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5도, 미용실에 가다.

by Henry
한낮의 태양.jpg



우리를 째려보는 태양

7월 말, 한낮의 태양은 우리를 째려본다. 지구는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외로 꼰 채, 광폭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오후 2시, 태양은 마치 정오를 되새김질하듯, 사정없이 폭염을 퍼붓는다. 이맘때의 여름 해는 악당, 아니 빌런으로 돌변한다.


섭씨 35도. 습도는 높고 공기는 눅눅하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흐르고, 몸은 금세 끈적해진다. 누가 살짝만 스쳐도 싸움을 걸 판이다. 불쾌지수가 끝없이 치솟는다.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고, 겨울은 추워야 제격이라지만, 요즘 계절은 그 경계선을 훌쩍 넘어선다.


평소에는 간간이 사람이 오가는 아파트 단지 안.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실내에 틀어박혀, 꿈쩍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시간조차 더위를 먹은 듯 느릿하게 흐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숨만 쉬어도 땀이 흐른다. 한여름 태양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이다.


넘실거리는 나뭇잎의 초록 물결은 한층 더 선명하고, 화단에 곱게 핀 배롱나무 꽃잎은 더욱 붉다. 손을 대기만 해도 초록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손바닥 가득 붉은 물이 스며들 것 같다. 불타는 태양의 횡포에 꺾이지 않는 것은, 그나마 이들뿐이다. 더위를 견딜 장사 없으니, 이들도 서서히 지쳐간다.


하필이면 어제, 나는 오후 2시에 머리를 자르러 나섰다. 한참이나 짧아진 그림자조차 지쳐 숨어버린 시간. 미용실 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먼저 반긴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던 남자 미용사가 화들짝, 반가운 얼굴로 맞아준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 한낮. 무료함에 몸을 비틀었을 그의 심정이 문득 안쓰럽게 느껴진다.


오후, 무료한 미용실

평소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른다. 양쪽 귀 뒤로 아주 오래전 인공고막 수술한 흔적이 보일 정도로 옆머리가 흔히 드러난다. 타인이 내 귀를 뚫어져라 볼 일 없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래도 이제는 그렇게 짧게 자르지 않으려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는 주기를 조금 더 당기면, 단정한 헤어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주문하고 느긋하게 의자에 앉았다. 남자 머리 자르는 일은 그리 어려울 게 없다. 모양만 반듯하게 잡아주면 그만이다. 집이 가까워 굳이 미용실에서 샴푸를 할 필요도 없다. 남자 미용사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덕분에 중년 남자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알뜰한 정보를 챙기는 쏠쏠한 재미도 생겼다.


미용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훅 하고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친다. 이 광폭한 무더위 속에서 우리는 묵묵히 견딘다. 배롱나무는 더 붉은 꽃을 피우고, 미용실 주인은 인내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더위는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 안의 생명력을 깨운다. 뜨거운 햇볕 아래 흘리는 땀, 그것은 살아 있음의 강렬한 증거다. 오늘도 우리는 숨 쉬고, 걷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폭염 같은 날을 버티면

아파트 단지 안을 걸었다. 그때 옆을 스쳐 지나간 한 사람, 양산을 받쳐 들고, 자외선 차단 가림막까지 쓴 모습이었다. 파괴된 오존층 사이로 쏟아지는 자외선의 열기는 피부를 태운다. 그러니 여성들이 외계인처럼 완전무장을 하고 나서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피부는 소중하니까.


후덥지근한 날씨 속, 모든 것이 흐느적거리고 지쳐 있다. 하지만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도 과일은 묵묵히 단맛을 저장하고, 벼는 알알이 알곡을 채우느라 분주하다. 땀방울을 견디며, 자연은 풍요로운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여름의 폭염은, 그렇게 단단함을 채우는 인내의 시간이다.


삶은 어쩌면, 폭염 같은 날들을 버텨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 우리는 끝내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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