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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 Nov 10. 2024

하루하루 감탄하는 삶

아모르파티


올해 가을을 맞이하며 서초문화재단과 관악문화재단에서 함께 주최하는 교류형 아트페어 아트비앤비에 참여하게 되었다. 전시 공간 중 하나인 서리풀 청년 아트갤러리는 내가 처음 작가로 그림을 내걸었던, 나의 이력 첫 줄이라 애틋함이 더욱 컸다. 그땐 일 년 사이 스스로가 이렇게 바뀐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어쩌다 나는 지금의 '나'가 되어버린 걸까.


아빠와 전화를 하면 우리의 대화는 끊이질 않는다. 일상적인 얘기에서 시작하다가 연기설, 엔트로피 법칙, 양자역학 그리고 죽음과 사랑에 대한 의미까지. 밤에 3시간이 넘도록 핸드폰을 붙잡고 대화를 하다가 잠에 못 이겨 통화를 끊는 일이 대다수다.


우리는 기질적인 성향은 물론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뇌 회로가 굉장히 유사한 것 같다. 어릴 땐 이를 인지하지 못했는데 사회에 나오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이런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 사랑 3(愛)_oil on canvas_45.5x45.5_2024


아빠는 철학도가 되고 싶었지만 어릴 적 형편이 좋지 않아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해 공대를 갔다. 회사를 다니다가 엄마를 만났고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다 사랑하는 여자와 아이 셋을 풍족하게 먹여 살리고 싶어서 전공과 관련 없는 사업을 시작했고 업종도 몇 번이나 바꿨다. 마침내 아빠는 바닥부터 탑층까지 쌓는 게 가능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고 덕분에 나는 아빠의 노력과 철학을 평생토록 지켜보면서 배울 수 있었다.


그 시절 많은 부모가 그랬듯 아빠는 가정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 어릴 적 나는 감히 그런 아빠를 불쌍해하고 가여워했지만 세월이 흘러 깨달았다. 아빠는 삶에서 가장 큰 가치가 다른 무엇보다 가족이었기에 아빠의 가장 큰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했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랑했을 뿐이었다. 우리의 순간의 점들은 다르고 겉도 자꾸 바뀌어 지만 우리는 삶의 매 순간을 사랑했다.


보잘것없는 예측력에 좌절되어 나를 미워했던 지난 순간들을 연민한다. 예측력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엄밀히 대상의 명확함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물리는 무질서를 향해 달려가고 삶도 그저 모호함 투성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명의 우연성만 봐도 삶의 마지막조차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의 모호함을 끌어안고 내 분수를 오롯이 사랑할 것.

마지막을 예측하기는 더욱 어려워졌지만 모든 순간을 가득 만끽하고 내 인생의 서사를 전부 사랑하고 싶다. 노력은 언젠가 꽃이 피며, 피지 않더라도 또 다른 다음의 거름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모호하기에 우린 감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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