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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미완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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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Sep 07. 2022

장난

2019






한낮의 운동장은 여기저기서 오가는 욕과 외침과 공 하나에 집중된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의 땀과 습한 숨결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나열한 그 모든 것들이 싫어서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있는 구윤은 가장 열심히 돌아다니는 한 사람만 지켜보고 있었다.

끈질긴 시선이 느껴지기라도 하는지 종종 눈이 마주쳤다. 꽤 서늘한 눈매가 휘어지면 곰살맞게 변하는 얼굴이 언제 봐도 신기했다. 구윤은 그 얼굴만 보려고 주홍의 심기를 거슬리는 법이 없었다. 구윤은 그랬다. 남에겐 무심하고 제게만 세심한 구윤이 주홍에게만 그랬다.

주홍은 늘 장난이라고 했다. 짓궂은 말이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그러면서도 선을 넘지 않게 잘했다. 처음엔 구윤은 그래서 주홍이 싫었다. 그런 새끼들은 질색이었고 늘 멀리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주홍의 무리가 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주홍과 구윤은 너무 달랐다.

구윤은 반에 하나둘씩 꼭 있는 조용하고 눈에 안 띄는 애였다. 성격이 고분고분하고 물러 터져서 그런 게 아니라 매사 귀찮고 지루해서였다. 주홍은 학교마다 하나둘씩 있는 제일 발 넓고 뭐든 상타를 치는 애였다. 공부만 하는 애들에도 잘 끼고 공만 차고 던지고 노는 애들에도 잘 끼고 재미없고 겉도는 애들한테도 잘 끼어들었다. 주홍은 그렇게 구윤한테 끼어들었다. 구윤은 그것 때문에 넘어질 뻔한 자기를 도리어 받아준 사람이 주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생색내고 자기를 부각시키는. 어쩌면 계산적이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주홍이 뭐든 부탁하면 구윤은 들어주기만 했다. 다른 걸 바랄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착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구윤은 미련하다 싶을 만큼 자신에 대한 모든 기준이 높아서 주홍이 넌 왜 이렇게 착하냐 등신같이, 라고 해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냥 거절하기 귀찮아서 그랬다. 구윤은 거절을 못했다. 그래서 애초에 누구도 자신에게 부탁을 못하도록 벽을 치는 거였다. 어쨌든 주홍이 부탁하는 것들은 모두 자잘한 것들이라서 그냥 해줬다. 숙제 베껴주는 거든 교과서 대신 빌려다주는 거든.

“구윤아, 야아 좋아한다 진짜로.”

다만 구윤은 주홍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싫었다.

그런 말뿐만이 아니다. 손을 잡는 것도, 어깨동무 하는 것도, 느닷없이 볼에 뽀뽀하거나 제 머리를 헝클어놓는 것도. 주홍에게서 싫은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만 갔다. 그런데 주홍이 싫은 건 아니었다.




     


주홍과는 같은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학교에서 같은 반인 것보다 학원에서 같은 반인 게 더 친해지기 쉬운 이유였다. 구윤은 매일 주홍과 둘이서 밥을 먹었고, 같은 차를 타고 집에 갔다. 항상 둘이 가장 늦게 내렸다. 구윤이 1단지에서 내리고 주홍은 2단지에서 내렸다. 둘은 옆 단지에 사는 것도 같이 다니면서 알았다. 주홍이 가끔 주말에 놀자고 하면 구윤은 여지없이 나왔고 피씨방에서 하루를 보내거나 동네 공원에서 노닥거렸다.

열대야라서 비라도 맞은 것처럼 땀에 홀딱 젖은 몸을 벤치에 누였다. 매일 책상머리에 앉아있도록 단련된 몸이 바깥에서 조금만 공기를 쐬어도 녹초가 돼버리고는 하니, 같이 농구라도 하면 진이 다 빠졌다.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나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어서 그런가, 이럴 때 너를 보는 게 내 잘못인가, 구윤은 생각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런 느낌이 싫었다. 이렇게 뛸 때는 절대 누구도 봐서는 안 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 그 사람 때문에 뛴다고 착각하는 거니까.

습관처럼 손목을 돌리고 팔을 주무르던 구윤의 손을 주홍이 잡았다. 내가 주물러줄게. 구윤은 자신을 내버려둔 것처럼 손을 맡겼다. 주홍의 다부진 손이 완력 있게 팔을 주물러주고 구윤의 손가락도 하나씩 잡고 주무르고 굽히면서 만졌다.

“맨날 펜 잡고 손만 쓰니까 그 터널증후군 올 것 같지 않냐.”

