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L Time #44
11월 1일이다. 놀라운 건 오늘을 기점으로 벽에 걸린 캘린더가 어느새 두 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월 참 빠르다. 물론, 아직 지역에 따라서는 가을의 붉음이 여전하다. 하지만 곧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동이 찾아올 것이고, 그리 되면 가을의 색은 흐름 따라 그렇게 그렇게 바래가겠지.
이런 생각의 와중,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2020년의 나…, 얼핏 보면 작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고, 뿐만 아니라 보기에 따라서는 되레 퇴보한 날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내 삶을 감싸고 살아온 지가 약 9개월이 지났다. 2019년 연말에 TV 중계를 통해서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고서 ‘새 마음’을 얹었던 기억이 난다. 뭐, 그 경계야 필시 미국과 캐나다를 넘나들며 만나는 그랜드캐니언의 풍경 정도로 별반 차이는 없겠지만, 주님께서 모든 이들에게 13월을 허락하지 않으신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고 늘 생각하기 때문에 또다시 새 생각을 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똥차거나 삐까뻔쩍한 플랜은 아니었다. 그저 내 기준에 작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보자고 했던 것과, 또 나아가 기도 가운데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이 있거든 내 능력… 곧, 미천하고 제한적인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께서 이끄시는 바대로 나아가 보자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코로나19는 풍문이 아니라 진짜였으며, 실재하는 공포였다.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가뜩이나 제한적이던 내 삶은 더 제한적으로 변했다. 지난 근황 이야기 1편과 2편, 그리고 Fermata & Da Capo 글을 통해 그간의 근황과 코로나19에 대한 개인적 생각들을 피력해 왔다. 그리고 그 글에서 말했듯 구정 전 날의 활동이 내 외부 활동의 마지막이었다.
내 계획은 코로나19 때문에 모조리 어그러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날 사랑해 준 사람들을 장애 때문에 어렵다는 핑계 대지 말고, 이전보다 더 자주 만나 고마운 마음과 정성을 작게나마 보여주리라 다짐했던 것이…, 또 과거에 지독히도 모질게 굴고 냉대했던 나 자신에게 더 많이 보상해주리라는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소소한 다짐들이 송두리째 어그러진 것이다.
단순히 흘러간 그 시간만을 아쉬워하거나 깊은 한숨으로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것은 붙잡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이미 추억이 되어서 이미 먼발치에서 아름답게 보정되고 있는 중이다. 한데 문제는 과거가 아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인 가까운 미래가 아니다. 까짓 거 9개월 넘게도 버텼는데 몇 달은 못 버티랴. 또 그보다 더한 시간이라고 흘러가지 않겠는가. 내가 걱정하고, 동시에 원망이 드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먼 미래 6개월 후, 1년 후, 2년 후다.
봄의 새싹이 움틀 때 얼마나 찬란하게 느껴지는가. 그 가운데 꽃이 피면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들이 세월 따라 지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곡하거나 흐느끼지 않는 것은, 여름의 생기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 저물면 가을의 익어가는 풍성함이 인류의 가슴을 채우고, 겨울의 냉기는 쓸쓸함을 주며, 앙상한 가지는 마음을 가라앉히지만, 반드시 다음 해가 거듭되면, 변함없는 모습으로 찾아오기에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사람에게도 4계절은 찾아 오지만, 그 계절은 일생에 한 번뿐이다. 물론, 난 아직 인생의 계절을 논할 때는 아니다. 어쩌면 난 아직 ‘봄의 중턱’ 정도를 겨우 넘는 것일지 모른다. 허나 내 주위의 사람들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나와는 달리 이미 여름의 날을 지내는 이가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누군가는, 나와 같은 계절을 보낸다고 해도, 무수한 일들 가운데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남지 않은 사람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는 누구와 벗 삼아 살아야 하나. 설사 가족마저도 벗의 범주로 포함시킨다고 해도 그들이 나와 언제까지 함께 할 것인가 하는…
작금의 시간은 그런 고민들로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설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말씀, 아멘.) ‘항상’이란 단어에 방점을 찍어 본다. 짐작건대는 어떤 조건이 수반됐을 때만 기뻐하거나 기도하거나 감사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심지어는 전무 하더라도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그런 삶’.
시편 기자인 다윗이 고백했던 시구처럼, 절망을 봤던 하박국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찬양했던 그 감사의 제목이 나에게도 있을까 생각해 봤다.
몇 년 전, 11월 말쯤의 주일날이었다. 여느 날들처럼, 교회의 가기 위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서 교회에 갈 채비를 했다. 채비를 마치고 난 후에는, 지인들 중에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 Y 형님과 동생인 T가 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차에 타기 위해 도움을 받았다. 그날은 동생이 담당했다. 최대한 성심성의껏 해주려던 것이 과유불급이 되고 말았는지 차에 오르던 그 순간에 내 발목이 심상치 않은 소리를 냈다. ‘두둑’
필시 이상해진 것을 눈치챘으나 아픈 티라는 티는 다 내면서도 교회에 출석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병원에 가서 발목 골절 진단을 받고, 9개월 간을 누워 지냈다. 골절이 되던 그 순간, 그때 동생이 지었던 표정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날 돕는 데 있어서는 베테랑이었던 그가 실수했을 때, 그 허무함과 나를 향한 미안함은 얼마나 컸을까. 내가 골절로 처음 병원에 갔을 때, 그는 병원에 찾아왔고, 그 후로도 집에 찾아와 내 안부를 살폈다. 나는 지금, 과거에 겪은 어려웠던 이야기를 되새김질해서 이 글이 발행되면 읽게 될 그를 향해 면박을 주려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다 끝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가족들께 여전히 진심으로 죄송하지만, 그리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 없이 건강하게 지내리라 다짐하며, 주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지만, 전심으로 날 케어하려다 벌어진 일 앞에서 단 한순간도 동생을 원망한 적은 없다. 그 날 이후로 우리 관계는 깊어졌고, 그래서 다 지난 후에는 도리어 감사의 제목이 됐다.
모르겠다. 예배 중에 설교를 들으며, 이 같은 생각이 스쳤다. 이것이 오늘 느낀 감사의 1 제목이었다. 두 번째 감사의 제목은 이와 같은 험난한 시간을 지나고, 한참 지나 또 한 번 전염병이 창궐하는 현재의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모양으로 인내하게 하셔서 코로나19로부터 지켜주심에 감사하다.
‘나’라는 존재는 연약하고, 어리석어서 오늘 들어온 감사를 언제이고 잊어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나는 주님 맘에 합한 다윗이나 하박국과 같이 탄탄한 믿음의 사람도 아니다. 방향을 틀어 돌아 앉으면 언제라도 성토와 원망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나 다만, 잠시가 될지언정 감사의 제목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 한다.
끝으로, 늘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사를 드린 후에, 꼭 끝맺음하는 말이 있는데 과거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께서 하신 클로징 멘트를 내 식대로 아주 조금 변형시킨 말이다. 이 말은 이제 내 삶의 목표가 됐는데, 이 말로써 글을 맺을까 한다.
“저는, 메일 매일 주님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본문은 11월 1일 분당 가나안교회 정 원 부목사님의 4부 주일 설교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Photo by Ryan McGuire on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