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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 Nov 17. 2024

죽음 뒤 탄생, 나의 아브락사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처음 발을 들인 세계는 암병동이었다. 당시 인턴으로 들어가 주 6~7일 근무는 물론 당직까지 서야 했기 때문에 나는 죽음의 순간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절대 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엿볼 수 있었다. 타인이 감히 한 사람의 질병의 무게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사망률이 높은 암을 앓고 있거나 전이가 많이 진행된 환자들의 눈동자는 대부분 희미했다. 예상되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저 무력해진다.


밖에선 많은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기준으로 서열을 매기고 좀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죽음 앞에서 돈과 권력은 무용하다. 그것들은 죽음의 공포를 상쇄시켜주지 못했다. 그리고 죽음의 세계에선 새로운 기준이 보였는데 온갖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은 부자나 유명인이 아니라 그럼에도 나를 보살펴주고 찾아와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이득과 손해에 웃고 울고 몇 년이 지나면 시답잖을 생각에 집착하며 아득바득 살아나간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꿈과 사랑을 미루다가 죽음이 코앞에 다다랐을 때 후회를 한다. 비로소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조심스레 밝히지만 나는 20대 대부분을 성취지향적 인간으로 살았다. 내가 쓸모없음을 사랑할 때면 나를 힐난하고 실질적인 결과를 내라며 다그치기 바빴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이별들을 고했다. 나에겐 늘 너를 만나고 너와 마음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겉으로 나는 번듯해 보였지만 가끔씩 어디서 파생되었는지 모를 죄책감에 억눌렸다. 그 죄책감은 타인이 아닌 내면을 향한 죄책감이었으며 내 꿈과 사랑을 무시한 대가로 얻은 처벌이었다.



나는 몇 년에 걸쳐 내면에 파묻힌 자아를 끄집어냈고 지금에 다다랐다. 이따금씩 그때의 내가 보이는 순간이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악'으로 치부하기보다 끌어안고 사랑하려 한다. 현재의 자아도 '선'이 아니라 그저 잠정적인 안정상태일 뿐이기에. 자아의 죽음은 또 다른 자아의 탄생으로 삶은 이처럼 수많은 자아가 거쳐가는 과정이다.


하얀 가운을 벗고 하얀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이젠 세상을 다양한 빛깔로 잔뜩 물들일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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