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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에 회고하는 지난겨울

눈 속에서 자라던 우리

by 로컬일기

시골에선 열대야는커녕 한여름 이불 덮는 날도 며칠 되지 않는데

올해는 제대로 열대야를 겪는다.

잠을 뒤척이며 평온했던 지난겨울이 떠오른다.


눈이 꽤 자주 내렸다.

눈 내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냥 좋지만 여기서는 시간이 멈춘다.

출근하던 때엔 전날부터 눈 걱정에 선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난겨울엔 온전히 눈 자체를 즐겼다.

오히려 눈이 오길 바라며,

눈 아래에 조용히 파묻혀 있고 싶었다.


눈이 내리면 바로 자체 제설작업을 한다.

아주 가끔은 동네에서 주도로가 아닌 길을 트랙터로 제설작업을 해주기도 한다.

어린 조카와 함께 했던 조금 특별했던 겨울.

제설작업이라는 말이 멋있게 들렸는지 키보다 큰 눈삽을 들고 꽤나 열심히 눈을 치웠다.


"불멍 하려면 솔방울이 필요해. 100개만 주우러 가자."

생각보다 쉽게 따라나서는 조카.

게임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100개를 즐겁게 줍는다.

대신 솔방울 하나하나를 주울 때마다 옆에서 함께 세어줘야 했다.


이렇게 주운 솔방울을 장작 아래에 깔고 난로에 불을 지핀다.

녀석은 며칠 만에 만난 엄마에게

불멍하고 고구마 구워 먹었다고 자랑을 한다.

솔방울을 얼마나 많이 주웠는지도 함께.


아이패드와 한참 씨름하다가도

"바닷가 탐험갈래? "라고 하면 벌떡 일어난다.

큰 개들과 달리기 시합을 하며 갯벌이 펼쳐진 바닷가까지 내달린다.


모래가 수북한 해변에서 작은 나뭇가지 조각 하나를 들고 땅을 휘젓던 녀석이 한마디 한다.

"무엇이든 여기에 넣으면 사라져요. 다시는 나올 수 없어요"

"잊고 싶은 기억도 넣으면 사라지나요?

"물론이에요"


왠지 그 작은 소용돌이가 모든 액운과 불행을 빨아들일 것만 같다.

어린아이의 장난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진심으로 믿어보고 싶었던 겨울바다.

조카가 자라는 만큼 나도 자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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