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기억에 남는다. 왜냐하면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고, 고독하고, 몸도 아프고, 게다가 돈까지 없던 쌩 가난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블로그따윈 안 쓴다며 고집을 부리다가, 뭐랄까 일명 바닥을 쳤구나(!)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자, 절로 글이 쓰였다. 이걸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토해내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2020년 9월 오늘까지 블로그를 쓰게 될 것이라곤. 그리고 이 블로그 덕분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시도해볼 수 있게 되고, 덕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고, 사업이 확장되고, 더 나아가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알았을까? ㅎㅎㅎ
네이버 블로그. 이글루스. 그리고 브런치까지...
사실 블로그라는 것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미 호기심이 왕성한 본인은 (당시 중고등학생)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했다. 원래 일기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썼었기 때문에, 글 쓰는 것 자체에는 어려움이 없었고 다만 이를 공개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동시에 짜릿(!) 했기 때문에 즐겁게 운영했다. 다만 "파워블로거"라는 단어가 생기면서 점점 못생겨지는 블로그와 변질되는 여타 블로거들을 바라보며 이질감을 느끼고 다른 플랫폼으로 이사했다. 당시 이글루스라는 플랫폼이 네이버와 다르게 깔끔하고, 이쁘고, 무엇보다 좋아하던 '스노우캣' 쥔장님 글을 구독할 수 있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IT 세계에서 이글루스는 말 그대로 차디찬 이글루스처럼(...) 아는 사람만 방문하는 그런 썰렁한 곳이 되어버렸고... 난 또다시 블로그 유목민이 되어 떠다니다가, 이쁘장하게 생긴 (다음-카카오의) 브런치를 2016년 발견한 것이다.
컨셉은. 무. 조. 건. 줜나 솔직하게 쓴다.이다.
내가 하는 일의 99% 이상은 "어떻게 하면 이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좋아요! 공유!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유저들이 좋아할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트렌드를 알아야 하고, 일명 핫! 해야 하고. 이게 뜨겠구나! 하는 감이 좋아야 한다. 그게 일이 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내가 작성하는 글이. 제작한 콘텐츠가 설상 그것이 일기일지라도 내가 좋아서 쓴 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이런 글을 좋아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쓴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본인 자신이 지긋지긋했고, 사업도 때려치웠으니, 정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 몰라라-! 마음대로 쓰자! 썅! 을 외쳤다. 썅-마이웨이를 나의 신조로 굳게 삼으리라!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 를 외쳤다.
그래. 이거야!
그래서 그렇게 솔직하게 썼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글을 쓰면 사람들이 나의 글을 좋아요도 눌러주고. 공유도 해줄 거야...라고 쓴 글 있다. 꽤 (많이) 있다. 하.... 여기만큼은 절대로 마케터인 자아가 들어오지 못하게끔 철벽방어를 하려고 했는데 먹고 살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물론... 초창기 글은 10000% 솔직한 글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다시 돌아가서 읽어도 재미있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의 유랑은 끝났다" 제목의 이 글이 참 마음에 든다. 너덜너덜한 마음을 주어 담으면서 쓴 글인데 다시 읽으면서 그때 생각이 나서 코가 시큰했다. 그때의 기록을 다시 읽으면서 난 현재 얼마나 튼튼해졌나. 나 자신과 용서했나. 다시금 알게 해 주는 참 고마운 기록이다. 이런 너덜너덜한 기록들은 몽땅 세계여행이 피곤해 매거진에 넣어두었다. 가장 솔직한 기록들이다.
그렇게 외롭고 절절한 일상들을 기록해나갔다. 당시 정말 돈 한 푼이 귀했기 때문에 내가 한 달간 썼던 비용을 항상 정산했는데, 그 기록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매번 공유했다. 지금도 베를린 한 달 50만 원 기록을 보면 참 놀랍다. 참 징했구만. 허허.... 이러한 떠돌이 생활비 기록은 나의 집은 어디인가에 최대한 자세히 기록을 해두었다.
나의 절절한 기록이 비록 화려함은 없어도 워낙 진솔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브런치가 초창기였던것도 도움을 준 듯하다. 구독자가 서서히 늘기 시작했고. 댓글을 통해서 친해진 몇몇 이웃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치앙마이 셰어하우스와 같은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용기를 얻어 시작하게 된 것이다.
프로젝트에서 사업으로.
파트너에서 남편으로.
치앙마이 셰어하우스라는 6개월에 걸친 실험은 뭐 금전적으로는 물론 실패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성공! 초대박! 이 아니었나 싶다. 외롭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이 그립다는 등~ 난리를 치면서.. 아 그래 나에게 필요한 건 바로 사람이야!! 커뮤니티라고!! 해서 막상 프로젝트를 시작하니까. 어라? 현타 오는데? 이 사람은 좋은데. 저 사람은 너무 싫어! 등등의 한계에 제대로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다. 근데 이게 왜 초대박 이냐고? 이를 통해서 현재도 진행하고 있는 사업 그리고 남편을 얻었기 때문이다. (....) 그때의 생생한 흔적 역시 여기 치앙마이 코리빙 하우스 매거진에 기록되어있다. 블로그를 통해서 첫 프로젝트였던 셰어하우스를 홍보할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된 것이다. 게다가 그 남편과의 프로젝트인 노마드코더의 첫 시작도 바로 브런치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그래도 기록은 계속된다..!
비록 세계여행은 끝났어도. 여전히 모험은 계속되었다. 외국인 파트너 (=현 남편)와 사업(=노마드 코더)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지금에야 수강생 4만 명의 의젓한 사업체(!?)가 되었지만. 당시에만 해도 그저 프로젝트 수준이었고, 여전히 생활비가 저렴한 국가를 찾아 방황하는 노마드였다. 다른 점은... 그래도 기본 생활비는 어느 정도 벌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12개월 12개 프로젝트 혹은 얇고 짧은 탐구생활 등을 통해 계속 실험을 해보고. 그걸 기록해두었다. 떠돌아다니면서 얻게 되는 개똥철학(?)과 상념 등은 이름도 거창한 자유에 대하여 에 기록을 해두었다.
내가썼지만 명언인듯.
그렇다. 결국 이 브런치에는 4년간의 내 인생이 담겨있다.
물론 남들이 살펴보기엔 전혀 읽기 편하지 않고. 제멋대로 흩어져있지만. 적어도 글을 쓴 나만큼은 이 기록들 덕분에 내 인생에서 가장 격동기였던 이 시기의 기록을 온전히 다시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215개의 글 속에서 말이다. 그래서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 게다가 이 기록을 무려 4,308명이 함께 읽어보았다니 정말 대단하다. 누군가에게는 한 줌의 위로가 되었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의 글이 일명 핫 하지 않다고, 남보다 구독자수가 적다고, 혹은 이제 홍보할 것이 없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브런치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 수상한번 해본적 없다.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되어서 브런치팀에게 고맙다. 사실이었다.
You can do anything by writing.
앞으로 4년도. 그래서. 계속 개-썅-마이웨이로 잘 써야겠다.
오늘의 결론이다. 솔직하고 솔직한 기록. 잘 나가는 잘난 척 기록들보다. 망해서 쓰라린 기록들을 위주로 더더욱 자주. 솔직하게 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앞으로 4년간 계속 쓸 수 있도록 브런치도 힘을 좀 더 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