불 솜틀기를 위해 이불 홑청과 안감을 다 뜯어내면 드러났던 새하얀 목화솜 같은 구름이산산이 찢어져 작은솜 조각이 된듯 나풀거리며내얼굴에 떨어졌다. 작은 구름 조각들은피부에 닿자마자 술로 인한 열기로금세 녹아내렸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갑자기 한 친구가 눈뭉치를 만들어 다른 친구에게 던졌다. 우리는 그렇게 땀이나도록 한참 동안 눈싸움했다.
웃고, 울고, 떠들고, 슬퍼하고, 통곡하고, 그러다 다시 웃던 내 감정에 솔직했던 나날들이 오늘따라 참 아련하다.
사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참 애매한 위치이다. 정신과 감성은 여전히 철부지인데갑자기 주변으로부터성인으로인정받는다.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 제몫을 하는 일원이 되기위한 준비를 해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미성숙한 자아와 성숙한 의무가 서로 충돌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남들이 다 얘기하는 사춘기 시절보다 대학교 때 더 많은 방황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객기와 방황으로 점철되었던시절을 다시 돌아보면그 시간이 단지 쓸데없는 낭비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젊고 인생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였기 때문에충분히 고민하고 정처 없이 헤맬 시간이 필요했으며 그때는 의미 없이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던 나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까지 살면서 몇번이나 넘어지려고 할 때마다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나는 그렇게 힘들고 팍팍한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 방황의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은 여전히 내곁에 남아 언제든지 추억을 소환해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