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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미완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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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30. 2022

미완

2017






목요일 수업의 마지막인 CA 시간이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제각기 어울려 자신의 부서를 찾아갔다. 미술부는 미술실, 밴드부는 공연실, 합창부는 강당, 축구부는 운동장……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제일 기피하는 부서 1순위로 꼽히던 문예부는 국어교사가 담임인 2학년 1반 교실에 모여야 했다.

독서나 글쓰기에 별 관심은 없었지만 이동하기가 귀찮다는 단순한 이유로 윤새와 친구 몇몇은 문예부를 선택했다. 그러나 자신의 일상에서 생경하고 특별했던 경험을 수필로 적으라는 교사의 말에, 그들은 첫날부터 CA 부서 선택에 후회를 느꼈다.


일상에서 생경하고 특별했던 경험?

그게 뭐람.


밝은 햇살에 청록으로 빛나는 칠판에 쓰인 하얀, 글씨가 머리를 어지럽히는 듯 느껴졌다. 눈앞이 막막했다.


감성이라고는 없는,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드러내기에 주저함이 많고 서툰, 그저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하라는 공부만 하며 살았던 평범한 학생들은 그 글쓰기 주제에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일찌감치 포기하고 쑥덕거리거나 만화나 그리기 일쑤였다. 윤새도 마찬가지였다.

봄을 느낄 수 있었던 첫날, 다정한 햇살이 하나하나 모양도 가지고 있는 생각도 다른 머리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조용한 교실에서 샤프나 연필이 슥삭슥삭 움직이는 소리만 일정하게 들렸다. 글쓰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지만 윤새는 턱을 괸 채 한참이나 창밖만 보고 있었다. 글 쓰는 시늉은 해야겠는데 쓸 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샤프를 돌리며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고작 쓴 것이라고는 일상, 경험, 그리고 물음표 여러 개, 적막하고 지루한 가운데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마저 생경하게 들렸다.


한 아이만은 달랐다. 아이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는 교실에서 혼자 멀찍이 앉아, 자못 진지한 태도로 신중한 표정으로 글을 쓰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윤새는 낙서나 끄적이던 것도 잠시, 무언가를 쓰면서 눈을 빛내고 있는 그 아이의 옆모습에 새삼 감탄하고 있었다. 종알종알 떠들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한참을 바라봤었다. 지그시 아래로 향한 속눈썹, 청량하고 맑은 봄 하늘로부터 내리쬐는 눈부신 햇살을 받아 빛나는 갈색 머리, 청록색 연필을 손에 쥐고 서걱서걱 써내려가는 손, 온정신을 글에만 집중해 구부러진 등허리, 연필 자국이 묻어 새까매진 팔뚝까지.

왜 그렇게 한 사람의 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인지, 언제부터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는지 모르게 윤새는 벌써 그 아이의 글을 상상해보고 있었다. 저렇게 진지한 태도로, 결연한 눈빛으로 써내려간 글은 무슨 내용이며 어떤 느낌일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소중이 여기는 한 가지에 정신이 팔려 세상을 거침없이 등지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은.


“선생님, 저 써봤는데요. 한 번 봐주세요.”

“그래? 역시, 서군이는 선생님이 항상 기대를 하지.”


언제 그렇게 진지했었냐는 듯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선생님께 노트를 내미는 아이는, 그제야 제 또래 같아 보였다. 연필을 힘 있게 쥐고 글을 쓰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수줍어하는 아이는 긴장과 기대를 안고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좋다. 선생님은 서군이가 계속 이렇게 꾸준히 글을 써줬으면 좋겠어.”

“감사합니다.” 아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왜냐면 선생님이 서군이 글을 보면서 다 행복해지는 것 같거든. 글에 서군이가 느낀 감정들이 다 묻어나는 게 느껴져. 서군이 너는 시를 써도 잘 쓸 것 같은데.”

“시요? 제가 어떻게 시를….”


아이는 선생님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면서도, 올라가는 입 꼬리를 감출 수 없어 고른 이를 다 드러내며 웃었다.