“벌써 생겼어 그거. 나중에 나 손목 못 쓰게 될지도 몰라.”

“무서운 소리 하지 마.”

팔꿈치까지 시원하게 마사지해주던 주홍이 말했다. 너 손 되게 예쁘다. 구윤은 저도 모르게 입가가 굳었지만 끌어올렸다.

“내가 손 하나는 예쁘지. 그럼 뭐해 나중에 손목 나갈 텐데.”

피식 웃었다. 옆에 앉은 주홍의 심장박동도 같이 느껴버렸다. 구윤은 주홍과 있으면 피해야 할 것이 많았다. 어깨도 주물러주겠다는 주홍을 괜찮다고 피했다. 주홍의 젖은 손이 신경 쓰였다.     

무리 중 한 명이 같이 과외 받는 옆 학교 학생에게 고백을 한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고 생각하는 구윤과 달리 나머지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서 들떠있었다. 공부보다 잿밥에 관심 생기는 건 모든 학생의 공통점인가. 구윤은 아무 말이나 내뱉는 애들에게 동조하고 웃고 있는 주홍을 쳐다봤다. 영락없는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이었다. 안 그런 척하면서 어딜 가나 잿밥을 찾아다니는. 구윤은 진저리가 났다.

“야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된다고. 정구윤 잠깐만.”

“어?”

갑자기 주홍이 구윤을 끌어당겼다.

“지금까지 썸을 탔는지 안 탔는지 그것부터 확실히 알아야 되는 거 아냐. 니 혼자 착각한 거면 그건 뭐 그냥 고백하자마자 쫑 나는 거지.”

주홍은 구윤을 그 애로 가정하고 물밑 작전에 대해서 얘기했다. 슬쩍 손을 잡거나 조용히 공부하고 있다가 말을 걸어서 눈을 마주치고 머리에 먼지 같은 거 묻었다면서 떼어내는 시늉도 하고. 그 때 주홍은 구윤의 손을 잡고, 다른 상상을 하면서 눈을 맞추고, 구윤의 곱슬곱슬한 머리칼을 살짝 잡아당겼다.

고백하려는 놈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반면 다른 놈들은 오글거린다고 욕했다.

정작 욕하고 싶은 건 구윤이었다.

“어디 가 정구윤?”

구윤은 주홍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교실을 나갔다. 얼마 남지 않은 점심시간, 그런데 숨이 턱 턱 막혔다. 갑자기 끓어 넘치는 화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나는 왜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철렁 내려앉았으면서 그 상태로도 펄떡펄떡 뛰고.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죽지도 않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들어온 구윤에게 쉬는 시간에 주홍이 말했다. 아까는 장난이었잖아. 기분 더러웠냐? 구윤은 한숨을 삼키면서 아니라고 했다. 수업 내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게 느껴졌는지 아니면 양심에 찔렸는지. 구윤은 주홍이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미웠다. 개새끼. 주홍은 말이 없어진 구윤에게 계속 삐졌냐고 물었다.

그 날 저녁을 먹을 때 주홍은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 애한테 사귀자고 할까 물었다. 구윤은 할 말이 없었다. 잘 먹던 밥맛이 떨어졌다.

“너 모쏠이야?”

“그럼 안 되냐.”

“아니. 그냥. 그럼 나 어떡할까. 고백할까 말까.”

“미친아. 아까는 연애고수처럼 이래라저래라 하더니 순 등신처럼 굴고 있네. 너도 모쏠이지?”

“…어.”

구윤은 놀랐다. 모쏠 아닌 것처럼 말하고 다니길래 연애 수십 번은 해본 줄 알았지. 그래서 엄청 비웃었다. 온종일 끓던 속이 다 풀렸다. 주홍의 얼굴이 눈에 띠게 빨개졌다. 당황하면 그렇게 빨개져선 횡설수설하고.

“너 태어나서 뽀뽀는 해본 적 있냐.”

“있거든! 야, 지금 나 놀리냐?”

“어. 겁나 재밌다. 내일 다 퍼뜨려야지. 문주홍 모쏠. 평생 모쏠 예약일 듯.”

“야 지랄하지 마. 그냥 걔한테 고백한다 그럼.”

“지가 더 지랄이면서. 걔가 무슨 잘못이냐 너랑 사귀고.”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면 고백 같은 건 해서는 안 되는 짓인데. 너는 모르냐고.

구윤은 그 애가 누굴까 궁금했다. 주홍과 다니면서 인사하는 애들을 모조리 살폈다.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몇 마디라도 더 나누려고 하는 곱상한 애가 있었다. 예쁘게 생겼네. 쟤 공부도 잘하잖아. 나중에 학원에 어디 대학교 합격이라고 이름 올릴 애네. 구윤은 그 애가 너무 예뻐서 숨을 삼켰다.

