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지도 않지만, 찾아서 먹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제 곧 돌이 되어가는 내 아들은 과일을 아주 좋아한다.
조그마한 입으로 과일을 어찌나 즐겨 먹는지.
우리 집에서 과일은 내 동생과 아빠의 전유물이었다.
아빠는 항상 늦은 저녁 과일을 찾았다.
엄마에게 결코 과일을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뭐 먹을 거 없어?"
귀신 같이 알아들은 엄마는 과일을 내오곤 했다.
그럼 나는 몇 개 끄적이다 물러 났다.
지금 우리 집에서는 중학교 입학한 딸과 이제 곧 돌인 아들.
이 둘은 과일을 아주 좋아한다.
둘 다 할아버지 식성을 가져왔나 보다.
"입만 더럽게 고급이네"
그 덕에 집에 과일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빠! 아빠 손주들 때문에 아빠 아들 허리 휘어요."
사실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저 조그마한 손으로 집어 몇 개 없는 이로 먹는 모습.
아빠도 같이 먹자며 내미는 중학생 딸.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진다.
"아빠는 과일 별로 안 좋아해."
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넘겨준다.
좋아하지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먹는 모습은 보기 좋다.
문득 내가 딸아이 나이쯤이었을 때 생각이 났다.
양념갈비를 사주겠다며 동생과 나를 고깃집으로 나오라 했던 아빠.
다시 전화가 와서 늦을 거 같으니 먼저 먹고 있으라는 말.
우리 가족 단골집이었다.
나와 동생을 아시는 사장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 주셨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한참 뒤 아빠가 왔고 계산대에 섰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야 너희 둘이서 진짜 10인분 먹은 거 맞아?"
"응..."
"소를 키우면 키우지 너희 못 키우겠다."
나와 5살 어린 동생 둘이서 고기 10인분과 된장에 밥까지 먹었다.
그날 이후 아빠는 제법 오랫동안 그날 일을 꺼냈다.
우리 형제를 놀리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도 놀랍기도 했고, 벌써 이렇게 컸나 싶은 대견함도 있었던 거 아닐까?
워낙 표현력이 좋은 우리 아빠는
"이 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소다. 소"
이렇게 표현했지만, 한 번도 인상 쓰거나 먹는 것에 인색했던 기억은 없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을 때도 먹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사 오던 아빠였다.
"아빠! 햄버거 먹고 싶어!"라고 말을 하면,
우리 아빠는 롯데리아 데리버거를 15개 ~ 20개를 사 왔다.
그래서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다른 햄버거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 내 새끼들 잘 먹는 거 보면 나 기분이 엄청 좋아.
아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
근데 아빠 동생이랑 나랑 엄청 많이 먹는 이유는 아빠 닮아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