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를 시작하면서 70, 80년대 어릴적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니 여러 모습의 추억을 숨겨 놓은듯 그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다면 유치한 표현이라 하겠지만 그 이상 적절함도 없을 것 같다.
바다를 고향으로 둔 모든 이가 나와 비슷하였을까!
유년시절 추억속, 젊으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하루 종일 뱃일로 지치고 고단했던 하루를 달래기 위해 길거리에 늘어선 대포집에서 비슷해 보이는 아저씨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계신다. 6살도 안된 어린 나는 그 옆을 영문도 모른채 지키고 있었고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가득찬 술집엔 비슷한 차림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 나에게 백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어준 나의 아버지는 막걸리 한사발에 안주 삼아 내 뱉으시던 말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라는 말을 이해하기도 이른 어린 나이에 나는 그 말을 기억에 각인해 버렸다.
과거, 캠핑이 아니어도 사람 냄새 풀풀나고 사는 맛이 있었다.
갑자기 왜 기억났을까!
유년시절이라 이해 할 수 없었던 말이었고 그 후론 들어본적 없던 말이였으며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말이였는데 잊혀지지 않은채 되새김하듯 새삼스럽게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님의 소득이 많지 않았던 유년시절은 누구랄것 없이 부족함이 많았기에 고단했던 삶의 애환을 달래거나 부족함을 메우려는듯 이웃간의 정은 어느때 보다 풍성했다는 것을 오랜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어느날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유년시절을 기억나게 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중국 여행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중국 어느 지방인지 알수 없으나 작은 집성촌에서 이웃끼리 밥을 함께 먹기위해 밥그릇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보여진다. 다된 저녁시간, 분주하게 주방에서 국수인지 밥인지 서로 각기 다른 밥그릇을 들고 편한 차림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는 모습은 참 인상 깊었고 되새김하듯 반복되며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의 유년시절에도 비슷했던 기억이 있었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지만 70년대 중반쯤 내가 채 6살도 않된 기억속에 방송에서 본 모습과 비슷하게 저녁시간이 되면 집밖 평상에 앉아 이웃과 서로의 안부를 묻듯 건네보며 저녁 밥을 먹은 기억이 지난 세월 만큼이나 흐릿 하지만 남아 있었다.
이웃간의 정은 그뿐만이 아니다.
뱃사람의 아내로 살아가는 어머니 또한 부둣가에서 밤이 늦은줄 모르고 일을 하고 계시고 아이들만 남아있는 집에선 배고픈 아이들이 돌아올 부모만을 기다린다. 전화도 tv도 귀했던 시절, 어떻게 알게되었는지 앞집 아주머니께서 아이들에게 밥 챙겨주시러 오셨다. 그 시절엔 이웃간이 정이 차고 넘쳤다.
그런후 오래시간이 지나 불쑥 생각난 그 말,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라는 말은 현재 내 모습을 두고 했던 말인듯 싶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며 경제적 형편은 좋아졌지만 이웃간의 정은 유년시절과 비교했을때 나무 한그루 살기 어려울 만큼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는 내게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지만 그때서야 이웃사촌 의미를 다시 알게 되었고 예전처럼 살가운 이웃사촌과 함께 할 수 있을때나 쓸수 있는 말이란 것을.....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일은 하는지, 같은 아파트, 주변에 살아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나의 이웃들...
그들을 이웃이라고 하기엔 너무 먼 길을 지나온 듯한 나는 2020년을 지나 2021년에도 이웃과 멀찌감치 물러서서 마주하기 조차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세상은 사람보다 물질이 우선하는 사회로 빠르게 변하였고 살아남기 위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자신을 무장하며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 소득이 높아지고 물질은 풍요로워진 현재는 이웃과 더불어 살기보다는 이겨야 살수있는 경쟁자로 각박함과 무관심으로 이웃과 벽을 쌓고 섬처럼 혼자만의 삶을 살고 있다.