그렇게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미소는 처음 보았다. 제 또래뿐만 아니라 어떤 어린아이에게서도 그런 류의 순수함은 보지 못했는데, 그 아이는 그걸 가지고 있었다. 소중히 여기는 것에만 순수하게 몰두하는 그 기쁨. 그리고 그 기쁨에서 우러난 천진한 웃음. 눈부신 얼굴이었다.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그 아이는 도망치듯 짐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갔다. 한 번 말이라도 걸어볼까 싶었는데 제게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듯 뒤돌아서는 모습에,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엔 한 번 꼭 말을 걸고, 물어보고 싶었다.

대체 어떤 글을 쓰면 그렇게 온몸에서 빛이 나 보일 수가 있느냐고.       




       


윤새는 목요일 CA 시간을 기다렸다. 그 시간만을 기다리며 학교를 다닌다면 과언이겠지만 그 시간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글 쓰는 아이가 눈에 밟힌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글쓰기에 지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아이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제 일상 중에서 가장 당연한 하나가 되었다.

그 아이를 찾아서 쉬는 시간마다 온 교실을 다니다가, 건물 끝에 자리한 7반에서 서군을 볼 수 있었다. 교실 창가 제일 뒷자리. 서군은 그 자리에 앉아서 턱을 괴고 창밖을 보거나 글을 쓰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 아이가 서걱서걱 글 쓰는 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원래 제 성격대로라면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말을 걸고 장난치면서 다른 애들과 같이 친해질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겉보기에도 그 아이는 다른 애들과 조금 달랐다. 서군은 글쓰기나 사색을 좋아하는 성향 그대로 조용하고 숫기도 없고 애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걸로 보였다. 반에 한 명씩은 있는 짓궂은 애가 서군에게 다가가 장난기 어린 시비를 걸면 쬐려보고 짧게 대꾸할 뿐 응하지 않았다.

사실은 저도 저렇게 장난스럽게 편하게 다가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난감했다. 다가갈 구실도 없는데 다가가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어떡한담.


결국은 목요일을 기다리는 중에도, 문예부 시간에도 윤새는 그 아이에게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남다른 아이에겐 남다른 접근이 필요하단 걸 느꼈는데 도무지 제 머리로는 그걸 생각해낼 여력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조금은 착잡해지기도 했다.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생겼지만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모르고, 선뜻 나설 용기와 천진함이 제게는 없다는 사실에. 할 수 없이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수밖에. 그저 글을 쓰면서 온몸으로 행복한 기운을 뿜어내는 서군을 보며 저도 글쓰기를 시도해볼 뿐이었다.


“뭐야? 네가 웬일로 글을 쓰고 있냐?”

“다 쓰면 내가 아나운서 돼가지고 읽어드림. 방송실 가서 읽어줄까?”

“아, 꺼져. 그냥 일기라도 써보는 거니까.”

“허얼, 윤새 언니가 꺼지래. 존나 무서워, 큭큭.”


애들은 저를 놀리는 데 잠깐 맛을 들였다가 금방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만화책을 보기 시작했다. 윤새는 다시 조용히 펼친 노트에 시선과 마음을 집중하려고 애썼다.


일기도 수필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기라도 쓰기 위해 어제 일을 세세히 떠올려봤지만, 특별히 적을 만한 일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가고, 수업 듣고 점심 먹고, 수업 듣고 종례하고 집에 가서 밥 먹고 학원 가고,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게임하거나 TV 보고…. 또래 애들이라면 거의 비슷한 일과를 저 또한 의식 없이 이행해나가는 것에 불과했다.

문득 절절한 무력감이 들었다. 그 주제로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삶이라도 그 면면은 분명히 다르고 특별한 점들이 있을 텐데, 그걸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없었다. 자신의 삶을 보는 시각의 나이가 어리고 조급하기만 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에라이, 재미없는 인생. 생경하고 특별한 경험은 무슨. 나한테 그런 게 뭐가 있겠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낙서하던 종이를 뜯어내고 구겨버렸다.


굳이 떠올려보자면…… 윤새는 슬쩍 고개를 돌려 서군을 쳐다보았다.


딱히 갈 명목도 없는 7반 교실을 지나치며 가끔 저 아이를 보러가는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제게 특별함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이전에 없었고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라는 걸 생각해내면서 그랬다. 첫날 본 그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리는 것도 이상하지만, 매주 목요일 이 시간만을 어느새 기다리고 있는 제자신도 부끄러울 만치 이상하니까.

