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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브림 May 31. 2024

빼앗긴 노동

혼자 살아도 이불 빨래는 열심히 해야지 물론 (기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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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올드해 보이는 나름의 키오스크 앞에 3개월 만에 다시 섰다. 자신 만만한 회원 1은 막힘없이 전화번호와 비밀번호를 누르고 1번 세탁기 선택을 누른다. 마지막 세탁의 종류에서 잠시 멈칫한다. 헹굼을 2번 할 것인지 3번 할 것인지 그 뒤로 뭔가 또 복잡한 선택지들이 5가지는 더 되어 보였는데 그냥 가장 저렴한 헹굼 2번 3,500원을 선택한다.


3개월에 한 번씩 이곳 코인 빨래방에 와서 이불을 세탁한다. 24분의 쾌속 저렴이 세탁은 집에서 글을 쓰기에도 넉넉한 시간이다. 가끔은 빨래방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게임을 하거나 핸드폰을 보는 시간으로 때우는데 오늘은 그냥 집으로 왔다. 이 글은 그렇게 24분 안에 완성을 목표로 달린다.


내 손으로 이불을 빨지 않아도 되는 당연함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효율성


그런 인간은 시간을 벌어 행복할까


문득 옛날 자취생들은 어떻게 이불을 빨고 말렸을까 상상했다. 그 세월은 또다시 세분화되어 현금을 동전으로 교환해서 빨래를 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카드로 충전해서 사용하는 선택적 회원제 키오스크 시스템으로 발전도 한다.


동전을 넣던 시절도 훨씬 전에는 햇살 뜨거운 날 옥상에 올라가 빨간 고무 대야에 이불을 넣고 바지를 돌돌 말아 무릎까지 올려 꾹꾹 밟아 빨고 긴 빨랫줄에 턱턱 털어 말렸으려나. 모든 것이 다 쉬워지고 있는 세상 같은데 왜 난 그 빨래 꾹꾹이가 해보고 싶은 걸까.


몸이 고생하는 시간이 드문 요즘이다.

난 쓸데없이 그걸 즐기는 편이고.


육체노동의 시간을 벌어 남은 시간을 앞으로의 자취생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쯤 되려나. 역시 24분은 글을 쓰기 충분한 시간이다. 이제 세탁기에 있는 이불을 건조기에 다시 넣으러 나가야겠다.


오늘 빨래방까지 왔다 갔다 40걸음 정도를 걸었고

빨래하고 널고 걷는 노동은 빼앗겼다.


인간적 성취를 잃은 무기력함 속에서 해본 적도 없는 아웃도어 워싱에 심취해 하천길바닥에서 빨래 방망이나 같이 신명나게 두들기던 아낙네들의 게더링이 부러울 지경이다.


편리해진 세상에서 혼자 사는 게

언제나 신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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