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라 Aug 10. 2023

터미네이터의 완벽한 스쿼트에 대한 고찰

운동과 나


챗 GPT 열풍이 분다. AI를 이용한 각종 툴들의 개발은 또 얼마나 신기한지. 오늘 아침엔 감정이 있는 듯 사려깊게 대화하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하는 표정을 짓는 AI로봇에 대한 기사도 봤다. 나와 남편도 터미네이터를 너무 재밌게 봤던 세대라서 터미네이터가 떠올랐는데 댓글들을 살펴보니 우리 부부만 그랬던 것 같지도 않다.


최근 우리 가족은 터미네이터 2를 다시 보았다. 예전에는 거의 매년 명절 특선 영화로 나오기도 했던 그 영화. 그리고 우리의 아놀드 슈왈제네거. 그는 보디빌더로 처음 세계에 내보여졌지만 지금까지 최고의 할리웃배우이자 스타다.

어렸을 적 열번도 넘게 돌려본 영화. 달달 외웠다고 생각했던 영화를 오랜만에 봐도 정말 신선하고 과감한 액션영화였다. 어떻게 90년대 초에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9살이 된 아들도 9살이었던 우리 부부처럼 충격적으로 영화를 보았다. 우리 가족은 정말 취향이 잘 맞는다. 스토리의 흐름과 발상. 지금봐도 위대하고 걸작이라고 부를만한 영화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감탄한 것은 바로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스쿼트였다. 그가 왜 최고의 보디빌더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중간에 떨어지는 남자주인공을 트레일러에서 받는 장면이었던가 아니면 트레일러에 떨어져서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었던 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의 훌룡한 스쿼트 자세 폼만은 잊혀지지않았다.


내가 감탄해서 ‘와 저 허벅지! 상체 균형, 밸런스 봐! 저 사람은 정말 최고구나!’라고 감탄했더니 질려하던 남편의 표정이 생각난다.


린다 해밀턴이 정신병원에서 풀업하는 장면은 정말 내 최애 장면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물론 난 아직도 밴드없이는 풀업을 못한다. 여전히 그 장면에 환장할 수 밖에. 그녀의 등근육은 정말 완벽하고 풀업의 속도나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느끼는 포즈도 정말 완벽하다.


남편이 이런 나에게 묻는다.

“혜린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글쎄,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터미네이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액션영화를 봤다. 엄마는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했던 영화광이었고 지금도 집에가면 당연히 영화채널을 틀어놓고 계시곤 한다.


90년대는 홍콩의 이소룡 성룡 이연걸을 비롯한 무술 액션 영화의 시대였다. 헐리웃에선 브루스 윌리스와 아놀드 슈왈제네거, 니콜라스 케이지, 키아누 리브스 등등... 수많은 액션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앞서 말했듯 친정엄마는 영화광이었다.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영화배우로 캐스팅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현모양처였고... 어리석은 꿈을 꾼 덕에 두 번의 이혼을 겪은 이혼녀가 되면서 결혼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액션영화를 볼때마다 내가 느꼈던 짜릿함은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정말 터미네이터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푸쉬업 하나 못하는 나약한 나는 버틸 수 없는게 뻔했다. 게다가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딜 그렇게 매달리는지.. 어렸을 때 영화를 볼 때마다 나와 내 동생은 저건 영화니까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실제로 그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린 살아남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엑스트라 그 잡채. 운 좋으면 저런 영웅들을 만날 수도 있을테지만.. 과연?


어렸을 적부터 독립심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그건 용서가 안 됐다. 하지만 태권도 한번 못 배워본 몸뚱이는 아주 허약하고 작았다. 지금은 대한민국 표준키에 달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만해도 전교에서 두 번째로 작고 말랐었다.


게다가 헐리웃 세계관에서 구출을 당하기만 하던 여자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 변화했다. 린다 해밀턴도 충분히 충격적이지만, 제 5원소의 밀라 요보비치나 지아이 제인의 데미무어는 또 어떤지. 특히 안젤리나 졸리! 툼레이더에서 그녀가 보여준 캐릭터는 정말 멋있었다. 인디아나 존스가 와도 그를 따돌리고 그의 보물을 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한 신체능력과 두뇌회전! 나도 그녀 같아지고 싶었다.


뮤지컬을 하면서도 술만 취하면 이런 말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도 여전히 허약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하기 까지 한번도 턱걸이를 해보지 못한 나. 운동은 무슨 누워있는게 제일 좋았다. 그나마 잘 하는 건 오래 걷는 것 정도?