자신이 생각했던 특별함은 이상함이 되어 있었다. 특별함과 이상함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저 아이는 특별하고, 그런 아이를 보는 자신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양면이 맞닿아 있어 뗄 수 없는 제 일상이 되어있었다.


윤새는 가끔 밤에 몰래 글을 써보기 시작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하루를 써내려가는 일기나 생각을 적는 것이었다.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해보고 싶어졌고, 써보지 않은 걸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아이 덕분이라고 윤새는 생각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쓰는 재미를 조금씩 느꼈다. 그 이유는 글 속에 그려내는 그의 주인공이었다. 다가갈 수 없어 상상으로 만들어낸 그의 주인공. 글 속에선 제게 수줍은 미소도 보여주고 한 편의 시도 보여주는 해맑은 아이.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그려내고 싶었던 그 모습과 처음 느껴본 인상, 따듯한 교실 한 구석의 정경, 그리고 함께 그 속에 어우러지는 그림이 되는 두 사람의 모습. 글자를 빌려 그려내며 제 마음에 더욱 새겨지고 피어나는 아름다운 한 장면.          





         

무료한 마음을 달래보려 건물 끄트머리에 있는 7반 교실로 일부러 향하던 길이었다. 그런 날이 윤새에게는 숱하게도 많았다. 셀 수도 없이. 보통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별을 볼 때라고 하지만, 한 번도 셀 수 없이 많은 별을 본 적이 없었다. 제게는 셀 수도 없이 그 아이가 떠오를 때가 더 많았다. 떠오를 때마다 그 아이를 보러 갔다면 아마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자신은 그 아이를 특별하게 생각하지만.

가끔은 그 사실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다가가기란 이미 늦었다는 것도. 종종 복도에서나 문예부 시간에 마주치면 어색하게 시선이 부딪치고 접점도 없이 멀어지는 순간 또한 무수히 많았다.


차라리 처음 봤을 때 용기내서 말을 걸어볼 걸 그랬어.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었을까?


자신은 누구든 금방 친해지고 잘 어울리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애에 한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무척 의아하고 이상했다.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도 이상하다고 느끼는 점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 아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의 존재의 크기도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어떤 말도 건넬 수 없고 어떤 좋은 글도 써낼 수가 없어서, 자신이 너무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7반 교실은 체육시간인지 체육복을 갈아입느라 교실이 분주했다. 교과서를 빌린답시고 어중간하게 말을 트고 친해진 애를 벌써 몇 번이나 찾아왔다.


“치매 걸렸냐? 왜케 맨날 교과서를 집에 두고 와?”

“그럴 수도 있지. 야, 눈꼴 시리니까 얼른 체육복이나 마저 입어.”

“알았어! 내 책상 서랍에서 꺼내 가.”


교과서를 빌려주는 친구의 책상은 서군의 바로 앞자리였다. 그래서 교과서 빌리는 구실로 올 때마다 서군을 슬쩍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은 잽싸게 나갔는지 자리에 보이질 않았다. 윤새는 아쉬운 마음에 입술을 삐죽였다.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있으면 그날 하루가 다 좋았는데. 좋은 기억으로 연습장에 써둘 수 있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교과서를 꺼내 가려던 순간, 책상 아래 떨어진 종이 한 장이 보였다. 그 아이의 글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글씨체도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윤새는 주위를 살피다가 날쌔게 종이를 집어서 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 교실을 빠져나와 인적 없는 위층 복도로 갔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올라갔지만 운동장을 몇 바퀴는 뛴 것처럼, 가슴이 터질 듯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주머니에 넣어 숨기느라 꾸겨진 종이를 조심스레 펴보니 정갈한 글씨체로 시 한 편이 쓰여 있었다.  

   

차마 실체로 볼 수 없다

   널 마주할 기백도 없다

   어둠 뒤로

   내 어둠 뒤로

   가려진 너의 그림자

   빛줄기

   그 허상만 뚫어질 듯

   바라볼 수밖에 없다」     


윤새는 몇 번이나 그 시를 읽고, 소리 내어 읽고, 곱씹으면서 몇 번이나 더 읽었지만 이내 허탈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너와 함께해야 그 글을, 그 글을 쓴 이를 이해하고 오롯이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아마 영원히 그럴 수 없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소중히 간직하기로 마음먹은 그 시를 재킷 안주머니에 접어 넣으면서, 아무리 바라보아도 감히 가까워질 수 없을 거란 서글픈 예감에 발걸음조차 무거워졌다.


