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비 May 25. 2022

사랑이란 슬픔의 공간을 채우는 행복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밀란 쿤데라가 직접 그린 표지 그림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랑을 정의 내린다면 가벼움에 가까울까? 무거움에 가까울까?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란 자주 일탈을 선사하는 가벼움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한 사람에게만 지고지순하게 바치는 순정과도 같은 무거움일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테레자와 토마시, 프란츠와 사비나처럼 말이다. 참 의문이 드는 게 무거움으로 대표되는 테레자와 프란츠가 아닌, 서로 정반대의 사랑의 속성을 지닌 테레자와 토마시, 그리고 프란츠와 사비나가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결국 테레자와 토마시는 완벽한 행복을 맞보며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무거운 사랑을 대변했던 프란츠와 사비나의 사랑은, 가벼운 사랑의 대표자, 사비나가 배신하면서 끝이 난다.


 이들의 사랑은 그들의 마음만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소련의 체코 침공, 프라하의 봄, 정치적 박해,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 강도의 습격 등 역사적 사건과 개인적 비극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있다. 그런 시대적 흐름이라는 물결에서 그들 또한 벗어날 수 없었고, 얽히고 얽힌 사건 속에서 그들의 운명을 만들어나갔다. 소설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는, 니체의 영혼회귀사상을 툭 소설의 서두에 던지며 시작하는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제1부 가벼움과 무거움의 2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는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본문 13쪽     


 이 소설의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담고 있는 의미는 어쩌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존재와 가벼운 인생을 살아간다면 생은 토마시와 테레자의 마지막 여정처럼 순간의 행복을 지어갈 수 있지 않을까 권유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거운 존재란 토마시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면서도 테레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처럼 Es muss sein! 의 대상이 되고만 마는 필연적인 한 사람일 것이고, 가벼운 인생이란 그가 어쩔 수 없는 탄압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외과의사직을 벗어던지고 시골마을의 유리창 닦이로 살아가며 무안한 행복감을 느낀 그런 삶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퇴근 후에 더 이상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하며 스트레스받아도 되지 않는 자유를 느끼는 삶, 자신이 탐닉했던 수많은 여자들을 뒤로하고 테레자와의 단순한 일과에 행복을 느끼는 삶은 테레자와 토마시가 길고 긴 상처와 오해와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완성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사랑이 있다. 바로 테레자가 토마시에게 선물 받은 반려견 카레닌이다. 테레자와 카레닌의 사랑은 어쩌면, 테레자 그녀가 고백하듯 토마시와의 사랑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아무 조건 없는 사랑,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랑, 맹목적인 사랑. 밀렌 쿤데라가 7부. 카레닌의 미소를 맨 마지막에 넣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암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카레닌을 위해 안락사를 시킨 테레자와 토마시. 사랑함에도 결국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해야만 하는 슬픔이 테레자와 카레닌과의 사이를 더욱 견고하게 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테레자가 토마시와의 무한한 사랑을 묘사한 말처럼 말이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본문 506쪽     


 테레자와 토마시와의 사랑, 테레자와 카레닌의 사랑, 프란츠와 사비나의 사랑, 사비나와 토마시의 사랑. 결국 모든 사랑은 슬픔과 행복이 맞닿았다는 결론이 작가가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구나 싶다.      


 이 소설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 이야기 외에도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묻어나는, 토마시가 신문에 기고한 글 한 편으로 인해 정치적 박해를 당하고 시골로 쫓겨가는 과정, 자유를 찾아가는 프라하 시민들의 혁명과 도청과 감시를 일삼는 소련의 탄압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의 큰 줄기가 왜 밀란 쿤데라가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 소설가로 불리는가를 끄덕이게 된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한 권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 문화적 담론을 담고 있는, 20세기의 고전문학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나면, 사랑과 인생, 정치에 대해 깊이 사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전 16화 진실한 상대를 만나고자 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