나는 여전히 그녀들 같아지고 싶다. 그 욕망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린다. 이럴거면 군대를 가면 좋았을 걸. 아마 내가 영화속 그녀들처럼 강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은 출산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출산. 이 얼마나 위대한 단어인가. 육아. 얼마나 고차원의 정신력을 요하는가. 이 신체의 변화를 겪으며 ‘엄마는 강하다 고로 여자는 강하다’라는 결론을 얻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못 할 것 같았던 각종 자격증을 따고 카페도 개업해보고 남편에게도 개겨(?)보고 시엄마한테 덤벼도(?)봤다. 싫은 사람한테 화도 내보고 아닌건 아닌 것 같다고 길길이 날뛰어도 봤다. 엄마한테도 지랄발광 난리도 쳐봤다.


아니.. 엄마가 돼서 강해진 사람이 한 일이라고 하기엔 좀 부끄러운데, 그전의 내 멘탈은 그만큼 순두부여서 거절도 잘 못 하고 싫은 소리도 잘 못했다. 원래 싫다는 생각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잘 소화하고 불편함을 잘 느끼지 못 하는 타입이기도 한데다 인내심도 좋아 불편한 감정이 들어도 잘 참는다. 하지만 이젠 참지않게 되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찐 살을 빼버렸다. 한 커뮤니티에 내가 100일 넘게 했던 식단을 올리니 그 트레이너 지옥가라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다. 그 친구가 아직 어려서 전달하진 않았다. 배우는 과정일테니까. 나도 앞으로 배우면 되니까.


아무튼 그만큼 독하게 거의 굶어가며 살을 뺐다. 와중에 주 4일 이상 운동도 했다. 주7일도 했었지만 아이 때문에 쉰적도 많으니 평균을 치자면 주 4일 정도 될 것 같다.

그래서 바디프로필도 찍었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여기저기 SNS에 올라오는 사람들처럼 몸을 만들어보고는 싶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는 대회에 나가고 싶었다. 캬. 영화속 주인공이 정말 한 번 되어보고 싶었다. 그정도의 운동수행능력은 선수라면 나오지않을까?


사실 비대한 아줌마보다 그래도 얄상하고 샤프하게 근육질인 아줌마가 운동수행능력이 좋은게 뭔가 더 좋아보인다. 어렸을 적부터 헐리웃에게 시각적 세뇌를 당해온 탓이다. 군인이나 선수들 중에는 체격이 좋아도 운동능력이 남다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번에 김민경이라는 개그우먼이 운동하는 영상을 보면서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평생에 전완근이라는게 있어본 적이 없어서 늘 물병 뚜껑을 딸 때 고생을 했다. 잼 뚜껑 딸때는 온 가족에게 멸시를 당했다. 하물며 운동하며 중량칠때는? 트레이너가 지옥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때 조금 통쾌하기도 했던 건 수업을 할 때마다 너무 놀림을 많이 받아서 일거다.


멸치인 것과 상관없이 몸에 근육이 좀 없는 타입? 그래서 정말 정말 모양도 안나오고 운동수행능력도 잘 안따라오는 타입. 그게 나다. 하지만 의지가 있다. 꺾이지 않는 의지. 안젤리나 졸리를 보면 나오는 그 의지!


지금도 어벤져스 중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바로 스칼렛 요한슨의 블랙 위도우다. 여자의 액션은 위대해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캬..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무술을 배워서 액션스쿨로 진입한 뒤 시크릿 가든처럼 스턴트우먼의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실제로 대학동창 중엔 피트니스 선수로 상을 받고 액션스쿨을 다니거나 트레이너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서너명 있다. 나는 뮤지컬 연출/기획이었지만 나머지는 다 배우지망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 소식을 들었던 20대 초의 나에겐 말그대로 남일로 여겨졌었는데 왜 이제야 늦바람이 든건지.. 아쉽기만 하다. 헬스장이라는 곳 자체가 대중화 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접하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요상하게 뒤틀린 마음 속엔 내가 영화배우도 아니고 왜 그렇게 말라야 하는데? 하고 시대가 바라는 미인상을 삐뚤어지게 받아들이는 어린 내가 있었다. 사실 그러면서도 마르고 몸매좋은 여배우들을 정말 좋아하고 부러워했었다. 운동을 해보고 다이어트를 해보니, 그게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운동하며 강인해지는 나의 멘탈이 느껴진다. 어떤 일을 하던 덜 감정적이 되고 힘들어도 밀고나가는 힘이 생겼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스미스 스쿼트를 해봐야 겠다. 하기전에 종아리를 확실하게 풀고. 양 쪽 무릎에 물 빠진지 얼마 안되었으니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완벽한 자세를 연습해보아야지. 벌써 신이 난다.


이전 24화 시트콤 속 그들도 심각했으리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