교실로 돌아가며 저를 비추는 햇살에 선명한 그림자가 뒤로 자리했다. 그림자는 서슴없었으나 제 마음은 요동쳐 발걸음도 흔들리고 있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네모난 창살의 그림자에 인영이 끝도 없이 갇히는 듯했다. 교실로 돌아와서 제 자리에 앉아서야 그 흔들림이 조금은 먹먹하게 끝이 났다.


           


       


체육대회가 열려 한 주를 빠지고, 사설 모의고사를 본다며 한 주를 더 빠지는 바람에 문예부가 모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교실 안은 정리가 안 되어 있어 어수선한데다, 문예부 담당인 국어교사가 출장으로 빠져서 더욱 분위기가 흐트러져 있었다. 애들은 TV로 영화나 보자는 둥 밖에 나가 축구부 애들이랑 놀자는 둥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결국은 보드게임이나 하자며 상담실에서 보드게임을 빌려와 판을 벌였다. 서너 명씩 나누고 어울려서 게임을 하는데, 윤새는 그 애가 신경 쓰였다.


서군은 다른 애들이 놀든 말든 거리낌도 없고 신경 쓰지도 않고, 평소처럼 예의 그 집중하는 자세로 앉아서 묵묵히 글을 쓰고 있었다. 부쩍 키가 자라고 있는지 굽힌 등허리가 더 휘어지고 고개도 더 깊숙이 숙이고 있었다.


윤새는 그날 이후로 서군을 보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무척 오랜만에 봤지만, 왜인지 전과는 다른 언짢음을 가지고 있었다. 서군은 늘 그대로였는데, 서군을 떠올리고 마음에 두고 있는 기분만 변한 것이었다. 너무도 어리고 서투른 자신을 알았지만, 서군을 볼수록 더 알아가고 있었지만, 그날 마주한 자신의 어리고 서투름에 짙은 무력감과 상실감이 들었고 더는 마주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본심이었다.


이내 서군이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못마땅했다. 못마땅함보다는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이었다.

정작 다가갈 용기도 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주위만 맴돌다가 포기해버렸으면서.


“야, 안서군.”


윤새가 서군을 불렀다. 처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어?”


윤새 스스로도 놀랐지만 서군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대꾸했다.


그 순간 윤새는 무척 크게 후회했다. 이름 세 글자를 그렇게 부르는 게 뭐라고, 이렇게 쉽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왜 그렇게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하고.

하지만 저도 모르게 금세 생각을 바꿔 먹고 있었다. 다가가지 못한 건 내 잘못이 아니야. 쟤도 충분히 나랑 친해지고 싶었으면 다가올 수 있는 거였어. 그런데 쟤는 그러지 않았어. 쟨 나를 아무것도 아닌 애로,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여겼던 거야. 윤새는 혼자서 지어낸 생각들에 스스로 진 것처럼 분해하고 있었다.


“와서 같이 놀자.”


윤새의 언짢음이 목소리나 표정에서 느껴졌는지, 서군은 서둘러 싫다고 대답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바라보고 처음엔 어렴풋이, 이제는 선명하게 떠올리고 혼자서 마음을 키우는 자신이 싫어서 괜한 심술이 났다. 윤새가 성큼성큼 다가가 공책을 뺏어든 건 순식간이었다.


“야, 너 뭔데 맨날 글만 끄적이고 앉았어? 뭐 쓰는데?”

“뭐야, 이리 줘!”


벌떡 일어난 서군이 손을 뻗고 다가왔지만, 윤새는 가져간 공책을 펼쳐 보면서 일부러 심술궂게 굴었다. 꼭 멀리서 봤던, 유치하게 장난치던 알량하고 멍청한 애들처럼.


“너 꿈이 작가야? 소설가? 왜 맨날 찐따 같이 앉아서 끄적거려?”

“뭐하는 거야! 당장 안 내놔?”


소란이 일자 호기심에 달려온 애들이 하나둘씩 손을 뻗고 말을 얹었다.


“뭐라고 썼는지 좀 보자. 궁금해 죽겠네.”

“어어, 뭔데 뭔데, 나도 볼래!”

