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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글씨 Nov 30. 2023

상처 셋|두 번째 직장, 동물원의 실체를 마주하다

체험형 동물원의 실체를 직접 깨닫게 되다


 8살 무렵,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인해 집이 완전히 망하고 아빠는 우리 가족을 버리고 몰래 도망을 갔었다. 이제 고작 서른 남짓이었던 엄마는 어렸던 나와 더 어렸던 동생을 데리고 부산에서 용인 시골에 있는 외갓집으로 향했다. 부산에 살면서 가까이 본 적 없던 다양한 동물들을 시골에서 보게 되었는데, 초등학생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서인지 그 후로도 어지간한 동물이나 곤충들은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이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골에서 나와 내 동생이 의지하고 함께 놀 수 있던 대상은 다름 아닌 동물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는 강아지를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속 기억에는 늘 강아지가 함께였고, 시골 동네에 있는 닭들이 함께였다. 그때 그 기억이 좋아서, 동물이 좋아서 두 번째 직장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의 두 번째 직장은 동물원이었다. 큰 동물원이 아닌 작은 체험형 동물원이었는데,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동물원에서 일했다고?'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지금의 나 역시 동물원의 실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동물원의 실체를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동물권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에 무지한 선택을 하기도 했다. 단순히 동물이 좋아서, 동물원에 있으면 동물과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라는 이유로 동물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동물원에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주 6일의 업무, 낮은 급여, 고된 업무량 등으로 인해 늘 몸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동물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고 힘들다가도 무해한 아이들의 두 눈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동물들에 대해 하나둘씩 배우고 아이들과 교감하며 친해지는 과정이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들에게 너무 깊은 마음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


 동물원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잘 알고 있겠지만, 동물원은 결코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특히 체험형 동물원은 사람의 손길을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만져져야만 했고, 매일 같이 당근이나 청경채, 상추 같은 것들을 먹으며 배를 채워야 했다. 그마저도 사료를 많이 먹으면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래 먹어야 할 양의 절반 혹은 그 이상으로 줄여 급여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에 몰래 아이들에게 사료를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면 팀장님에게 '내일 애들 당근 안 받아먹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혼이 나곤 했다.


 어느 날은 작은 케이지에 갇힌 토끼 부부의 배변판을 청소하기 위해 케이지와 배변판을 분리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치우지 않았던 건지 배변이 딱딱하게 굳다 못해 구더기까지 생겨있었다. 각종 오물과 악취에 혀를 내두르며 오물을 긁어내고 깨끗하게 닦고 소독까지 마쳐 다시 배변판과 케이지를 합쳐주었는데, 그 이후부터 토끼와 같은 소동물들의 열악한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햄스터와 같은 소동물들은 작은 케이지에 여러 마리를 넣어두고 제대로 된 케이지 청소조차 해주지 않아 지린내가 진동을 했고, 영역동물인 햄스터들은 작은 케이지에 여러 개체가 얽히고설켜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는지 서로 공격하고 잡아먹는 카니발리즘까지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암수 구분을 따로 하지 않아 지속적으로 개체 번식이 이루어져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원에서는 별다른 묘책을 내놓지 않고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해두기만 했다.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아이들의 케이지를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것이 먼저인 것 같아 수많은 케이지들을 하나씩 청소해 주었다. 그다음으로는 다친 아이들을 분리하여 따로 돌보기 시작했고, 암컷과 수컷 아이들을 따로 분리해 번식을 방지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나의 이런 노력을 동물원의 팀장님은 '유난'이라고 표현했다.


 동물원은 돈이 되지 않는 작은 소동물들의 생명을 하찮게 여겼다. 동물원에 있던 기니피그들 사이에 새 생명이 태어났는데, 그중 한 아이가 다리에 장애가 있어 어미가 돌보지 않고 발에 차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든 살고 싶어 어미에게 계속 다가가 젖을 먹으려고 했는데, 어미가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살고자 하는 아이의 모습에 측은지심이 생겨 분유와 건초, 말린 채소 등을 따로 먹이며 케어해 준 후 무리로 돌려보내곤 했는데 그때도 동물원의 팀장님은 '어차피 쟤는 못 살아' 라며 타박하곤 했다. 비록 그 아이는 동물원 팀장님의 말처럼 오래 살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난 아직도 그 아이에게 내밀었던 손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잘 챙겨줄걸' 하는 후회만 남을 뿐이다.


 동물이 좋아서, 동물과 함께 있고 싶어서 동물원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현실의 동물원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동물을 위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오로지 사람의 이기심으로 운영되어 아이들이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자괴감은 커져갔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늘 괴로웠다. 동물이 행복하길 바랐고, 동물과 함께 행복하고 싶었는데 그곳에선 동물도 나도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했다. 동물이 좋아서 동물원을 선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물들에겐 나도 그저 그런 가해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에 대한 확신을 주고 내 인생의 관점에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여전히 그날의 장면과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때 그 사건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흉터처럼 남아 가끔씩 콕콕 쑤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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