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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즈골드 Oct 30. 2020

둘째는 사랑!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왼손 주먹을 꽉 쥐고, 볼록 나온 손 아랫부분을 오른손으로 꾸욱 누르면, 볼록 하고 튀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는 볼록 튀어 나온 수가 자신의 자녀 수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두 개가 볼록 튀어 나오곤 했다. 지금 다시 해봐도 그렇다.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부터 두 명의 자녀를 낳을 것이라 믿었고, 꼭 그 미신이 아니더라도 아들 한 명, 딸 한 명. 이렇게 두 명의 자녀를 낳고 싶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성인이 된 뒤에도 변함없었다.

 결혼 후 3개월 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 한 뒤에도,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힘듦을 깨달은 뒤에도, 나는 여전히 둘째를, 딸 아이를 낳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첫째가 아들이면 둘째도 아들일까봐 고민된다.’, ‘둘째가 딸이라는 보장만 있다면 낳겠다.’ 라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난 둘째로 딸을 낳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딸일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혹 또 아들이여도 어떤가 싶었다. 남동생이 생긴다고 해도 그저 행복해할 우리 가족들 인것을.. 아들 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네 가족이면 그 걸로 충분히, 더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산후조리원에 갔을 때, 그곳에 오신 한 강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성별을 다르게 출산하고 싶다면 4년 정도의 시간 텀을 가지라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도 한 몫 했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어느정도 보탬이 되어주기 위해선, 힘들거나 무리가 되지 않도록 4년 이상의 텀을 두고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터였다.

 나는 첫째를 출산한 이후, 맞벌이를 하며 워킹맘으로 바쁜 삶을 살았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그렇게 일에 치여 정신없이 살다보니 4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더이상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 둘째를 계획 할 즈음, 나는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말았고, 둘째 계획을 뒤로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내가 암에 걸릴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암에 걸려 내 몸이 아프다는 사실보다, ‘내가 둘째를 가질 수 있을까.’, ‘암에 걸렸는데 둘째를 낳아도 될까’란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을 확인하는 첫 산부인과 진료에서 자궁에 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담당 선생님께서는 혹이 있음에도 임신이 되어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었다. 그 혹으로 인해 혹시라도 둘째 아이 임신이 어려울까봐 걱정이 되었던 참에, 이제는 내 몸의 질병으로 인해 불안함까지 더해졌다. '조금만 더 일찍 낳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더 시기를 늦추면 둘째를 가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갑상선암에 걸리면 완치 판정은 5년 뒤에나 받을 수 있다. 혹시 몸 속에 암 세포가 남아있다면 또다시 재발할 확률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도 또다시 재발하여 재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완치 판정을 5년 뒤에 받을 수 있기에 나는 5년 동안 중증환자 등록이 되어 있다. 이제 서른 초반인 나는 중증환자가 되어 버렸고, 둘째를 가지려면 완치 판정을 받기 전인 암 환자인 상태에서 가져야 했다.

 무엇보다 암 환자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야 하는 아기에게.. 그렇게 태어날 아기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왜 나는 암에 걸린 걸까..’, ‘왜 나인걸까..’, ‘둘째까지 다 낳고 나서 걸렸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둘째를 너무나 가지고 싶고, 낳고 싶은데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속상하고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5년 뒤를 또 다시 기다릴 순 없었다.

 남편도 갑상선암 수술 후 체력적으로 힘들어 할 나를 걱정해서 둘째 계획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둘째를 너무나 원했다. 형제없이 혼자 크는 쓸쓸함을 주변을 통해 듣고 느껴왔기에, 나 역시 언니가 있어 외롭지 않게 자라왔기에, 적어도 자녀가 둘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6년을 형제없이 혼자 자라온 첫째 아이가 앞으로도 쓸쓸히 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해서, 나는 꼭 둘째를 낳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둘째 아이를 간절히 원했고, 얼마 뒤 감사하게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둘째가, 우리 가족에게 찾아와 주었다. 너무나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공주님이였다. 고마웠다.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너무나 고마웠다. 아프고 부족한 엄마에게 와줘서 너무나 고마웠다. 아빠에게 예쁜 딸로, 오빠에게 예쁜 동생으로 와줘서, 우리 가족에게 와줘서 너무나 고마웠다.

  

 작고 작은 둘째 아이를 보며, 나는 다짐했다.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다. 우리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을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손자 손녀를 보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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