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어 책 한 권이라도 냈으면 좋았겠지만
2022년 시점에 쓴 글입니다.
(관련 글 링크)
2년 전, 팀장님께 '저 35시간 근무제로 변경하고 싶습니다'란 폭탄선언을 한 과정에 대해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 제안은 반려되었지만 시도를 해봤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었다. 대신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것으로 근무제를 바꿔서 최대한 개인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결국 이런 시도가 조삼모사라고 했던 게 현실화되었다. 7월 한 달을 나를 갈아 넣으며(?) 힘들게 8시에 출근하면서 하루를 길게 살려고 했다. 날씨도 더운 데다 면역력이 부쩍 떨어졌는지 8월부터 골골대기 시작했다. 운동도 안 하고 잠은 못 자고 아니 덜 자면서 생활했으니 나를 너무 채찍질한 것 같다.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된다. 나는 한동안 8시 출근제를 유지했지만 이도저도 안 되는 걸 보면서 차라리 출근이라도 마음 편하게 하자 싶어서 8시 30분으로 출근시간을 30분 늦추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 2022년을 맞았다.
그때는 정식 8시 출근이었기 때문에 8시까지 꼭 도착해야 한다는, 늦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출근시간을 맞추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덕에 남들보다 일찍 5시에 퇴근할 수 있었고,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7시 정도 되기 때문에 저녁 시간이 매우 많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피곤했다. 아침부터 너무 일찍 일어난 데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왔으니 아무리 시간이 남아도 온전히 내 시간같이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저녁까지 먹고 나면 졸음이 몰려와서 헤롱헤롱한 상태였다.
현재는 근무시간대를 8:30-5:30으로 변경했다. 그래서 출근시간 전에 일찍 오는 건 내 자유다. 그러니까 나는 8시 30분 전에만 늦지 않게 오면 된다. 처음엔 강박적으로 '꼭 8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해서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을 최대로 늘려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압박을 주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조금이라도 일찍 출근해서 내 시간을 만들려던 마음과 의지조차도 식는 걸 느꼈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먹고 가기로 했다. 8시는 내 마음속에서 정한 목표니까 8시까지 출근하면 출근 전 시간 30분과 팀장님이 공식적으로 허락한 출근 후 30분까지 1시간이 확보되는 거다. 그런데 만약 내가 조금 늦으면 내가 확보하는 시간이 50분, 40분으로 점점 줄어드는 것, 단지 그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2월의 첫날은 지났지만 원래 매월 초 3일 정도는 마감 때문에 야근하고 바쁘고 피곤하다. 그래서 그다음 주 월요일인 이번 주부터 8시 출근을 시작했다. 그 시간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이직을 위해 업무 관련된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고 남들에게 설명하고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이해가 필요해서 회계 관련 책을 하나 정해서 반복적으로 읽기를 목표로 정했는데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한 책이 정작 주말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그동안 계속 미뤄두었던 작년에 들었던 엑셀 인강 복습을 시작했다. SQL 자격증 공부를 하니까 안 들리던 단어가 들리고 들렸던 단어도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가 돼서 들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월요일 저녁에 책을 받아서 다음날부터는 원래 계획했던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확실히 나는 아침에 머리가 맑고 잘 돌아간다.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서 저녁시간이 긴 것도 좋지만 문제는 저녁 먹고 나면 지쳐서 쭉 뻗어버린다. 그런데 아침에 이삼십 분 일찍 나와서 책 하나를 보거나 인강 하나를 듣는 건데도 이 시간대에는 정신도 맑고 기분도 좋고 집중이 훨씬 잘 된다.
만약 같은 행위를 저녁에 한다면 아침 시간의 효율과 명백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즉 아침의 1시간과 저녁의 1시간의 밀도가 다르다는 거다. 수학적으로는 이 1시간이 같을지 몰라도 내가 체감하는 건 아침시간이 거의 두 배 정도 긴 느낌이다. 그에 반해 저녁시간은 같은 1시간이어도 0.5시간 정도의 가치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35시간제를 하고 싶다고 선언한 후 결국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행동에 변주를 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이력서도 조금 수정했다. 더 괜찮아진 것 같다. 나는 나답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지. 그동안은 퇴근하고 뭐든 다 하려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저녁을 꼭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외국어공부 이것저것을 1시간가량 하고 나면 벌써 잘 시간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읽어야 하고 유튜브도 봐야 하는데 말이지. 그래서 맨날 해야 하는 일들이 밀렸다.
아침에 조금 일찍 출근해서 그동안 저녁에 하기로 해놓고 미뤄뒀던 일들을 조금씩 시작했다. 미뤄온 것들에 대해 그동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는데 그 무게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아침에 단지 조금 일찍 출근하는 것뿐인데, 무얼 하든 머리가 맑고 집중이 잘돼서 기분이 좋다.
한때 내근직 직원들 사이에서 8시 출근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거의 모든 부서마다 한 명씩은 일찍 출근해 자리에 앉아있었다. 처음에 내가 8시 출근을 시작했을 땐 나랑 다른 부서 사람 한 명 정도라 사무실이 조용해서 좋았는데 그 뒤로 부서마다 한두 명씩 늘어가지고 별로였다. 지금은 그때 일찍 나오던 사람들 중에 퇴사했거나 재택근무도 늘어나다 보니 아침에 사무실에 와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용하니 좋다.
실행하고,
변화를 일으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