어느덧 과거는 잊은채 물질의 풍요속에서 느끼는 빈곤은 각박함으로 숨이 멎을것 같아 그제서야 주변과 이웃과 공감하고 소통하길 원하지만 그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현재, 급하게 접어달린 30년엔 이웃은 없고 섬으로 남았다.
사방이 막힌채 높게 쌓아 올린 콘크리트 벽에 둘러쌓여 살아가는 나의 삶은 괜찮은 것일까!
인간은 단순히 잘 먹기만 한다고 건강하게 살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과 소통하며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식하며 살아야 건강한 삶을 살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을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적 동물이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게 되는것 같다. 어릴적 유년시절엔 추위와 더위뿐 아니라 부족했던 의식주로 몸이 힘들었지만 부족함을 서로 나누는 이웃의 정이 있어 마음은 건강하게 살아 갈수 있었다면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현재, 의식주는 풍족해졌으나 사방이 막힌 콘크리트 벽에 갖혀 이웃은 없고 섬처럼 살아가는 삶에서 몸이 아닌 마음은 건강한 것일까?
넉넉하고 풍요롭기 위해 선택한 현대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웃을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는 경쟁을 선택하면서 더욱 큰 섬으로 살게 되었으나 알지 못했다.
20년 이상을 이어온 직장생활, 여러해 동안 동고동락하며 함께 먹고 함께 웃던 지난날 형과 동생 그리고 친구로써 가족이란 표현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들은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으로 우리의 곁을 떠났다. 이후 그들은 더 이상 나를, 나 또한 그들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떠나 보낸 그들과 정을 나눌 기회는 더 이상 오지 않았으며 속절없는 시간이 흐른 현재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낯설고 흐렸다.
무엇이 부족하였던 것일까?
경쟁사회에 내몰린 현대인들의 삶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족함을 메워주는 이웃이기 보다는 살아 남아야하는 경쟁상대로 내몰려야했고 그나마 이해관계는 나누었지만 긴 시간동안 쌓아올린 높은 장벽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풋풋한 사람 냄새나는 정을 나누지 못했던 것일까!
아침일찍 출근한 직장에서 퇴근까지 8시간 이상을 함께했던 동료들,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오랜시간 함께했던 시간은 그들을 이웃사촌으로 여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으나 떠나보낸 자리는 빠르게 메워졌고 바쁜 일상에 치여 함께했던 기억마저 새까맣게 잊은채 서로가 만든 섬에서 낯선것도 잊은 채 살게 된 것이다.
30년을 넘게 접어달린 어느날, 문뜩 50대로 살고 있는 현재가 낮설게만 느껴진다.
그제가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건 변함이 없는데 오늘 문뜩 지나온 시간들은 마치 잃어버린 기억인듯 아련하고 아득해진다. 친구, 회사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버킷리스트로 줄을 세우던 20대의 수 많은 밤과 그렇게 맞은 푸른 새벽의 20대 직장 새내기 시절의 친구와 동료들을 보내고 주름잡힌듯 달려온 30년의 세월은 자신이 지나온 길이 분명하지만 추억의 끝을 붙들고 있는 스스로는 50대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낮설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접어 달린 30년 속에는 학교 친구가 있었고 직장동료가 있었으며 이웃과 더불어 자기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쫓기 듯 살아온 일상은 늘 시간이 부족하였고 나와 이웃을 보낸 댓가로 얻은 풍요로움으로 그들로부터 채워졌던 가슴 한 곳에 텅 빈자리는 더이상 채울수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되었다.
그렇게 섬이되어 말라 비틀어진 가슴에 메마른 갈증은 섬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만 느끼는 것일까?
미래,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회색빛 빌딩숲에 갖혀 살아온 30년 동안 나의 일상은 이웃도 없었고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없었다.
