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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얼 Jul 13. 2020

커피따라 세계일주 - 비엔나, 커피 패럿

Wien, Coffee Pirates


비엔나는 커피따라 세계일주 에피소드 중에 가장 핵심중의 핵심이다. 내가 결정적으로 커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생긴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 날 대체 무슨 사건이 벌어졌을까. 차근차근 기억을 되짚어 본다. 





프라하를 떠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했다. 비엔나도 매우 아름다운 도시인데, 전체가 계획된 것처럼 잘 꾸며져 있고 작은 공원들과 분수, 그리고 미술관 등 볼거리가 정말 많다. 그리고 사실 비엔나는 오페라와 카페 하우스의 도시 또는 음악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음악과 카페 문화가 잘 어울리는 문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카페 문화가 비엔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비엔나는 약 19세기 정도부터 카페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커피 하우스라는 공간은 커피를 마시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정치에 관해서 큰 소리로 토론하던 공개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여성들에게도 개방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된 것이다.


비엔나에서 처음 갔던 카페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Coffee Pirates(직역, 커피 해적)은 European Coffee Trip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의 도움을 받아서 찾을 수 있었다. 



(c)만얼 | Coffee Pirates


유럽보다는 미국에 온 것 같은 분위기의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왔다. 이 곳은 힘껏 내리쬐는 더위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카페 이름에서부터 풍기는 독특한 매력에 느낌이 좋았다. 



(c)만얼 |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카운터



카페에 들어가 보니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남자 바리스타가 있었고, 빠르게 에스프레소와 시원한 물 한 잔을 주문했다. 심한 더위에 돈을 내고서라도 얼음물을 사서 마실 요량이었지만, 친절한 바리스타는 눈치를 챘던 것인지 고맙게도 그 자리에서 얼음물 한 잔을 내주었다. 시원한 얼음물에 한 김 식히고 보니 카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c)만얼 | 카페 내부의 독특한 구성들



대부분이 나무와 흰 벽으로 되어 있었는데, 검은색 소품들이 곳곳에 있었다. 입구 쪽에 있는 테이블을 지나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마치 미술관에 온 것처럼 의자들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있기도 했다. 그 외에도 커피를 설명하는 카드, 벽에 붙어 있는 액자, 그리고 가구들이 이 카페의 특색을 잘 살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구경하던 중에 커피가 나왔다. 

 


(c)만얼 | 에스프레소 한 잔과 특이한 스탬프 카드



케냐 싱글 오리진으로 주문했던 에스프레소가 나왔고, 스탬프 카드를 한 장 같이 받았다. 흰색 에스프레소 잔의 무늬와 스탬프 카드는 카페 이름처럼 독특했다. 





사실 이 날은, 함께 한 달이라는 긴 기간 동안 여행을 간 세 명의 작은 다툼과 계속되는 더위로 인한 지친 몸과 마음이 더해, 잠깐 하루 동안 따로 다니기로 한 날이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신경질을 부린 탓에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커피를 해야지'라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날이기도 하다. 




어떤 것보다 반짝이던 그 사람의 눈


더위와 스트레스로 그날따라 커피보다는 술 한잔이 깊게 생각났다. 낮에는 카페를 갔다가 간단하게 요기하고, 빈 대학교와 그 주위를 가볍게 둘러보며 산책을 했다. 그러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어둠에 독한 술 한잔이 마시고 싶어서 근처에 바를 찾아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후 은은하고 씁쓸한 느낌의 칵테일을 찾다가 도수가 높은 위스키가 들어간 술 한잔을 주문했다. 분위기 좋은 바에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딱 봐도 또래의 한국인인 것 같은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동시에 "혹시 한국인 이세요?"라는 말을 하면서, 어색함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합석을 하기로 하고 서로 여행을 오게 된 이야기를 꽃피웠다. 나는 학생이며, 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왔고,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카페 투어를 다니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 친구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학교에 다니는 건축학과 학생이었고, 어떤 공모전에서 우승한 상금으로 같은 팀원과 함께 여행을 왔단다. 


그 친구는 진지하게 커피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자기도 건축이 너무나 좋다며, 건축 설계와 디자인을 하면 몇 날 며칠 밤을 새도 즐겁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우승했던 공모전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가져왔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종이 위에 유럽의 건축 역사나 양식, 도시가 이런 식으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문득 그 친구의 얼굴을 봤다. 그때 그 눈빛은 아직까지 잊히지가 않는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반짝이던 그 눈빛. 말 그대로 빛이 났다.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이는 나와 같았지만 존경스러웠고 멋있었다. 


그렇게 서로 눈을 빛내며 커피 이야기와 건축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술집이 문을 닫는단다. 하지만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그 친구의 숙소까지 걸어가면서 이야기나 하자고 제안했고, 아무도 없는 시원한 공기의 비엔나 새벽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이야기는 끊기지 않았다. 저녁 9시 즈음 만나서 시작한 이야기는 그 친구의 숙소에 도착한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끝날 수 있었다. 


그렇게 바래 준 다음, 또 기회가 된다면 만나자는 인사를 끝으로 친구들이 자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조금 걷다 보니 어느새 새벽 5시. 어스름한 새벽 시간,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 나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보자. 나도 누군가에게 눈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라고. 내가 커피를 시작해야겠다고 진지하게 마음먹은 그 날은 아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스름한 새벽하늘


시원하고 조용했던 비엔나의 밤거리


그리고


반짝이던 친구의 눈빛




(c)만얼 | 열정적으로 설명하며 그 친구가 그려주었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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