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그리고 걷는 나 - 10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모임을 가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던 같은 과 친구들의 모임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낯선 환경에서 함께 지냈던, 그래서 더 끈끈했던 인연들이다.
이 모임은 의미 있는 대화보다 의미 없는 웃음이 더 중요한 편안하고 자유로운 자리였다.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느라 오랜 시간 서로 멀어졌지만
이제는 자식들도 제법 커서 손이 덜 가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만남이 정해졌다.
비록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세월이 흘러도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어제 본 사이처럼 정겹고 반가웠다.
장소는 북적이는 주말의 카페.
우리는 구석 자리에 둘러앉아 각자 차를 시키고, 사람들의 소란스러움 속에 수다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시계 초침보다 빠르게, 추억이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야, 너 그거 기억나?”
“뭐?”
“그 왜 있잖아. 우리 3학년 때 자주 가던 노래방, OO노래방! 기억 안 나?”
“아~ 그 정문 앞에 있던 거!”
“우리, 강의까지 땡땡이치고 거기 가서 노래 불렀잖아.”
“맞아. 넌 노래 부르다 울기까지 했지.”
“나만 울었니? 너네도 다 같이 울어놓고선.”
다 함께 깔깔 웃는다.
“야, 거기 아직도 있어?”
“몇 년 전에 학교 근처 지나가다 봤는데, 간판만 바뀌었더라.”
그리고 누군가 말한다.
“넌 노래방 가면 꼭 <목로주점> 불렀잖아.”
맞다.
이연실의 <목로주점>은 내가 유독, 아니 진심으로 사랑했던 노래였다.
왜 그 노래에 그렇게 꽂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엔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동 예약되는 곡이 되어 있었다.
“우리 그때 울면서 불렀던 곡 뭐였지?”
“가질 수 없는 너! 뱅크 노래 말하는 거지?”
그날도 강의를 빼먹고 노래방에 가서 짝사랑 중이라는 친구 핑계를 삼아 다 같이 울며 불렀던 기억이 있다.
대학 3학년이던 우리.
가끔 모든 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노래방으로 향했다.
학교 앞 호프집에서 맥주로 목을 축인 후, 노래방 벽에 기대어 앉아 <목로주점>을 불렀다.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그때 내 옆엔 항상 두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파트까지 정해 가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 실력이 썩 뛰어나진 않았지만,
마지막 소절 ‘그네를 탄다’에서는 괜히 고개를 까딱이며 화음을 넣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조금 웃긴 모습이지만 그 노래가 흘러나오면 왠지 우리가 가장 멋진 친구들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지긋이 미소 짓던 그 순간들.
그 시절이 다시금 그리워졌다.
이번 모임에서 오랜만에 그런 이야기를 꺼내고 나니 마음 한 편이 따뜻해졌다.
30년이 흘렀어도, 그때의 나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다음엔 진짜 노래방 가자. <목로주점>도, <가질 수 없는 너>도 다시 부르자.”
우리는 다 같이 외쳤다.
“오케이!!”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그 시절 그 노래들을 다시 들어봤다.
이제는 울지 않고 들을 수 있었지만, 그 노래들은 여전히 내 청춘의 배경음악이었다.
이연실의 <목로주점>이라는 제목만 보면, 자연스레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두 작품은 정반대의 정서를 담고 있다.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은 19세기 파리 빈민가의 술집을 배경으로 인간의 나약함과 사회 구조의 폭력성이 만들어낸 비극을 그리고 있다.
반면, 이연실의 <목로주점>은 삶을 마주 앉아 웃고 울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술집을 노래한다.
크고 둥근 잔에 술을 따르고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긴 가사 속엔
청춘의 꿈과 낭만, 우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노래 속에서, 그 시절 나와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
오랜만에 멋진 친구들을 만나 하하 호호 웃고, 다음엔 노래방도 가고, 여행도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
이제 내 삶의 신호등은
빨강도, 노랑도 아닌
오래도록 깜박이는 초록불이다.
그리고 나는 그 초록 신호등을 따라
나로서, 나답게, 멋지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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