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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랑 Oct 15. 2021

남극에 있는 빙하와 같은 우리여라

타인을 쉽게 비난하고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예전에 어디선가 누군가의 고백을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오랜만에 기차에 올라 창 밖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었다. 창 밖의 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수한 영감이 떠오르던 그곳은 캐나다의 어딘가였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창 영감에 취해 글 쓰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들의 우당탕 뛰어다니는 소음에 양 미간이 찌푸러졌다. 작은 남자아이,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큰 여자 아이, 두 아이들은 사람들이 가득한 기차 안을 자신들의 놀이터인 듯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이 불쾌한 상황에 주변부터 둘러보았다. 누가 도대체 저 말썽꾸러기들의 보호자인지. 두 눈을 크게 뜨고 한참을 둘러본 끝에, 기차 끝에 앉은 채 허공을 응시하는 듯 멍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범인을 발견했다. 멍 때리는 그를 찾은 순간 더 화가 치밀어 오른 그녀는 기차를 구원하는 정의의 사도라도 된 듯 망설일 것도 없이 인상을 팍 쓰며 그에게 다가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아이들 좀 주의시키라고 말했다. 그러자 멍 때리고 있던 그 남자가 슬픔이 잠긴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정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했네요. 사실 지금 아내의 장례를 마치고 막 올라가던 길입니다. 며칠 내내 아내를 떠나보내느라 정신이 없어서,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는데...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


힘없는 목소리 었지만 예의 바르고 침착한 그의 대답을 듣자마자 그녀는 한없이 부끄러웠단다. 민망한 마음에 황급히 자리로 돌아와 내내 쓰던 글을 멈추고, 누군가를 쉽게 비난하고 판단했던 자신의 오만함을 뒤돌아보았다고 한다.


( 글을 참고하기 위해 찾아봤으나, 어디에서 읽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아 희미한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음이 울컥하고 부끄러웠다. 나 또한 무수히 이러지 않았을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재판관이 되었을까.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너희가 남을 판단하는 것만큼 너희도 판단을 받을 것이며 남을 저울질하는 것만큼 너희도 저울질당할 것이다." (마 7:1-2)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죄인으로 단정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죄인 취급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눅 6:37)


기독교인인 나에게는 아주 익숙한 구절이다. 하지만, 이 구절을 처음 제대로 보았을 중학교 무렵인가. 인간이 누군가를 비판하지 않을 순 있는 건지 의심부터 되었다.


어떤 이들은 사람에 대한 판단이 인간의 소프트웨어에 기본적으로 탑재된 요소라고 말한다. 또 우리는 어릴 때부터 비판적인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 배운다. 나 역시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의미의 비판적인 사고는 개인과 사회의 발전과 유익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현상이나 사물이 아닌,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다른 얘기가 된다. 우리는 무슨 기준과 논리를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할 것인가.


나는 부모님으로 인해 남들보다 조금  튀는 외모를 가졌다. 요새는 성형이 흔한 일이지만, 성형이 흔하지 않던 시기에 이목구비 뚜렷한 얼굴은 남들에게 오해 사고 쉽게 판단받기  좋았다. 김태희가 나오기 ,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 특히 미인을 백치미라는 프레임을 씌어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학기가 시작된  얼마  되었을 , 수업 시간   선생님이   집어 백치미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성적이 좋더라며. 아이들 앞에서 처음 크게 말했을 ,  그때 백치미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과연 기뻐해야 했던 걸까. 백치미가 아니라고 모두 앞에서 말해줘서. 사람들은 극히 작은 나의 일부를 보고  아는  판단하고 말하는 것을  쉽게 했다.


