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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Aug 17. 2021

한국? 어디에 있는 나라?

- 2000년도의 한국의 위상

커버사진+윗사진  출처 Wikipedia.org

1992년, 필리핀으로의 의료선교여행으로

생애 처음 해외로 나가보았다.

교회의 의사 집사님이 매년 가시는 선교활동으로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주축이 되어  필리핀의 빈민촌에서

의료선교를 하는 일정이었다.

나는 유치부 교사였기에 그곳 아이들의 여름 성경학교를 비롯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맡아서 하게 되어 의료선교에 합류했다.

해외로 나서는 한국인의 자부심은 가방이나 모자에 붙이는 태극기로 시작되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가 한국 사람임을 알리는 어떤 모티브도 놓치지 않았고, 태극기 등의 작은 배지 등은 여분으로 가져가서 나눠주기도 했다.

어딘가에고 붙어있던 태극기. 누구든지 한국사람인 걸 알았다.

매년 오는 행사이다 보니, 그곳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나와 프로그램에 함께 하는 어린이들은 한국말도 몇 마디씩 할 정도였다.

꼭 그들이 아니더라도, 시내에서 만나는 모르는 필리핀 사람들도 우리 일행을 보면 어디선가 '한국'의 흔적을 발견해서는 코리아? 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주곤 했다. 나는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외국사람들이 한국을 안다고 말이다.

2000년,  생애 두 번째로 나온 해외는 독일.

1980년대 말부터 소프라노 조수미는 이미 이탈리아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찬사를 받으며 활동을 했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독일이니만큼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조수미 정도는 알겠지? 당연하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는 현대, 기아, 대우, 삼성 등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들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기사들도 많았기에 나는 외국사람들이 한국을 알 것이라는 데에는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10여 년 전의 필리핀처럼, 아니 이제는 더욱더 그렇겠지.


"Woher kommen Sie?" -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어학과정에서 으레 먼저 배우는 문장이다.

"Wie heissen Sie?" - 이름이 뭡니까? 와 더불어, 첫 질문의 Top 3에 든다.

"Ich komme aus Korea" - 나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나면 두 가지의 질문이 뒤따라 왔다.

1. "Wo liegt Korea?" - 한국은 어디에 위치해 있습니까?

- 비교적 젊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질문

2. "Süd oder Nord?" - 남한이요? 북한이요?

- 나이 드신 분들에게서 받은 질문

(이 글을 쓰는 2021년 지금도, 2번의 질문은 받고 산다)


한국이 어디에 있냐고? 이건 예상 질문이 아니었는데.

88 올림픽도 했고...라고 설명을 해도 잘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그들이 알기 쉽게 설명을 하자면, 꼭 이렇게 설명을 하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어.라고...

그러면 사람들은 아하! 하고 바로 알아들었다.

중국과 일본은 안다고 하며.

남한? 북한? 지금이야 김정은이 워낙 유명(?)해서 북한이 공산주의인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케이팝이 또 워낙 유명해서 남한이 민주주의인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아직도 자주 듣는 질문이 남한이냐 북한이냐이다.

아마도 우리가 언젠가 통일이 된다 해도 한참을 더 이 질문을 받게 되겠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아직도 나는 남한? 북한? 의 질문을 들으며 그렇게 실감을 하면서 살고 있다.


성악을 전공하는 남편의 학교 친구들도, '조수미'를 몰랐다. 아니, '한국'을 몰랐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독일에 온 후 1여 년 동안,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한국'을 아느냐고 물으면,

퍼센티지로 따져본다면 98프로 정도는 몰랐다.

심지어 베트남을 아는 사람도 한국을 몰랐다.

처음으로 만난, 한국을 아는 사람은 어학원의 나이 드신 선생님이었다.

구동독의 작은 바닷가 도시에서는 어학원에서조차 한국사람들이 없었다.

그리고 그분도  정작 한국을 안다기보다, "'대우'가 한국꺼잖아, 그렇지?" 그렇게  대우로부터 한국을 꺼내셨다.

그리고, 그 후 2002년 월드컵이 있기 전까지 한국은 아시아 어딘가에 있는 분단된 작은 나라,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음식'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


남편의 지도교수님이신 W는 전형적인 독일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학교 비서 할머니 집에서 교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포트럭 파티(각자 음식을 싸와서 함께 먹는)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 제자들이 함께 신나게 김밥과 잡채를 해갔었다. 아마도 우리 음식을 제일 좋아할 거라고 자신하며.

각각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 자리에 앉아서 W교수님이 먼저 드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님은 가장 먼저 김밥을 접시에 담고는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나이프와 포크로 김밥을 조심스레 잘라 그 안의 단무지를 당근을 오이를 하나하나 따로 드셨다. 그리고는 "맛있네"라고, 누가 봐도 예의상 하는 인사성 말씀을 하셨다.

그걸 본 남편이 이건 한입에 먹는 거야!라고 김밥 한 개를 통째로 입에 넣고 우물거리자, W교수님은 한꺼번에? 하면서 호탕하게 웃으시고 다시 한 개를 입에 넣고 드시더니, 더 맛있네?라고 하셔서 모두들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스시'가 워낙 대중화되어 김밥을 잘라먹는 사람 보기가 어렵지만, 그때는 그렇게나 한국음식을 몰랐던 시절이었다.  


2002년 월드컵은 해외에 사는 우리에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적어도 한국사람이야! 했을 때 한국은 어디 있는 나라야?라는 질문은  그 후로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었다.

참 신기했다. 월드컵이 뭐라고, 단박에 아시아의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낀 작은 나라를 그토록 쨍하게 드러내게 한 것일까? 그때가 너무나도 고맙고 좋아서, 지금도 예능에 나오는 태극전사들을 보면 무조건 마음이 후해진다. 괜찮아, 하고 싶은 거 다해! 하며 응원이 된다. 그들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덩달아 우리도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의지와 투지의 태극전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탈리아에서는 한동안 비자도 제대로 못 받을 정도로 미움을 받았었다고 하지만.

- 독일과는 달리 지극히 감정적인 이탈리아 사람들. 정도 많고 친절하기도 하지만, 감정이 상하면 공적인 일들도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처리해서 한동안 이탈리아에 사는 한국사람들은 고생이 많았다. 한국과 이탈리아 경기에서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이탈리아가 졌다고 억울해하며, 한국 사람들은 지나가다가도 욕을 먹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때는 아, 난 독일에 살아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남편과 교수님, 제자들과의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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