더욱이 앞으로 감당 할 일의 양이 커질 일상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가치는 더욱 내 삶과 동떨어진채 스스로의 선택이 아닐지라도 현대인의 일상을 살게 되면서 이웃사촌의 의미는 오래전부터 나의 삶에서 무미건조했을뿐 아니라 그 시간이 지속되어 가는 동안 사람 냄새는 잃어버린채 더욱 메마르고 비틀어져 스스로 삶의 가치를 포기하게 될 순간까지 오게 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 해 온다.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지만 부족함이 많았던 시절의 서로를 배려하고 보듬어주던 사람의 손길이 그리워지고 더 이상 주변엔 사람이 아닌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여 섬으로 살아갈 수 없기에 답을 찾아 나선다.
<<자연, 살아있는 동안의 혜택>>
먹고, 자고, 쉬다... 자연의 쉼터는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깊고푸른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물고기와 가을 들녁에 수확한 곡식 그리고 농장에서 기른 가축들, 흙과 돌로 그리고 나무로 지은 집에서 배부르게 먹고, 등 따신 편한 잠으로 몸을 쉬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으로 얻은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다.
보고, 놀고, 마시고, 맡고, 느끼다...
눈이 만든 새하얀 세상에 주인들이 밟아 놓은 가지런한 발자국에서....
새해 아침 동트는 새벽의 장엄한 동해의 일출에서....
대지의 휴식을 알리는 서산 넘어로 쉬엄쉬엄 너머가는 저녁 노을에서....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에 맞서 부서져 날리는 모래 언던에서...
단풍이 짖게 물든 늘가을 툇마루에 걸터앉은 풍경에서...
눈을 감아도 눈시울 붉어지고 부여잡은 가슴은 주체 할 수 없을 만큼 뛰게 되고 온전한 삶으로 살아있는 가치를 자연을 통해서 느낄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혼자서는 살수 없다, 이 말의 상대는 사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돌을 비롯하여 나무 그리고 동식물까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말로 해석 할 수 있다. 메말라 비틀어진 감성은 오롯이 사람뿐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도 풍성하게 채울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자연에 감사하고 온전히 지키는 방법으로 지금보다도 자연과 더욱 가까이서 보고 느끼는 방법을 찾았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더불어 사는 정과 맞바꾸고 얻어진 풍요로움은 오히려 사람간의 정뿐 아니라 사람들의 감성까지도 흙먼지 풀풀나는 메마른 황무지로 변화시켰다.
비틀어질대로 비틀어져 메말라가는 이웃간의 정,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인 섬에서 그나마 버틸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 냄새로 가득한 곳으로 매주 캠핑을 갈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주보는 사람, 어쩌다 보는 사람, 처음보는 사람이 뒤섞인 주말 캠핑에서 1박2일 혹은 2박3일은 메마른 대지에 내리는 단비와 같이 나를 사람 냄새가 풀풀 나도록 적셔주었다. 후질근한 사람 냄새 풍기며 잡아주던 두꺼비 같은 두 손은 격려와 배려로 따뜻하였고 위안을 주고 받았다. 서툴지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줄수 있는 곳, 그렇게 사람 냄새 풍기며 뒤섞여 함께한 캠핑은 메마른 섬에서 탈출 할 수 있는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아이들은 입시의 부담에서 잠시나마 벗어날수 있었고 맞벌이인 나는 바쁜 일상을 내려놓는 시간으로 우리가족에게 캠핑은 매주 기다려지는 즐거움중 하나가 되었다.
캠핑은 우리가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사유할 수 있는 도구로 공간으로 쉼터로 충분하였기에 현대인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
가족과 친구와 직장동료들, 그들과 함께 어쩌다 캠핑은 시작되었고 함께 나누며 공유하는 동안 이미 전국은 캠핑 열풍으로 뜨거운지 오래되었을뿐 아니라 초대받지 못한 방문객으로 모두가 힘들어하는 현재까지도 그 열기는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