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놀라울 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임신을 준비해 온 나조차도 임신을 하면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지 관심이 없었으므로. 입덧이 생기고 배가 불러오고 튼살이 생긴다... 이 정도의 기본적인 상식이 전부였다. 하지만 입덧이 사람마다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임신의 경험이란 얼마나 천차만별인지 임신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입덧은 드라마에서처럼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욱' 하다가 화장실로 들어가고 그런 전형적인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다이내믹하게 전개된다. 이름도 입덧, 먹덧, 토덧, 체덧, 잠덧, 냄새덧, 양치덧, 하다못해 남편덧(?)까지 있다. 남편덧이란 이른바 남편의 체취 등에 예민해지는 것을 말하는데 임신 초기 게시판에는 '남편 냄새 때문에 힘들어요' 같은 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먹기만 하면 토하는 사람(토덧), 공복에 울렁거리는 사람(먹덧)이 있는가 하면 온종일 멀미와 숙취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두통이 심한 사람도 있다. 나는 이 모든 증상들을 은은한 강도로 조금씩은 다 겪어본 것 같다.
나는 공복시간이 길어지면 울렁거리는 게 가장 힘들어서 출근 전에 무조건 간단한 시리얼이라도 챙겨 먹게 되었다. 빈속에 집을 나섰다가는 출근하는 길이 내내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각종 냄새에 예민해져서 엘리베이터에 배어있는 사람들 땀 냄새나 배달음식 냄새에도 코를 틀어막아야 했다. 평소 잘 쓰고 있던 고급 핸드크림이나 향수 냄새가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한동안 향이 나는 제품은 사용하지 않았다.
임신을 하면 불현듯 이게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이 생길 줄 알았는데 나는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었다. 그저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적절한 시간에 연료처럼 채워주기만 하면 되었다. 반면 먹을 수 없는 것들은 꽤 많았는데, 조미료가 많이 가미된 인스턴트 음식이나 냄새가 강한 음식이 그랬다. 라면, 시판 도시락 등 레토르트 식품은 떠올리기만 해도 울렁거렸다. 김치도 초기 2개월 간은 거의 먹지 않았다. 며칠 만에 식성이 종잡을 수 없기 바뀌기도 했는데, 들기름 묵은지 볶음이나 미역줄기 같은 반찬을 어제까지 먹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보는 순간 토할 것 같았다. 이런 음식들은 임신 중기가 된 지금까지도 먹지 못한다.
그리고 원래는 동일 메뉴의 음식을 3일 내내 먹는 일도 흔했는데 이제는 같은 음식을 하루 이상 먹지 못하게 되었다. 한 번 먹었던 음식은 쳐다도 보기 싫어졌다. 집에서 국이나 찌개를 만들면 그 음식이 상하기 전에 다 소진해야 하는데, 임신 초기엔 그렇게 하지를 못하니까 2달은 거의 외식, 배달해서만 해결했던 것 같다. (7~8월 가계부를 보니 확실히 외식비가 많이 들었다)
원래 좋아하지 않던 음식(스테이크, 햄버거, 피자 등)이 당기기도 했다. 일단 최근에 먹지 않은 것들을 계속 찾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서 가장 비싼 스테이크(무려 포터하우스!)를 주문하기도 했는데 평소 육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덕분에 호강한다며 기뻐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빵(가운데에 치즈 색깔 한 줄이 들어간 치즈후레시팡이나 보름달)이 갑자기 떠오르거나 엑설런트, 셀렉션 같은 옛날 아이스크림을 찾게 됐다. 그 외에도 치토스, 바나나우유 등등... 기존의 나라면 절대 찾지 않을 고전적인 간식들을 사 먹었다.
유튜브나 임신 관련 커뮤니티에 보면 구토를 심하게 하는 임산부들도 많다. 입덧이 가장 심했던 10~11주 차 정도에 토할 뻔한 적은 꽤 있지만 실제 구토로 이어진 것은 그 이후에 딱 1번 있었다. 입덧이 이제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하고 방심해서 너무 과식한 경우였다. 어쨌든 '욱'하고 물리적으로 올라오는 구역감은 꽤 자주 있었는데 밤 10시 이후에 가장 심했다. 그럴 때는 남편이 온몸을 주물러주고, 소화를 돕기 위해 베개를 조금 높게 하고 잠들었다.
일단 밤이 늦어지면 컨디션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므로 구역감이 심해지기 전에 입덧약을 한 두 알 먹고 빨리 잠드는 편이 가장 편했다. 마침 입덧약이 올 여름부터 비급여에서 급여로 전환되면서 가격이 많이 저렴해져서 다행이었다. 메슥거림이 심한 날은 낮에 입덧약을 먹기도 했는데 그러면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미친듯 쏟아지곤 했다.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이 입덧 시기에는 남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감정적 보살핌을 포함해 돌봄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신은 온전히 여성의 몸으로 겪는 일이므로, 남편의 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임신 중 나타나는 여러 증상에 대해 함께 탐구해 나가야 하고, 정서적으로 공감해야 하며, 솔루션을 찾고 같이 해결해야 한다.
초기 2달은 음식 냄새 때문에 요리와설거지, 쓰레기 버리기를 모두 하지 못하는 바람에 내가 못하는 건 남편이 다 도맡아서 해주었다. 내가 소화가 안 될 때면 남편은 만사 다 제쳐두고 마사지와 위로(?)에 전념했다. 고생하는 나를 위해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라면서 표정 하나 구기지 않고 지원해주는 남편 덕에 나는 언제든 부담 없이 내 상태를 공유하고 이런저런 도움을 구할 수 있었다. 임신은 아내 혼자서만 헤쳐나가는 게 아니라 부부간에 파트너십을 발휘해야 하는 과정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글에서 공유한 경험 또한 나 개인에 한정된 것이고, 입덧,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호르몬의 변화 등으로 인한 감정기복 등 사람마다 경험하는 것들에 편차가 많다. 나는 임신 후 정서적으로 그나마 안정된 편에 속하지만, 주변에서는 임신 후 우울감이 심해 계속 울음이 터졌다는 경우도 있었고, 임신 후 변화하는 자신의 몸이 싫어 자기혐오가 깊어졌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경미하게 앓고 지나간 임신 소양증을 온몸으로 극심하게 겪어 괴로워한 사람도 봤다.
임신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임신은 꽤 길고 지난하고 외로운 과정이라는 것이다. 남의 임신은 훅 지나가는 듯했지만 당사자에게 임신이란 그 기간 동안 나의 삶 또한 잘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임신 관련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 등이 많이 개선된 듯 보이지만, 임산부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들에 비해 주어지는 혜택이란 터무니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직장에서는 100% 활용 가능한 인력이 아니라는 점에 눈총을 받는 일도 흔하며, 대중교통 임산부석이나 임산부 전용 주차공간에 대해서도 세간의 부정적 피드백이 만연하다.
이제부터라도주변에서 임신한 사람들을 본다면 관심과 배려,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