주홍은 고백을 하려고 그 애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고백하고 사귀기 위해서 좋아하려는 것 같았다. 미친년. 쟤한테는 진심이라는 게 있을까.     

주홍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고 했다. 구윤은 그 때부터 알았다. 걔랑 사귀는구나. 혹시 지금은 아니어도 사귀려고 하는구나. 그 뒤로 주홍과 같이 다니려고 들지 않았다. 무리에서도 겉돌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구윤은 학원이 밀집된 상가의 어느 1층 카페에서 창가 자리에 앉아 허니브레드를 먹고 있는 주홍과 그 애를 봤다. 지나가던 길이었다. 지나갈 거면 그대로 지나쳤으면 좋았을 텐데.

그 날 구윤은 학원을 빠졌다.






같이 농구를 하던 공원의 작은 농구 코트에 갔다. 주말마다 같이 오던 곳에 느닷없이 혼자 온 코트에는 킥보드를 타는 댓살배기와 함박웃음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는 가족이 있었다. 금방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 가고 아무도 없이 혼자 벤치에 앉아있었다. 핸드폰은 불티나게 울리다가 멈췄다. 하루 빠졌다고 바로 전화를 날리는 학원이 짜증나고 집에 가면 눈총과 야단을 내뱉을 모부님이 짜증나고, 그러다 제일 짜증나는 건 문주홍이었다.

만약 그렇게 그 애랑 사귀다 좋아하는 게 아닌 걸 깨닫고 헤어지자고 하면, 그저 자신이 장난이 심했다고 여길 새끼였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1년 새 구윤은 주홍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래서 알고 싶지 않은 점들까지 알아버렸고 문주홍에 비친 자신까지 속속들이 알아버렸다. 너무 잘 비쳤다. 주홍과 자신은 너무 다른데. 교실의 생리(生理)에서도 두드러진 성격에서도 심지어 생김새와 취향까지도.

취향. 그래. 너는 내 취향이 절대 아니야.

구윤은 모쏠이 아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애가 여자애였을 뿐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구윤은, 좋게 말하면 활발하고 적나라하게 말하면 나대는 애였다. 어쩌면 지금의 주홍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그 때 구윤은 매년 반장이든 뭐든 하나씩 맡고 교무실을 들락거렸으며 복도에서든 급식실에서든 인사하고 떠들기 바빴다. 그 애는 3학년 첫 날 임시반장이었고 구윤은 임시부반장이었다. 일주일 뒤 반장선거에서 그 애는 반장이 되었고 구윤은 부반장이 못 됐지만 둘은 이미 친해진 뒤였다. 같이 다니던 둘은 여름에 어떤 묘한 기류에 이끌린 듯 서로 고백을 했고 몰래 연애를 했다. 아무도 몰래.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아무도 모른다는 게 더 스릴 있고 재미있고 그걸 행복이라고까지 느꼈다.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행복. 하지만 그 행복은 매 순간, 어떤 순간에서든 쉽게 깨지고는 했다. 너네 왜 둘이 손잡고 있냐? 여자끼리 뭐야. 그 행복은 손을 뗐다가 다시 잡는 것처럼, 쉽게 깨졌다가 쉽게 붙일 수 있는 줄 알았다. 서로 껴안고 있다가도 누가 물어보면 장난을 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넘기면서 웃었다. 손을 잡을 수 있는 곳은 공원의 으슥한 정자나 도서실의 가장 끝자리였다. 그렇게 어둡거나 좁은 공간밖에는 허용되지 않는데, 고작 손을 잡는 것뿐이라서, 단지 손을 잡는 게 좋은 거라서, 마음이 안 힘든 척했다. 왜 그 애가 좋은지도 모르면서 매일 좋아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걸어 다닐 때는 어깨동무를 하다가 하굣길에 학교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그 때야 마음이 놓였다. 말하지 않아도 언제나 그렇게 손을 잡고 서로 마주보고 웃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이 통해서 좋아했었다.

서로 배정된 고등학교가 달라서 둘 사이가 멀어지면서 헤어졌다. 헤어지자고 얘기 나눌 것도 없이 헤어졌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너무 당연하게 헤어져서, 왜 헤어짐이 있다는 걸 생각도 못했을까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 지난겨울에 많이도 울었었다. 너무 지나치게 울어서, 그렇게 인생에서 없던 일이 생겨버려서 내가 바뀌어버렸을까.