예쁘다는 말과 함께 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참 많았다. 온실 속의 화초, 공주같다. 공주병같다. 백치미. 차가울 것 같다. 말이 없을 것 같다.싸가지 없을 것 같다. 말 걸면 대답 안 해줄 것 같다. 성형한 거 아냐? 왜인지 처음 보는 몇몇 사람에겐 혼혈이냐는 질문도 받았었다. 나와 몇 마디 나누어보면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로 화기애애하게 끝났지만, 나에겐 몇 번을 겪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이미지만 보고 평가받는 쉽고 가벼운 언어들이었다. 사람들은 첫인상이 남들보다 조금 튀는 나에게 칭찬도 많이 했고 이유 없이 날 좋아해 주고 과분한 관심을 가져 주기도 했지만, 내가 열등감이 없고 상처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내 감정과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와 편견도 참 많았고, 알 수 없는 기준과 논리로 나에 대한 판단을 쉽게 하기도 했다. 뒤에서 하든, 앞에서 하든. 그것들은 날 참 외롭게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아빠께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었다. 하던 사업을 그만두고 모든 짐을 줄여 작은 집으로 이사 갔던 시기, 전학 간 학교에서 또한 그랬다. 난 평범한 아이인데, 남들에겐 내 모습이 평범치 않았다보다. 튀는 새로운 아이의 등장에 학교의 튀는 친구들과 노는 친구들이 이유 없이 날 견제하기 시작했다. 전학 전 학교에선 난 정말 인기 많은 학생이었는데, 전학 간 학교에서는 처음부터 완전 찍혀버렸다. 질이 안 좋은 노는 아이들이 접근했고 같이 친하게 지내지 않자, 출처를 알 수 없는 나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그래 가만히만 있어도 가십이 만들어지는 가십걸이 바로 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꽤 무던하고 남들의 관심에 큰 관심이 없는터라, 그렇게 많은 가십이 있던 것 조차 10년이 지나 동창을 통해 알았지만... 그 시절 내가 알던 가십만 해도 우리 아빠가 어디 회사 사장이다. ( 아빠 사업 갑자기 다 정리해서 빚만 남았었는데? ) 우리 집에 뭐가 있다더라. ( 오랜 기간 공부하셔야 해서 좁은 집에 들어갈 곳이 없어 짐이란 짐은 다 팔고, 줄이고 이사왔는데?) 쟤네 고모가 화가라 그리기 숙제를 대신 그려준다더라. (고모를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하고 고모 직업이 화가인적이 있었던가..) 미국에서 살다왔다더라. (미국땅은 밟아본 적도 없었는데..) 이런 류의 가십 대부분은 어렸을 때 엄마가 교육을 잘 시켜놓은 탓에 영어를 곧 잘했고, 그림에 소질이 있었으며, 아빠가 사업을 할 시기엔 집안 형편이 괜찮았어서 악기를 여러개 다루고.. 뭐 그런 것과 내 이미지가 합쳐져서 만들어 진 것 같았다. 루머였는데. 내게 대놓고 물어보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그런 무성한 소문은 날 참 외롭게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나의 겉모습만 보고 이면이나 그 밑에 진짜 어떠한 것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냥 소문을 얘기하는 것, 그것을 부풀리는 것.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는 것이 하나의 게임처럼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외롭던 그 시기. 난 성경에서 저 구절이 참 와닿았다.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내가 판단을 많이 받아서인지. 외모로 하는 판단이 참 우습고 가벼우며, 어떠한 기준도 논리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은, 받는 이에겐 무방비 상태로 화살을 맞는 것과 같다.

나부터 판단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쉽진 않았다. 나에겐 코앞과 껍데기만 볼 줄 아는 몹쓸 눈이 있고, 개인의 경험과 환경 등으로 갖게 된 편협한 가치관이 있고 나를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알량한 지식이 있었기에.


그래서 그냥 그 시절부터 타인에 대한 말을 멈추기로 작정했다. 절대 쉽게 비난하고 판단하지 말고 혹여나 그렇게 느껴지더라도 입 밖으로 꺼내지말자. 나부터 입이 아닌 삶을 통해 보여주도록 하자. 말을 멈추면 생각이 멈추고, 생각을 멈추면 마음도 그렇게 따라가겠지. 그러면 언젠간 그런 말이 자동으로 안 나오겠지.

결과는 정말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20대 중반까지 힘들게 지켜오던 이 어렵게 만든 습관은 우습게도 여러가지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완전 무너져버렸다. 마음의 상처를 잘 관리하지 못했고, 그것들은 입술로 독이 되어 올라왔다. 이 삶의 규칙을 어긴 어느 날의 한번이 어느 덧 백번, 천번 그리고 삶이 되어가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쉬운 판단은 다른 타인에 대한 여러가지 판단으로 이어졌다. 난 그렇게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아하던 나를 쉽게 판단하던 이들, 내 빙하의 일부를 보고 그 속을 섣부르게 판단하던, 재미없고 깊이없는 입이 앞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신물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어느 날이었다. 삶의 과도기. 어쩌다 우연히 만난 동생이 내 기준에서 듣기 한심한 소리를 길게 하길래 마음으로 평가하고 판단하고 비난하며 듣다 듣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한소리를 했다. 하지만 내 저의를 기가 막히게 알아듣곤 그 친구가 똑 부러지게 나한테 볼멘 소리를 했다.