“나도!!”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서군은 아랑곳 않고, 윤새를 위시한 친구들은 공책을 붙들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오글거린다느니 글이 뭐 이따구냐느니 하면서 서군을 놀리고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서군은 충분히 모욕을 당한 듯 얼굴이 더욱 붉어져 있었다. 그제야 윤새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글을 읽으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매일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찾아오는 이가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다면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알 수 없는 미래가 되는 날 속에서, 어느새 나는 찾아오는 이를 먼저 눈으로 찾고 있었다. 수고하는 발걸음으로 누군가를 찾아온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 기분이 궁금해 나도 선뜻 따라 움직이고 싶었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반대에 서있다. 극명한 반대로 우연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사이. 좁혀질 수 없는 숱한 ‘다름’이 사이에 놓인 사이. 그러나 나는 그 반대에 반(叛)하고 싶다. 그 마음이 무럭무럭 커지고 나면……」   

  

그 글은 꼭 자신을 그려내는 것 같았다. 틈만 나면 그를 찾아 움직이는 수고를 하는 이는 틀림없이 자신일 터였다. 그런 자신을 알고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윤새는 너무 놀라서 모든 사고와 행동이 멈춰버렸다.


그 틈을 타 서군이 윤새의 손에서 공책을 날선 움직임으로 뺏어들었다. 놀란 윤새가 고개를 돌렸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본 서군의 얼굴은 화를 이기지 못한 흥분으로 붉어져 있었고, 눈물이 뚝뚝 떨어져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앙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이 저만을 향해있었다.


윤새는 서군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둘 사이에 ‘처음’이라는 것이 몇 번이나 일어난 오늘임에도 안타까운 순간, 저 또한 눈물이 왈칵 차오를 것 같았다. 저를 바라보는 얼굴에 다양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부족한 어휘력으로 다 떠올려보지 못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감정들. 모욕감, 불안, 자책, 한탄, 괴로움 그리고…… 환멸.


그 순간 윤새는 제 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견딜 수 없는 자괴감과 후회를 느꼈다. 미안한 마음에 어서 사과를 하려고 입을 뗐지만, 서군은 이미 제게 등을 돌려 교실을 박차고 난 후였다. 싸한 적막이 감도는 교실에서 윤새는 몸서리 쳐지게 저를 감싸오는, 그 환멸이 가득한 얼굴을 대하고 느꼈던 수치심에 초점을 잃어버렸다. 저도 모르는 사이 오랫동안 이어진 지지부진하고도 순수했던 날들의 초점은 그 아이였음에도.


글에는 글쓴이의 마음이 드러난다고 했다. 마음의 창인 눈으로 세상을 보며 느낀 상념을 써낸 결과는 그 자신의 허물을 벗겨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윤새는 깨달았다. 자신은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의 소중한 감정을 어지럽히고 허물을 들춰낸 것이었다. 그 아이가 받았을 너무나 커다랗고 무거울 상처에 윤새는 한숨을 푹 쉬며 머릴 쥐어뜯었다.


뒤늦게 교실을 박차고 나가 서군을 찾았지만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차갑고 딱딱한 복도와 계단에는 발자국도 남아있을 리 없었다. 갈만한 곳을 생각해서 잽싼 걸음으로 학교를 뛰어다녔지만 서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자신의 생각으로는 서군의 생각도, 갈만한 곳도, 그동안 갖고 있던 심경과 지금 당장의 것도 알 수 없었다. 사소하지만 특별한 것을 보지 못하는 눈으로는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상처가 해묵으면 이대로 깊은 골이 생겨버릴 텐데…… 혼자서 많이 힘들 텐데…… 어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 걱정이 닿을 수도 없는 곳으로 그 아이는 자신을 떠나버린 뒤였다.          



        


그 애와는 영영 멀어지고 말았다. 그 뒤로 서군은 자신을 피했고, 가뜩이나 상처 받은 마음이 더 힘들어질까 싶어, 윤새는 그 아이를 찾아가는 걸 그만두었다. 사과라도 해야 할 텐데 그것마저 바라지 않는 듯 서군은 마음을 숨겨버렸다.


층의 끝과 끝, 1반과 7반, 겹치는 수업도 없고 활동도 없다. 찾아가지 않는 한 만날 일은 없었다. 우연이 없는 한 멀어진 사이가 좁혀질 일은 없었다. CA 활동으로 만나기 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 아무런 접점 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활동 부서를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영어회화부라고 했던가.


