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에는 목표가 없다.
"누구든지 한 가지의 능력은 가지고 있다.
그 하나의 능력은 오직 그만의 것이다.
그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충분히 살려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한 가지 능력,
즉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틀림없는 사실은, 어떠한 경우라도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고 과감하게 그리고 꾸준히 도전해 나가면
언젠가는 자신만이 가진 한 가지 능력을 반드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_프리드리히 니체
내가 정한 목표는 때론 나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내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겠다는 의지와 행동은, 때로는 글에 한계를 그어준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글은 아무리 날 것의 생각을 전하려고 노력하더라도 최소한의 필터링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좋은 행동을 하려 노력하지만, 아직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기에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이야기를 남기려고 애쓴다. 이 필터링 과정이 없다면, 나의 생각과 글은 오랜 시간 나를 장악했던 습관이 있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며칠 전 귀인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책을 읽을 때 멈칫하게 만드는 글을 보면, 나중에 다시 읽으려고 하지 말고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 보세요.
책을 다 읽고 다시 돌아와서 그 부분을 다시 읽었을 때는 이미 늦어요.
한 번 읽었던 글의 처음 그 감정과 그 느낌은 100% 다시 불러올 수 없어요.
처음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에 집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밍자' 강민규 작가님의 <오늘 당신의 삶에 대해 니체가 물었다>를 읽다가 본문의 첫 페이지에 멈춰있다. 그리고 니체의 위 문장을 몇 번이고 천천히 읽으며, 한 단어, 한 글자를 곱씹으며 음미해 본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있다.
막연하지만 조금은 당연한 내용의 글인데,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눈으로 짚어가기를 반복하면, 마치 글자들이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느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을 건다기보다, 뇌를 자극하는 느낌이다. 오른쪽 측두엽(머리 오른쪽 바깥 부분, 단어가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다.)이 찌릿하지는 않지만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평소 습관대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면 익히 들어서 아는 이야기, 뻔한 이야기로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니 글자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대단히 강렬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벌리는데 소리로 이어지지 못하는 모습이다.
올해 목표였던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어쩌면 소중한 문장들이 나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한 한계였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연습'을 위한 나의 블로그 글쓰기 습관 역시 공개된 글이라는 한계 속에서 나의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생각은 쉽게 담기지 못하게 했다.
글을 쓰는 것은 그저 생각을 담는 것이지, 글을 잘 쓰기 위한 글이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깊어지면 자연히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을 텐데,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목표가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생각을 펼쳐놓지 못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알려주는 건 정답이 아니다. 니체의 문장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무언가 가르쳐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말을 걸어 나의 생각을 자극할 뿐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사색에는 목표가 없다. 우주의 팽창에는 한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