그런 게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홍에게 화가 났다. 당장 주홍을 본다면 멱살을 잡고 욕을 퍼붓고 한 대 치고 싶을 정도로 미친 듯이 끓어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야. 정구윤.”

구윤의 눈에는 주홍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려 보였다. 타오르는 눈이 똑바로 보질 못하고 있었다.

“왜 학원 빠졌냐. 전화는 왜 안 받고.”

“니가 왜 여깄냐.”

“그건 내가 지금 할 말이야. 야, 내가 너 얼마나 찾았는지 아냐?”

“…….”

“는 개구라고, 사실 여기가 바로 생각나서 왔는데 네가 있네. 졸라 신기하다. 이런 게 이심전심 아니냐? 내가 진짜 걱정했다고 너 뭔 일 있는 줄 알고.”

장난스러운 주홍의 말투가 신경에 거슬렸다.

“네가 날 왜 걱정해.”

둘 사이에 튀는 스파크를 느끼는 건 정구윤뿐이었다. 문주홍은 심각한 얼굴의 정구윤을 보고서도 그 때까지도 웃으면서 어슬렁거리며 다가갔다. 야 왜 그러는데. 그 때 정구윤은 카페 창가에서 히죽히죽 웃던 문주홍의 모습이 떠올라서 재수가 없었다.

“야! 지금 나 쌩 까냐?”

쌍욕하기도 싫고 주먹다짐하기도 싫고 꼴도 보기 싫어서 돌아서는데 주홍이 붙잡았다. 구윤은 그 어느 때보다 세게 주홍의 팔을 쳐냈다.

“걔랑 사귀냐?”

“누구? 아… 어, 사귀기로 했어.”

“며칠인데.”

“오늘이 1일이다.”

“…지랄이다.”

좋겠네, 씨발. 구윤은 성큼성큼 그늘이 겹치고 겹친 어둠 속으로 들어갔고 주홍은 남겨진 채 의문에 휩싸여있었다. 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벽에 튕겨져 나가는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그 때부터였다.     

주홍은 구윤이 신경 쓰였다. 완벽하게 저를 무시하는 구윤에게 자신이 왜 미안함을 느끼는지 모르겠고 화가 일었다. 그러면 그게 뭔지 말해주면 좋겠는데 정구윤은 냉담했다. 쉽게 넘었던 벽이 다시 높아지는 건 하루아침이었다.     

쉽게 시작한 연애는 쉽게 끝나버렸다. 고작 두 달 만이었다. 쉽게 쫑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애는 아니었는지 학원까지 옮겼다. 주홍은 마음에 부채를 안고 학교와 학원을 오갔다. 구윤에 대한 부채가 더 큰 건 왜일까. 답답했다.

“나한테 대체 왜 그러는 거냐?”

이미 학원을 옮긴지 오래인 구윤을 붙잡고 물었다. 학원차가 줄지어서있는 후문으로 갈 때였다. 목소리가 컸는지 다들 둘을 쳐다봤다. 구윤은 짜증을 내며 팔을 내쳤다. 이게 몇 번째야. 주홍의 사나운 얼굴이 매서워졌다.

“네가 싫어서 그래. 됐냐.”

“뭐?”

“다닐 애 없어서 너랑 다니려고 애썼는데, 귀찮다. 너랑 니 친구들한테 되도 않는 맞장구 쳐주는 거.”

친절하게 말해준 구윤은 이번엔 가방끈이 잡혔다. 멱살이 잡힌 것보다 기분이 나빠서 노려봤다. 정작 주홍은 짐짓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그렇게 반대로 움직이지. 너랑 나는.

“나는 너 좋은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절교하는 게 어디 있어.”

그 순간.

이상하게 정윤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애한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나는 너 좋은데. 이렇게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

구윤은 주홍을 싫어해야만 했다. 누구든지 그렇게 해야 했다. 그래야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장난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상처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지잖아.

그리고 넌 진심이라는 걸 몰라. 누구도 그렇게 좋아해보지 않았을 테니까.

구윤은 주홍이 처음 보는 이름의 학원 차를 탔다. 그 차엔 몇 명 오르지 않았는데 차가 금방 후문을 벗어났다. 주홍은 다시 구윤에게서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친구한테 좋아한다고 한 건 처음이었는데. 주홍은 그제야 친구 구윤을 정말 좋아했다는 걸 알았다. 친구. 오히려 친구일수록 친구라는 말을 자각하지 않고 지내는. 구윤은 다른 애들과 너무 달랐다. 주홍은 자신도 그렇다고 느껴왔다. 그래서 구윤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친구와 헤어져서 눈물이 맺힐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주홍은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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