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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얼 Aug 03. 2020

커피따라 세계일주 - 피렌체, 디타 아르티지아날레

Florence, Cafe Ditta Artigianale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피렌체까지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피렌체 산타마리아노벨라역 까지의 여정이었는데, 티켓팅 절차가 너무나 편리했다. 알아보니, 그렇게 당일치기나 하루 이틀 정도 부담 없이 많이들 간다고 한다. 특히나 피렌체는 기차역 근처에 큰 시장이 있어서 식사를 해결하기도 편하고 이것저것 구경할 것도 많다. 


원래 일정에는 피렌체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로마 일정을 길게 잡았던 바람에 하루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하루는 근교를 다녀오자 싶었고, 급하게 피렌체를 선택했다. 출발하기 전날 밤에 검색해보니, 마침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역 가까운데 있었다.  





Ditta Artigianale는 2013년에 오픈한 브랜드이다. 'World Coffee Taster'이라는 커피 대회 출신의 바리스타가 창립했는데, 매년 꾸준하게 각종 커피 세계 대회에 출전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c)만얼 | 카페 입구





다빈치코드라는 책과 영화로 유명한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 작가가 쓴 다른 책 중에 인페르노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 또한 영화로도 나와 있다. 인페르노의 주요 사건들이 모두 피렌체에서 벌어진다. 특히 두오모 성당에서 펼쳐진 긴박한 액션 장면은 몇 번 다시 봐도 긴장감이 넘친다. 영화와 책으로 피렌체를 처음 접했었는데, 간접적으로만 경험했던 이 도시에 직접 와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c)만얼 | 피렌체 어느 골목
(c)만얼 | 두오모 성당 앞, 재치 있는 표지판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는 웅장한 성당과 건물들이 있지만, 조금만 옆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평범한 골목과 유머러스한 표지판이 눈에 띄는 곳이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로 쭉 걸어가서 작은 광장을 지나면 이 카페를 찾을 수 있다. 더운 날씨임에도 사람들은 줄 서서 카페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주문을 위해 자연스럽게 대기줄에 합류했다. 



(c)만얼 | 주문을 위한 줄



벽에는 수많은 사진과 트로피 등이 걸려 있고, 바 안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럽과 술병 같은 것들이 잔뜩 올라와 있다. 카페보다는 오히려 칵테일 바가 어울릴 법한 분위기였다. 매대를 따라 형성되어 있던 긴 줄에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주문할 차례가 다가왔다. 괜히 뒷사람들의 눈치가 보이는 것 같아, 빠르게 에스프레소 한 잔만 주문한 뒤, 조용한 창가 자리를 찾아갔다. 



(c)만얼 | 전시되어있는 상패들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였던 창가 자리 옆으로는 책장이 있었다. 그 위로는 각종 대회에서 받아온 금색, 은색 트로피들이 있었는데, 마땅히 놓을 데가 없었던가 싶을 정도로 천장 가까운 곳에 뻘쭘하게 있었다. 트로피를 한 번 쳐다보고 뒤를 돌아보니, 능숙함으로 무장한 바리스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커피 대회


해외에 있는 카페를 조사할 때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게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선수 리스트이다. 세계 대회에서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만으로도 가볼만한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리스트에는 선수 이름과 국가, 그리고 카페 이름이 다 적혀있기 때문에 아주 좋은 자료가 된다. 


커피 관련 대회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정해진 시간 동안 바리스타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그리고 시그니쳐 커피를 제공하는 바리스타 챔피언십, 라떼아트의 완성도를 두고 경쟁하는 라떼아트 챔피언십,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핸드드립 커피로 경쟁하는 브루어스 챔피언십, 로스팅으로 경쟁하는 로스팅 챔피언십 등이 있다.


이런 대회 한 번을 준비하기 위해서 바리스타가 들여야 하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본재료인 커피부터 시작해서 사용하는 물과 우유, 각종 시럽과 부재료들, 그리고 작은 스푼까지 모든 하나하나의 기구를 본인이 준비해야만 한다. 좋은 커피를 구하기 위해서 바리스타와 로스터들은 해외 산지를 돌아다니기도 하며, 직접 로스팅을 할 수 없는 바리스타는 본인과 스타일이 맞는 로스터를 구하기까지 해야 한다. 


재료와 인력이 준비되었다고 하더라도 대회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구와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맛과 향이 나올 때까지 커피와 재료들을 조합해보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심사위원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 자다가도 대본을 줄줄 외울 정도로 연습해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과 자본이 들어가야 한다. 때문에,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선수 출전 리스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볼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말이 이제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c)만얼 | 잠깐의 기다림 후에 나온 에스프레소



기다리다 보니 주문했던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JUMP블렌드라는 이름의 블렌드 커피였는데, 바리스타의 추천 때문에 주문했다. 누구든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단맛과 적당한 산미, 그리고 중성적인 느낌의 향이 있는 커피였다. 그러나, 나는 역시나 싱글 오리진 커피의 개성 있는 캐릭터가 훨씬 더 좋다. 




(c)만얼 | 창가에 앉아서 골목길을 바라보며



창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로마로 다시 돌아가는 기차가 약 1시간 정도 남았었는데, 마침 친구들이 카페로 찾아왔다. 각자가 보고 싶던 것들을 구경하고 나서 함께 모여서 기차를 타려고 미리 약속해두었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나도 필터 커피를 추가로 한 잔 주문했다.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카페를 다니며 조금 기분 상한 일이 있었는데, 주문 과정에서 바리스타가 내 말을 잘못 알아듣고 필터 커피가 아니라 에스프레소를 가져다주었다. 뭐, 주문 실수야 나도 하니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그 바리스타는 너무나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그냥 먹으라는 듯 가만히 서있었다. 


이럴 때는 왠지 모를 파이터 본능(?)이 깨어난다. 나도 가만히 눈을 마주치며 새로 만들어달라고만 말하고는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주문했던 커피를 다시 받았지만, 상한 기분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좀 부드럽게 넘어갈걸 그랬나? 싶지만 아마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것 같다. 


이 사건을 통해서 처음으로 몸짓이나 표정 하나하나가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 카페 일을 그만둘 때도 그랬던 것처럼 살아가면서 잘 잊히지 않는 사건,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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