" 언니. 언니 말만 맞는 건 아니잖아요. 치."


나는 그날 그 동생의 말이 사실 마음에 깊이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그냥 무시해버렸다. 난 그 동생의 행동에 절대 공감하지 못했고, 안할거고, 여전히 판단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고하자면 나는 내 행동이,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지점에 다다른 것 같았다. 내 생각과 마음이 어느순간 사람들을 판단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내 안에 사람에 대한 용납과 사랑의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나와 다른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도 점점 메말라갔다고 느꼈다. 난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했고, 점점 행복하지 않았다.


IMF가 터져 서울역, 용산역 근방에 많은 사람이 텐트를 치고, 돗자리를 피고 살았던 그 시절. 그분들의 필요를 보살펴주던 엄마, 아빠를 따라 노숙자분들을 찾아뵙던 기억이 있다. 편견 많고 싫은 것이 많던 초등학교 고학년, 내 눈에 들어오던 부모님의 행동이 유난히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아무렇지 않게 텐트를 들어가고, 신발을 벗고 돗자리 위에 올라서고, 그 손을 잡고 사람들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던 그 모습이. 내 눈에 더러워보이고, 난 갈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을 아주 아무렇지 않게. 눈빛 한번 흔들리지 않고 망설임 한번 없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내 마음의 벽이 하나씩 허물어졌다.


부모님은 나에게 그 뒤로도 그곳에 가는 이유와 그분들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해명도 하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에게 알려주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던 분, 어느 학교를 나오신 분, 이러한 이유로 집을 잃은 분. 저러한 이유로 가족을 잃은 분. 우리와 다른 분들이 아닌 우리같은 분들. 나와 같은 분들.


음악을 좋아하던 나에게, 그 분들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눈과 온 몸 그리고 영혼마저 술에 찌든 듯했던, 술을 머금고 있는 솜뭉치같았던 곱상한 생김새지만 자신을 오랜 기간 돌보지 못한 흔적이 구석 구석 묻어있던 우리 엄마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분. 혼자 계시는 터에 유독 그분에게 시선이 갔는데, 어느날, 그 분이 피아노 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저기 저 낡은 피아노가 저런 소리가 났었나 싶은 그런 소리가 났다. 그 분이 피아노를 치자 그 분을 휘감고 있던 고약한 술냄새가 사라지고,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주변이 그 분의 음악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것 같았다. 그냥 음악 그 자체 같았다. 나중에 듣기로는 그 분은 명문대를 나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까지 한 적이 있는 유망한 피아니스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정폭력과 여러가지 이유로 알콜 중독이 되셨고, 그 뒤로 가족에게 버림받아 노숙자까지 되었다고 했다. 마음이 저릿했다. 그 분에게서 나는 알콜향이 마치 그 분의 독하고 지독히도 쓴 고난의 시간이 남긴 잔향 같았다. 내가 그 분을 길거리에서 보고 지나쳤다면 난 그 분에게 나는 진짜 향기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 분의 바다 밑에 감추어진 빙하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을까. 그 분을 자주 뵙진 못했지만, 어쩌다 만났을 때 내가 만든 음악을 들려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천국에서는 마음껏 피아노를 치고 계시겠지. 주변을 자신처럼 아름답게 물들이시며.


어느 순간 상처로 얼룩진 여유 없어진 마음이 쉽게 짜증을 낸다. 사람들을 받아줄 인내와 사랑이 사라지고 비난과 판단이 훨씬 쉬워진다. 요즘도 가끔 나는 옷가게 직원의 불편한 눈빛과 틱틱대는 제스처에 쉽게 기분이 나빠지고 만다.


" 엄마, 방금 봤어? 저 직원 왜 저래. 세상에 이상한 사람 참 많아. "


" 직원들이 일이 얼마나 힘들겠어. 아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보지. "


그러게.

빙하의 일부분만 보고 쉽게 얘기했네.

내가 받기 싫은건 누구에게도 하지 말아야지.

다시 쉽게 비난하고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여유없고 사랑없는 내 마음을 탓하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그래. 사람을 남극의 빙하처럼 생각하자.



입을 꾹- 닫자.



말을 멈추면 생각이 멈추고,

생각을 멈추면 마음도 그렇게 따라가겠지.

그러면 언젠간 그런 말이 저절로 안 나오겠지.



아, 남극에 있는 빙하와 같은 우리여라.


누군가 당신을 쉽게 비난하고 판단한다면 이 빙하같은 인간아. 나도 당신과 같은 빙하라네. 라고 말해주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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