어리고 못된 자신의 심통과 잘못 때문에 그 아이는 그렇게도 좋아하던 글쓰기에서 멀어져버렸다. 글을 쓰는 모습만은 너무나 행복해보였었는데, 멀리서 스쳐만 갈 때뿐이라도 느낄 수 있었던 건, 침울하고 생기 없는 모습이었다. 윤새는 미안하고 또 괴로운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음의 문을 닫아건 아이에게 텔레파시 같은 게 통하지 않는 한, 제 마음이 전해질 리도 없지만 그저 마음속으로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밖에는…….      

    





정들었던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교정은 녹지 않은 눈들이 길에 듬성듬성 발에 밟혀 짓이겨있고 아이들은 제각기 가족과 친구들과 어울려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윤새는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건 너무 오래되어 일상이 되어버렸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무거운 후회, 자책, 미안함. 그걸 풀어낼 용기는 없지만 마주할 용기는 내야 마땅했다.


윤새는 그 아이에 대해서 물으며 부지런히 교정을 쏘다니고 그 아이를 찾았다. 운동장, 조회대, 개수대, 강당, 체육관, 소각장, 음악실, 미술실…… 그리고 많은 교실들을 지나쳐갔다.

그 아이를 찾았다. 분명 청량한 미소를 짓던 아이를 찾았으나 2학년 1반 교실에서 발견한 것은 쓸쓸하고 성숙해진 뒷모습이었다. 키가 자라고 목소리도 한결 낮아진 아이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자신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굳혔다. 단단해진 상처로 성숙해진 얼굴에선 여전히 저를 향한 원망이 있었다. 동시에…… 그리움도.


“안녕.”

“…….”


윤새는 인사는커녕 아무 말 없이 저를 지나쳐가려는 매몰찬 아이를 붙잡았다. 제 손길에 살짝 몸을 떠는 모습에 윤새는 얼른 손을 떼고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미안해.”

“…….”

“미안했어, 정말로. 진작 했어야 하는 말인데, 그러지 못했어. 날 피하는 널 보면서…… 미안해서 포기해버렸지만…… 그래선 안 됐는지도 모르겠다.”

“…….”

“아니, 내가 겁이 많아서, 등신이라서 그랬어. 사과할 용기가 안 나서… 미련하게. 진짜 더 큰 잘못은 그거였네……. 정말 미안하다고…… 꼭 말하고 싶었어. 이제야 말해서 미안해. 너무 늦어서 미안해.”


제 말을 듣기만 하던 아이는 한참을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다가, 몸을 살짝 들썩이며 훌쩍거렸다. 어깨라도 토닥여주려 손을 뻗었지만 또 미련하게 용기가 나질 않았다. 혹시나 제 손길에 또 몸을 떨고 그 환멸 어린 표정을 제게 지을까봐. 제 작은 행동에 또 상처를 입을까봐.


“전부 너무…… 끔찍했어.”


한참 만에 입을 연 아이에게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응어리진 말들이 흘러나왔다.


“내가 쓴 글을, 순간 장난으로 만들어버린 게 싫었고……”

“…….”

“……다시는 내 글에서 어떤 반짝이는 얘기도 쓸 수가 없는 거.”

“…….”

“왜냐면……”


그 순간, 말을 이어가며 자신을 응시하던 순간 세상 모든 게 멈춰버린 듯 했고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시선에 제 모든 게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알고 있던 관습, 자유로이 품던 상념, 허투루 떠올리던 생각, 그 어떤 것에나 신경이 옮겨지던 치기, 그리고 그 아이를 향해있는지 알면서도 알 수 없었던 제 감정…….


그러나 저를 보며 할 말을 잃은 아이는 금세 고개를 돌려 교실을 나가버렸다. 돌아선 발걸음이 돌아오는 기적은 없었다. 굳게 닫힌 마음이 열리는 기적도 없었다. 제 시야에서 사라진 인영이 눈에 아른거릴 뿐 다시 새겨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사라지고 잊혀버릴 제 감정을 홀로 삭이면서 고요한 정적 속에서 흐느껴 울었다. 수 천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나오는 눈물에 흐릿해진 전경에도 그 싱그러운 모습은 더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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