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그렇게 힘든 산을 왜 가세요?"하고 산악인에게 물었다.
산악인은 "산이 있으니까요."하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 아침 새벽에 한라산 영실을 다녀왔다. 올해는 "제주 가을 단풍이?"라는 기사가 나왔었다. 나도 한라산에 단풍이 들었는지 궁금했다. 단풍이 들었다면 막바지라도 볼양으로 갔다. 옛날에 새벽에 가지 않아서 주차 때문에 줄지어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단풍이 들 때면 새벽에 간다.
우리는 4시 반에 일어나 5시에 출발 5시 45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돌아오니 9시 15분이었다. 3시간 30분 동안 영실코스로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갔다 왔다. 화창한 가을이었지만 단풍은 보지 않고 해돋이만 보고 왔다.
새벽이라 렌턴을 이마에 붙이고 올라가다 보니 해가 떠오르면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승달을 보며 갔는데 윗세오름 대피소 가까이 가니 한라산 옆으로 해가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보다 더 일찍 산행을 하고 돌아오는 한 남자가 씩씩하게 내려오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나니 또 한 여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남편은 이른 아침 산에 왔다가 싸운 것 같다고 했다. 그 부부는 우리보다 어려 보였고 우리도 아이가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나는 웃으면서 "당신도 항상 앞으로 가고 나는 뒤에서 씩씩거리며 쫓아갔었어! 그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 부부도 산에서 싸운 걸로 알았을 걸!" 하면서 웃었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은 산이 빨리 오라고만 해? 왜, 그렇게 빨리만 가!"하고 말했다. 남편은 어떤 곳이든 가는 목적지만 생각하고 나는 이곳저곳 예쁜 것을 핸드폰에 담기 바쁘다. 나는 걸음도 느린데 언덕도 잘 못 오르고 사진 찍기 바쁘니 남편은 빨리 오라고 신경질만 부린다. 오늘 앞에 뒤에 내려오는 부부 같았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내가 "같이 가! 하면 남편은 기다려주었다. 이제는 내 발걸음이 조금 빨라지고 남편도 조금씩 기다려주는 것 같다.
산에 내려와서 사진을 보며 집으로 가다가 친한 친구에게 한라산 사진을 보냈다. 아무 반응이 없다. 오늘 날씨도 짱하고 귤도 노랗게 익으니 귤을 따나 보다. 남편은 농사할 땅이 한 평도 없으니 우리는 매일 놀려 다니는 부부가 되었다. 친정 아빠는 내가 몸도 약하니 농사짓는 사람에게 시집을 안 보내고 싶다고 했었다. 아빠의 바람대로 나는 남동생과 오빠가 주는 귤만 먹어도 배 터지니 감사할 뿐이다.
남편도 산이 있으니까 간다고 하지만 나는 산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산에 간다. 산은 언제나 우리를 품에 안아주고 또 오라고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